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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라 Sep 19. 2023

안녕 나의 가해자 2

#당신을 괴롭힌 그 사람



이 글을 연 당신은 혹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 괴로움의 수준이 그저 ‘저 사람은 왜 저런 생각을 하는 거지? 다른 방법도 많을 텐데 왜 굳이 힘든 방법으로 생각하지?’ 정도의 의아함이었어도 좋다.     



가해자의 의도는 아무리 추측하고 이해해보고자 한들 당사자만이 알 수 있으니 그저 피해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한다면 괴로웠던 순간은 숱하게 많았을 것이다.

그저 각자의 성향에 따라 무심하게 넘기고 지내오거나, 혹은 반대로 왜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지 이해할 수 없어 몇 배로 더 괴로움에 빠져버린 경우로 나뉠 뿐이다.






좀 영민한 아이들 눈에 늘 의기소침한 채로 자신들을 쳐다보는 내가 호기심이 가기도 했을 테다. 그러다가 몇 번의 대화 끝에 순진한 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또 놀리기 좋은 아이었다. 이것이 나의 교우관계 패턴이었다.



쉽게 드러나는 감정을 이용해 심리적으로 내 위에 군림하려는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존재했었다. 이는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안타깝게도 이것은 그다지 우월한 능력이 아니란 점이었다. 오히려 정서적 교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타인을 통해 일시적 우월감으로 바꾸는 것임을 이제는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와 그 아이들은 몰랐던 게 한이라면 한이겠다.



나의 물건을 빌려간 채 그대로 돌려주지 않는 일이나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나에게 떠넘기는 등의 교묘한 수법이 참 많았다. 대놓고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행위도 있었지만 나를 더 갉아먹는 행위는 오히려 이런 자잘한 사건들이었다. 나는 내 권리를 내세울 줄 아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런 점을 상대방도 분명 인지하고 있었고 내가 돌려받고 싶은 물건을 의식하고 있음을 오히려 즐기기라도 하는 듯 나를 보며 비웃기도 했었다. 그런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있었다.



그 무렵에 나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 시절의 선생님은 나를 지켜줄 여력이 없는 쫓기듯 사는 어른들이었고 가정 안에서 부모님이나 같이 살던 할머니 또한 나를 보호해 주거나 내 편이 되어줄 만큼 성숙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정말 유명한 학폭 드라마의 대사처럼 나는 따돌림을 당해도 다들 괜찮았었다. 나만 힘들고 괴롭고 외로운 것을 참고 견디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일상이 지속될 수 있었다. 이게 고작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었다.



학창시절을 견뎌내는 내내 그 아이들의 이름도 얼굴도 잊지 않았었다. (지금도 몇 명은 기억이 또렷하다.) 원망이 가득 쌓였었고 잊을 수가 없었다. 마음 한편에 복수심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처음 용서를 빌어준 용감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사실 그 아이에 대한 나의 마음은 원망보다 질투가 더 많은 아이였을 뿐이었는데, 소위 잘 나가는 무리에서 그 모든 일을 방치하고 있었던 죄책감이 들었나보다. 아니면 자신도 그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를 괴롭히는 일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해야 했던 경우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친구의 사과를 다른 나머지 친구들에 대한 복수심을 숨긴 채 받아줬었던 기억이 있다.



오히려 내 깊은 원망과 복수심이 허무하게 사그라들었던 건 전혀 엉뚱한 상황에서였다. 성인이 되고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와 회사생활을 하던 나는 역시나 더 어마어마한 빌런을 상대해야만 했었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 경험이 쌓여 더 교활하고 비열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오히려 그 시절의 괴롭힘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주말에 모처럼 내려간 고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굽이굽이 집으로 가고 있었다. 눈에 띄는 또래 여자가 버스에 올라탔고 자연스레 시선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는데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따돌림을 당하던 그 시절 어느 날, 하교 후 자신들끼리 남아 내 사물함에 자기들 물건을 하나씩 넣어놓고는 다음 날 아침 나를 물건을 훔친 아이로 만들었던 그 무리 중 한명이었다. 그 아이도 분명 나를 알아본 듯 했다. 숨기지 못하고 나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짐짓 모른 척을 하고 창밖만 바라봤다. 그들에 대한 복수심은 있었지만 차마 어떤 복수를 할지 뭐라고 말해야 할지 준비되지 못한 상태였기에 무시가 최선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꾸 나를 엿보는 게 옛날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도 미처 준비되지 못한 마음으로 나를 마주쳤고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느낌이었다.


마치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권위적이고 비열한 사내 빌런의 눈치를 보는 내 모습과 비슷했다. 나는 내 눈치를 살피고 망설이는 듯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들을 향했던 숱한 원망과 복수심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들도 어렸고 불안했으며 미숙했기에 그랬을 테다. 어떻게든 약육강식에서 뒤처지지 않기위해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에 동참하고 센 척을 해야 했을 것이었다. 나도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었지만 그들도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것은 같았다. 그런 포용심으로 나는 그를 비롯한 그들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 버스에서 긴 공상에 잠겨 한참을 내 눈치를 보는 이를 애써 외면하며 이해를 결정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쪽은 나였다.



시대에 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가정형편상 남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내 성적이 그렇게 화려한 편도 아니었던 것도 맞지만 무엇보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등 떠밀듯 사회생활을 강요하는 부모님이 있었다. 형편의 사정을 말하며 부탁하는 것도 아닌, 내 부족한 성적을 비난하며 일이나 하라는 뉘앙스는 그렇게 괴로운 시절을 견뎌내며 학창생활을 꾸역꾸역 마쳤던 나를 더 움츠러들고 마비시키는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그랬을까? 나의 회사생활은 나를 훨씬 더 괴롭혀대는 사람들로 둘러싸였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런 이들은 나를 기가 막히게 알아봤다. 마치 내 얼굴에 잡아먹기 좋은 사람이라고 써지기라도 한 것처럼 매번 트러블이 생겼다. 신기했다. 점점 연차가 쌓이면서 나 역시 매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처음 회사에서 가장 무기력하게 당했지만 내면에 깊이 자리한 권위주의에 대한 반항심으로 나는 수동적인 태도로 그 사람들의 비난을 무시했다. 고작 나이가 좀 더 많다는 이유, 연차가 좀 더 많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것들을 강요하는 그들과 사이좋게 시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나에게 살갑지 못하다 비난을 해댔다. 나 역시 내가 해주고 싶은 것만 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딜 가도 내가 의지할 곳, 마음을 터놓을 곳이 없는 거라면 굳이 나를 함부로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잘해주고 싶지 않았다.


 

회사경력이 많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빌런을 상대할 경험치가 쌓였다는 것을 인증하는 셈인지도 모르겠다. 인사관리를 하면서 더더욱 사람을 거르는 기준이 많아짐을 느꼈다. 무례하게 월권을 하고, 참견을 하고 지적을 했으며, 선이라는 게 없는 것처럼 농담을 가장해 다른 사람을 조롱했다. 그러다보니 가벼운 조롱은 오히려 나도 스스로를 깎는 것도 잊은 채 같이 웃음이 터지기도 했었다. 감정을 꾸역꾸역 참아내고 눌러대다 보니 생기는 부조화였다.


나이가 어느 정도 찬 어른이 되었을 때까지 나는 어리석게도, 언젠가는 이렇게 나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후회하고 반성한 뒤 사과를 하게 될 줄 알았었다. 나를 괴롭혔던 그 시절의 가해자부터 지금도 괴롭히고 있는 가해자를 비롯해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가해자였던 나의 엄마 아빠까지도 언젠가는 변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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