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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키 Apr 16. 2022

그대를 흠모해

<나의 아저씨>를 보고,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가 방영될 때는 보지 않다가 심심해서 넷플릭스에서 뭐 볼 거 없나 둘러봤다. 예전 드라마이지만 한번 봐볼까란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연속으로 정주행을 했다. 감히 나의 인생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공감도 하며 눈물도 흘리고 가슴이 먹먹했다. 극 중 아이유가 연기한 인물도 이해가 가고 극 중 이선균이 연기한 어른처럼 나도 어릴 때 주위에 저런 어른이 있었다면, 그리고 나도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란 많은 생각을 해주는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는 러브라인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사람을 애상하고 흠모한다. 극 중 아이유와 이선균의 관계 또한 그렇다. 이성적인 호감보다 인간적인 흠모. 잘 안되기를 바라지 않고 잘 되기를 바라며 응원하는 그런 관계, 그리고 도와주고 싶고 마음이 쓰이는 관계. 극 중 아이유가 연기한 인물처럼 다른 맥락이겠지만 나 또한 그 나이의 불안정함이 싫어 빨리 어른이 되고만 싶었다. 사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어른이 되고 싶었다. 30대가 되고 어른이 되면 으레 안정될 줄 알았다. 누구니 대체? 멋있는 어른이 되고 안정된다는 거. 그래도 나는 그때 주관적이지도 못하고 남들에게 이끌려가기만 했던, 잘못된 선택만을 했던 20대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많이 울기도 하고 놓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석사 졸업할 때 내 논문 주제는 불안이었다. 미대는 논문을 본인의 작품으로 글을 써서 논문을 제출하는데 내 그림의 주제는 감추어진 불안을 통해 치유받고 싶은 내용이었다. 논문 심사에 들어오셨던 한 교수님께서 내 논문 주제를 보고 당연히 50, 60대의 교수님께선 젊은 20대의 불안이 같잖아 보였을 것이다. 나보고 불안할게 뭐가 있냐고 왜 불안하냐며 웃으셨다. 교수님의 질문을 듣고 말은 못 했지만 속으로,

'전 지금 이 순간을 널뛰기해서 얼른 50,60대가 되고 싶은걸요. 교수님 나이가 되고 싶어요. 교수님은 다 이루셔서 안정될 테지만 전 졸업도 해야 하고,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풍파를 겪을지도 모르며, 결혼 상대자가 누군지도 모르는걸요.'

그런데 드라마에서 극 중 아이유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석사 때 기억을 하다 보니 학부 때도 생각이 난다. 미대 1학년으로 처음 들어가고 모든 학과가 모여있는 전공수업에서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얼굴 없는 자화상에 대해 발표하는 수업이었을 것이다. 그때 난 작업을 가지고 발표하면서 나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고 불안정함에 대해 발표했는데 교수님께선 본인에 대해 모르는 게 말이 되냐며 핀잔을 주셨다. 속상한 마음에 다른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그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 교수는 다른 자리에서 아직도 자기를 모르겠다며 말했던 적이 있다면서 그 나이에도 자기를 잘 모른다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위로해주셨다.

경험이 많은 어른이어도 잘 모르고 불안한데 어찌 21살이 잘 알겠습니까,


우리들은 속마음을 살아가면서 혼자만 안고 가란 법도 없고 결국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 으쌰 으쌰 하는 게 친구관계이다. 그런데 어떤 친구한테 털어놓느냐가 중요하다. 사람 대 사람으로 봐도 성숙하고 입이 무거운 친구라면 털어놔도 좋지만 반면 좀 미숙한 부분이 있고 평소 가십거리나 남 이야기 즐겨하는 친구라면 절대 털어놓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건 사이가 안 좋아지기 전까지, 겪어보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다. 나와 사이가 틀어지면 언제 어디서 내 이야기를 할지 장담을 못하기 때문이다. 꼭 겹치는 공통지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모르는 타인이 내 속사정을 알고 있다는 거 자체로도 말이 안 되는 사항인 것이다. 결국 다 자기한테 돌아온다고 입 가벼운 사람들은 결국 떠나가는 친구들이 많다.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쓸쓸하다. 인생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주제로 극 중 아이유와 이선균은 서로에게만 말 못 할 비밀을 공유한다. 그러면서 멀리서도 그 힘듦을 알아봐 준다.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생각과 깊은 공감을 했다. 선입견, 편견 없이 나 자신을 그대로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일까? 차가운 나를 '따뜻한' 나로 바꿔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도 겉으로 차가워 보여도 알고 보면 서운함을 가득 느끼는 사랑쟁이인데.

극 중 아이유가 우는 장면도 슬프지만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에서 극 중 이선균이 우는 장면이 나온다. 극 중 아이유마저 곁에 없는 쓸쓸한 시간에 슬피 우는 모습은 가슴이 정말 아팠다.


극 중 이선균은 책임감 강한 아들이자 남편으로 나오지만 아내인 극 중 이지아는 남녀만 안다는 부부 사이라 그런지 남편과 상황이 답답해서 바람을 폈을까? 제삼자가 보기엔 정말 훌륭한 남편감이지만 (제가 가질게요)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이선균은 이지아한테 항상 전화를 하면서 마지막에 '뭐 사갈까?'란 말을 한다. 극 중 아이유도 이선균의 핸드폰을 도청하면서 그 말이 참 따뜻했다면서 이지아에게 말한다. 상대방을 생각하고 챙겨주고 싶으니 그런 따뜻한 말을 하는 거 아닐까?

또한 극 중 이선균은 본인을 뒤에서 욕하는 동료의 말을 전달하는 아이유에게 남들 다 하는 욕을 왜 알려주냐며 핀잔을 준다. 그 말을 듣기 전 극 중 아이유는 그런 동료가 보기 싫어 그 동료의 뺨을 때린 장면이 나왔다.

누군가 나를 위해 내 욕을 한 사람의 뺨을 때려주는 사람이 있을까?  

거지 같은 내 인생을 듣고도 내편 되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나도 좋은 사람이란 걸 깨닫게 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다 행복하고 잘되었으면 좋겠는 그런 응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성이든 친구이든 서로에게 변화를 준 인연은 참 소중한 인연이다.

어떻게 살고 계세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란 물음에 대답은 못하더라도 방향을 알게 해 준 정말 현실적인 드라마를 만난 것 같다.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줬지만 볼 수도 없는 물리적 거리, 또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관계. 

그러나 나를 잘 알고, 처음부터 연결된 것 같은 또 다른 '나'인 것 같은 사람, 다른 차원에서의 사랑인 '흠모'를 보여주고 행복하게 사는 게 갚는 거라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


드라마 ost만 들어도 먹먹해서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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