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하다고 느껴질 때
매미가 울면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만 뚫어지게 보고 있던 날이 생각이 난다. 즐겁지 못했던 학창 시절에는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뭐 하나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잘했다. 그러나 뭐 하나에 빠질 수 있던 범주에 공부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몸을 쓰는 것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하는 게임을 좋아했다. 나의 천성이 이끄는 게임은 까슬까슬한 백 원짜리 동전을 주머니 속에서 몇 번 굴리다가 킹오브파이터 98의 화면이 보이는 게임기 앞에 앉아 아테나나 마리를 골라서 여캐로 남캐들을 박살 내는 것이었는데 당시 다섯 여자아이들의 무리에 섞여있던 나는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 게임을 접하게 된다. 프린세스 메이커. 저게 뭔 게임이야?라고 생각했던 그 게임. 그때 푹 빠져 지냈던 게임은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큰 히트를 쳤던 프린세스 메이커였다. 내 친구들은 곧잘 예쁜 공주로 잘 키워내던데 나는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것들을 고르며 공주를 키웠고 공주와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자라나는 결말을 봤다. 내 친구들은 공주를 키우기 위해 무용과 아르바이트를 적절히 섞고, 공부도 시키고 체력단련도 시키고 예절교육까지 적절히 시켰다. 나는 체력단련과 돈 버는 것에 관심이 많아 그 방향으로만 공주를 자주 키웠다. 내 공주는 언제나 건강 하나는 끝내주면서 돈은 많은 무인으로 자랐다. 그 게임 속에서 지금 열심히 몸을 쓰고 돈을 악착같이 모으며 지내는 나의 미래를 미리 보았다.
프린세스 메이커의 성공은 공주를 만들었냐 못 만들었냐로 나뉘었다. 공주를 만들면 성공. 그렇지 않으면 실패. 그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지내면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는 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아빠의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길에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나는 진짜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빠는 평범한 삶이 누구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며 평범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서 겨우겨우 평범한 공주로 만들어놓고서 온갖 잡념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때를 떠올렸다. 평범한 삶도 괜찮다던 아빠의 이야기는 평범하고 지난하던 나의 삶을 위로해 줬다.
평범하게 사는 삶에 대한 생각을 한다.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참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어떤 사건으로 늘 주저하고 속으로 셈을 하던 내가 두려움 없이 살게 되었다. 며칠 전 만나 뵀던 선배님 한 분께서 모든 순간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온다는 말씀을 하셨다. 평범하게 사는 것 같던 오늘도 평범하다기보다 아무 일도 없이 하루를 보냈다는 것이 특별하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모든 순간이 평범하면서도 특별하고, 또 특별하면서도 평범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떤 눈으로 그 순간들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 삶은 특별하고 반짝반짝 빛이 날 수 있다. 퇴근하고 영어공부를 하고 기타를 치는 내 삶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어쨌든 하루의 끝에 무언가를 해내는 내 자신을 특별하다고 보면 내 삶도 평범하면서도 특별해질 수 있다. 어쩌면 대단할 수도 있다. 평범하게 살아도 살아내는 순간들을 소중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