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야 하는 지금 이 순간
오랜만에 적는 줄글이다. 지난 시간들이 어땠나 반추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선지 위의 삶은 언제나 잦은 변주를 맞이하지만 띄엄띄엄 이어졌던 변주들이 합을 이루며 꾸역꾸역 또 어떤 곡을 만들어내곤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늘 이동이라는 변수 앞에서 매년 무력해지는 나로서는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또 올해도 일했던 지역에서 과거의 나는 어땠나,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새로운 곳에서 일하는 것도 기회. 일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얼마나 내가 성장했나, 측정해 볼 수 있는 것도 기회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기서 근무했던 때로부터 6년이 지났다. 6년 전 이맘때쯤 나는 늘 음악을 들으며 걸어 다녔다. 살이 찔 시간도 없을 정도로 달리고 뛰고 걸으며 이곳의 여러 땅을 디디며 살았다. 가끔은 논산에서 걷기도, 대전에서 걷기도, 서울 어딘가에서 걸으며 걷는 순간들을 되게 많이 사랑했었다. 그때는 아예 영내에서 살면서 연병장을, 아니 그냥 건물들 주변을 인공위성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하루에 2시간을 바깥에서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옆 동에 살던 후배에게 가끔 전화가 오면 걔랑 2시간을 걷곤 했고, 가끔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며 걷곤 했다. 아. 계룡은 밤하늘도 무척 예뻐서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었다. 계룡 어땠어?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하늘이 예뻤던 동네라고 말한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는 걸으며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혼자 사색도 많이 하고 정답이 없는 철학적인 물음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지냈다. 정답이 없는 게 좋았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말이 정답이 될 수 있는 확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으니까. 3개월 전쯤인가. 나는 되게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무기력함과 소리를 질러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은 것들이. 결국 돌아오지 않는 그 소리들이 나를 갉아먹는 느낌이 났달까. 소리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 갇혀 곪고 있었다. 사람들을 줄기차게 만나다가 그렇게 무력함을 느끼고 난 이후에는 사람들을 아예 안 만났다. 연락들이 반가웠지만 감정쓰레기통으로 사람들을 쓰기 싫어서 또 거리 두기를 했던 때가 지난 몇 개월. 어디서든 이단아로 손가락질을 받는 삶을 산다면 차라리 나는 이단아입니다,라고 소개를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던 때가 있다. 보기 싫었던 어두운 부분을 늘 못 본 척했지만 내가 본 이상 그걸 넘어갈 수 없었다. 고민을 많이 했다.
#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곧잘 평가하곤 하지만 본인이 평가를 받는 것을 못 견디게 힘들어한다. 모든 순간들이 평가의 연속이었다. 가끔은 사랑이라는 이유로 싫은 모습을 견디기도, 합리화도 하며 다른 모습은 괜찮잖아, 한다든지. 가끔은 호되게 깎아내리기도 하면서.
우울했던 몇 주 간 나는 친절의 당위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그게 원인이었나 싶어서. 그러다 보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답이 없는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고 또 질문을 하고 생각하기 싫은 대답들이 머릿속을 채우면 그 길로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면 그래도 생각이 좀 덜어졌다. 생각을 하면 심박수가 내려갔다. 운동의 효율을 위해서 생각을 멈추고 다리만 내딛는다,,
다 차치하고 결론으로는 그냥 전반기에 여러 많은 일이 있었지만 후회는 없었으며 되레 해놓은 게 많아서 벅차게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다. 기타를 치면서 유튜브를 시작하고 하루의 끝에 해야 할 것이 생겼다는 점에서 또 다른 활력을 찾게 되었다. 매일매일 손가락이 더 트고 건조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점점 좋아지는 기타 선율들은 매일 꾸준히 또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언제까지 내가 흥미를 잃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얼굴도,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기타 연주에 대해서 평가하는 그 순간들도 신기하고 또 소중하다.
유난히 좀 우울했던 이번 달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자주 생각했다. 계룡의 하늘. 뭉게뭉게라는 말이 어울리는 구름들의 모습. 출근하는 옷에 향수를 뿌려놓고 퇴근할 때 잔향이 남은 그 옷을 다시 입는 순간. 수요미식회. 동학사를 넘어가는 고개. 바크콜. 정성껏 써본 글씨들. 누워서 음악 듣기. 주말마다 엄마랑 걷기. 사랑이 느껴지는 이야기들. 선풍기 틀고 시원하게 자기. 녹차. 어떤 사람들의 서사. 다리를 벽에 붙이고 팩 붙이고 누워서 라디오 듣기. 늘어지게 잠자기. 알람 없이 눈뜨기. 이구이. 나만 보면 엄청 좋아해 주는 어떤 주무관님. 들르는 사무실마다 손에 쥐어주는 간식들. 어떤 팀장님이 주신 강냉이. 그 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 연연하지 않는 것들. 어두워지는 카페의 밖. 어떤 칭찬들. 밀크티. 또 어떤 연락.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날을 상상해 보기. 덩달아 욕해주던 순간.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러 가는 길. 롯데 응원가. 늘 칭찬해 주는 내 친구 누구. 나는 가끔 걔의 칭찬이 온전히 진실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따금씩 힘들 때마다 걔의 문장들을 보면 기분이 좋긴 하다. 우울할 때는 늘 좋았던 것들을 생각한다. 좋은 것들을 자주 생각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