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며칠 전 친구와 통화를 했다.
우리는 몇 년 전 함께 근무했었다.
나는 조직에 오래 남고 싶어 했던 사람, 그 친구는 이곳을 발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친구가 디뎠던 그 발판 아래에 있는 흙으로 깊게 발을 밀어 넣었다.
함께 근무를 할 때 그 친구는 굉장히 편안해 보였다.
내가 근무하던 그 조직에 크게 미련도 없는 친구였고 추억을 쌓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가끔 일할 때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나에게 작은 선물들도 자주 주던 그 친구는 말버릇처럼 이곳을 떠났다.
나는 걔가 가진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그 친구는 당시 나에게 부러워하는 게 없었던 것 같다.
없었던 게 아니라 없었다. 나는 3년만 지나면 이곳을 떠날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걔는 원하던 대로 3년의 기간을 채우고 나갔다.
선택지가 많은 삶을 산다는 것은 언제나 부러웠던 부분이었다.
나가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으면 이런 일을 할까? 저런 일을 할까? 하며 미래의 삶을 잔뜩 기대하는 걔의 눈을 보았다.
나는 나가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내 직장을 되게 좋아했으니까.
얼마 전에 그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다가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월급이 밀릴 일이 없는 나로서는 안정적인 직장이 주는 편안함에 이따금씩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반복되는 일을 하다 보면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의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미래에 대한 예상이 확실해지기도 했다.
나는 나의 미래를 미리 살고 있는 선배들을 볼 수 있고, 조직에서 근무한 지 10년 차가 되면서 누군가의 삶을 미리 살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친구는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우연히 하던 취미활동이 성격에 맞아 직업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하던 취미활동을 보면서 참 대단한 사람이다, 했는데 그것을 업으로 하고 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때? 적성에 맞아? 적성에 맞는다기보다도 그냥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한단다.
개인 사업은 내가 얼마나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고 추진력 있게 치고 나가는지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나에게 가끔은 네 삶이 부럽기도 하다고 했다.
불가피한 변수가 없는 삶의 그 안정감이 부럽다고 했다.
이곳에 있을 때는 안정적인 게 싫어서 나갔는데 돌이켜보면 그 안정적인 게 본인에게 맞았을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조금 쉬어가도 조직에 묶여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에 평정을 가져다줄 때가 있다고.
그런데 그 평정심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너무 삶이 무료하고 또 어떤 때는 지치기도 한다고.
그래서 결국 나가서 경험해 본 어떤 사회에서 더 큰 변수를 만났단다.
가끔 나는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해 되게 오랫동안 고민을 한다.
내가 사랑하던 그 조직에서 만나는 좋은 사람들이 내가 여기에 꾸준히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견딜 수 없게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 때문에 몇 번씩 써 내려갔던 사직서를 마음에 품었던 적이 있다.
일이 힘든 것은 언제나 늘 항상 견딜 수 있는 변수였다.
언제나 고민의 시발점이 되는 부분은 단지 사람이었다.
나는 또 걔에게 그래도 매일 싫은 사람을 안 보니까 좋지 않아?라고 하니
가끔 있는 진상손님들이 그렇게 힘들게 한단다.
진상들은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한단다.
조직에 묶여있으면 매일 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선은 지키는데,
밖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은 한번 보고 안 봐도 될 사람들이기도 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마주하는 변수를 더 견디기 어려울지 루틴화된 일상 속에서 발현되는 변수가 더 어려울까 고민을 하다가
우리는 그냥 우리가 갖지 못한 서로의 어떤 것들을 자꾸 부러워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선택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선택을 부러워했다면
내가 살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을 부러워했을 것이며
그 친구도 내가 속한 직장에서 근무를 했다면 지금 이 시점 다른 삶을 또 꿈꾸며 부러워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모든 선택의 순간에 있어 나와 걔는 본인의 마음이 가는 대로 했다.
그 결과의 산출물은 오늘이다.
이야기의 매듭은 그냥 우리 서로를 부러워하는 것으로 하자!라고 마무리.
또 시간이 흘러 10년이 흐르든 20년이 흐르든 서로가 가진 것을 부러워할지 모를 일이지만
10년이 지난 오늘을 사는 나는, 10년 전의 나에게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잘 지내고 있다고 부러워할 것은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 줄 것 같다.
내가 누군가의 삶을 동경하는 만큼 또 다른 누군가도 나의 삶을 동경하고 있을 테니 부러워할 것도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