해시태그, 셀카가 가득한 여행에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 체질은 아니다. 새로운 걸 경험하고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바람 쐬고 오는 건 좋아하지만 정작 여행 가면 먹고 씻고 자는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고 여행 내내 골골대다가 병을 앓고 돌아온다.
그래도 여행은 좋다. 모르고 지나쳤던 자연풍경이 눈에 들어오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난데없는 코로나로 인해 오랜 시간 해외여행을 못 가는 현실 감옥이 되어버렸다.
출장이 아니고서야 해외를 못 가는 지금 이 순간 너무나도 발버둥 치며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마음만은 굴뚝같지만 자가격리까지 하며 해외 갈 용기는 안 난다. 코로나 전에라도 못 가본 유럽에 가서 미술관, 갤러리에서 전시 구경하고 동남아 호텔 리조트에서 푹 쉬다 올걸걸걸...! 사람은 대체 언제까지 후회만 하며 살아야 할는지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해 요새 결혼하는 사람들의 신혼여행 트렌드가 변화한 것도 참 웃긴 일이다. 바이러스 때문에 세상에 마상에 이럴 일이야?
해외를 못 가니 사람들은 국내여행으로 많이들 떠나는데, 사진 보면 국내여행도 갈법한 곳들이 꽤 많다. 생각해보니 못 가본 군산과 통영, 담양 등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웠던 코로나 전 시대에 사람들은 여행을 가면 으레 sns에 너도나도 '프랑스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 '뉴욕 공원에서 산책' 등 자랑 인증샷을 많이 올렸다. 해시태그와 함께 #추천맛집 #추천카페 가 남발하고 셀카와 더불어 여행 같이 간 사람이 찍어준 셀카 같은 사진, 해외에서만 맛볼 수 있는 군침이 나오는 음식 사진들로 가득하다. 반면에 여행을 갈 때도 여행정보를 sns에서 찾아서 검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 sns에서 추천하는 맛집이나 카페를 가보면 소개팅에서 사진만 믿고 수락하였는데 정작 별로인 것처럼 사진만 예뻤던 곳들이 많다.
단편적으로만 보면 sns에서의 여행은 해시태그로만 축약되는 여행 같아 보인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진에는 느낄 수 없는 홍콩의 습한 습도와 함께 쏟아지는 땀, 태국에서의 뜨거웠던 태양빛, 영국 사람들의 깔끔함과 냉정함, 겨울 터키의 아릿한 추위와 코를 찌른 이국적인 향들.
sns에 올라온 정돈된 사진에는 이러한 땀에 달라붙는 머리카락과 윙윙대는 날파리, 힘겨운 화장실 문제들은 생략되어 있다. 그래도 개인 계정의 지난 사진들을 보다 보면 그때 여행 간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예전에 페이스북이 활성화되었을 때 한 선생님(초등학생 때 미술학원 선생님이었던 8살 위 언니)이 여행을 가면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하이파이브하는 손 맞대는 사진을 올렸던 적이 있다. 그땐 얼굴도 잘리고 본인의 손등과 상대의 손바닥만 나오는 사진을 왜 올리지? 하고 말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여행 가서 만난 사람들과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함이었을까? 그때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하는 색다른 방식인 것 같아서 나도 언젠간 따라 해보고 싶다.
여행은 sns에 자랑하며 해시태그, 셀카, '저 멀리 가서 나 좀 8등신처럼 나오게 찍어줘' '나는 고개를 숙일 테니 분위기 있게 찍어줘' 같은 사진 찍기의 연속이 아닌, 원하는 해시태그의 이미지가 아닐지언정 코끝을 건드는 나른한 바람, 공간의 분위기 등 오롯이 헤맴의 감각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헤맴을 겪는 연습이 여행 같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떠나와서 그곳에 가서 비우고 채우고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것. 이러한 연습은 여행에도 필요하고 우리 삶에도 필요하다. 여행을 떠나야만 특별해지는 건 아니다. 돌아온 일상도 소중하다. 하루를 여행하듯이 하고 계속 연습하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나아지긴 할까? 나아지려나?)
우리 엄마가 그랬다. 우리 남매는 애기 때부터 느렸다고 한다. 남들보다 말도 늦게 트고 기저귀도 늦게 텄다면서 대기만성형이라고 한다. (도치맘이 전형적으로 하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더라도 천천히 제대로 된 어른이가 되고 싶고, 잘 알지는 못해도 조금은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어른이가 되고 싶다.
한 친구와 대화하다가 말했다. 시간이 지나고 흐르면서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중에서 진정한 나의 편은 걸러진다고 생각한다며 정말 친한 사람과 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좀 구분하게 된 거 같아라고. 듣고 보니 그래 맞는 것 같네. 그리고 살면서 사람이 아직까지 미련이 많으니까 뭐든지 간에 계속 언급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그러는 거 같다며 우리만의 인생의 결론?을 내리며 그 친구가 어떤 짤을 보여줬다. 온라인에서 웃긴 시로 유명한 하상욱 시인의 <조별과제 끝>이란 시인데 보고 빵 터졌다. 내용을 보면 그냥 그런데 제목과 같이 보면 웃긴 하상욱 시인은 제목도 참 잘 짓는다.
'어쩌라고 아님 말고'라는 식의 마이웨이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뭘~'의 유연한 태도로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고 뭘 편안해하고 불편해하는 걸 늦었지만 알아가면서, 나에게 없는 의욕과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주변 그리고 서로 다를 수도 있는 미완성인 나 자신에 집중하고 싶다. 사진 인증 말고 땀범벅으로 지도를 보며 이 길이 어디고 저 길이 저기인 것을 찾아보고 잘못 가고 헤매도 다시 돌아가는 방법이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