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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라 Dec 19. 2023

안녕 나의 부모님

# 아름답고 당연한 이별



지금 당신은 부모님과 어떤 관계인지 묻고 싶다.

나와 달리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개인적으론 부럽다. 그런 관계를 지속해서 건강하게 유지해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왜냐하면 지금 부모님과의 건강한 관계가 불가능해 멀어져 있는 나는, 마치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것처럼 몸과 마음이 아프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여전히 문득문득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당신이 진심으로 부모님과 편안한 사이이길 바란다.


그러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부디 다시 생각해 보길 바란다.

우리는 당연히 부모님과 털끝만큼이라도 사소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대도 다르고 성향과 경험도 다르기에 그들의 기준에 맞춰져 동일화된 기준을 나눠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당신이 그 불편함을 인지하고 관계를 발전시켜서 스스로를 온전하게 독립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진짜 어른이었으면 좋겠다.


전 편에도 언급했지만 가장 위험한 케이스는 지속되는 관계 속에서 '아무 문제가 없다.'는 회피상태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케이스이다.




비록 더 이상의 건강하고 적당한 거리의 관계가 불가능해 부드럽게 이어지지 못하고 있을지언정 나 역시 부모님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행복했던 기억이 있고 존경하는 부분들을 갖고 계신 분들이 바로 우리들의 부모님이다. 이 모든 걸 알면서도 왜 나는 다시 부모님과의 관계를 치유하지 못하는 걸까? 그에 대한 핑계 같지만 합리적인 이유를 나를 위해서라도 먼저 정리하고자 한다.


부모님의 시절은 찬란했다. 전쟁을 겪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채로 재차 경제위기와 군부시절을 맞으셨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공포감으로 억압받던 그 시절을 오롯이 겪어낸 분들이셨다. 생존에 필요한 그 무엇도 주어지지 않은 극한의 환경에서의 양육이란 어쩌면 그저 아이를 죽지 않게, 잃어버리지 않고 키운 것만으로도 사실 놀라울 만큼 대단한 성과였을 것이다. 거기에 물질적 풍요로움이나 교육의 질까지 챙겨주신 부모님이라면 더더욱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려운 시대를 겪어낸 우리 베이비붐세대의 모든 부모님들은 어디에서도 부모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고, 자신조차 온전한 양육을 받아본 경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온몸으로 삶의 무게를 버텨낸 당신들의 삶과 노력은 진심으로 존경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늘 좋은 면만 가지고 있지 않듯이 그렇게 고군분투해 주셨던 우리의 부모님에게도 단점이 있었다는 것 또한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수용할 필요도 있었다. 물론 부모님께 왜 그 단점을 보완하지 못하셨냐고 따져 물으라는 것 역시 아니다. 내가 많이 서운했고 화가 났고 억울했던 경험들이 있었던 나의 이야기들을 그저 기회가 주어진다면 상호 간 존중하는 태도로 부드럽고 편안하게, 이런 점은 아쉬웠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그래서 속상했었다 말하면 된다. 그리고 그럼에도 감사했다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느꼈던 단점은 그 대화만으로도 치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격동의 시대에서 격정적 감정을 품고 사신 부모님 세대는 이 대화가 편안하게 가능한 경우가 상당히 드물다. 그저 당신들을 평가하고 지적하는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나도 그랬기에 한 편으로는 그런 부모님이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심리를 접하고 알게 되면서 그렇다면 내가 더 부모님보다 내면의 힘을 키운 성인이 되어 부모님을 보듬어주고 치유까지 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책임져서 보듬고 치유해 줄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나 자신도 과거에서부터 치유해 가야 하고 감정을 정리하기도 벅찬 상황들이 많은데, 지금은 매 순간 내가 책임지고 보듬어야 할 진짜 양육받아야 할 나의 아이들 있다. 또한 동시대에 나와는 전혀 다르게 성장했지만 또 다른 자신만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나의 신랑도 있었다. 내가 집중할 곳은 나와 이들이었다. 부모님을 치유되길 바랄 만큼 당신들의 삶이 슬프고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성인으로서 다가가고자 하더라도 결코 넘을 수 없는 큰 벽이 있었다.


먼저 부모님은 여전히 나를 대할 때 어른으로서 또는 한 인격체로서 편안하게 바라봐주는 존중의 기반이 아닌, 당신들이 책임지기 버거워하는 존재로 보는 한결같은 시각을 이겨내는 것부터 문제였다.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키우셨기에 당연히 완벽하지 않았던 것을 인정하는 대화를 하는 것조차 격하게 거부하셨다. 그로 인해 다시 나를 공격하는 듯 한 저항적 언행을 반복하셨고 그때마다 불편한 감정과 상황에 재차 노출되는 것을 감당하기엔 나로서도 역부족이었다. 나 역시 안전하다고 느끼는 나의 평온한 정서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트라우마와 불안과 공포들은 이미 자식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차마 꺼내기 어려운 거대한 존재가 되어버린 뒤였다. 그것은 분명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범위였다. 그런 시각과 언행을 유지하는 부모님과 해소되지 못한 과제들을 가진 채, 편안한 현재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었다. 이제는 오히려 내가 부모님의 노후를 챙겨드려야 하는 입장에서 좀 더 편안하고 유쾌하게 기꺼이 당신들께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서의 한 장면이 기억난다. 라미란 씨가 친정에 일이 있어 며칠 다녀온 사이에 다 큰 아들들과 아빠가 집을 마음대로 어지르며 편하게 지내다가, 엄마가 왔을 때 재빠르게 모든 것을 정리해 두고 검사를 받는 장면이었다. 이미 고등학생 무렵부터 어쩌면 우리는 부모님의 곁을 충분히 떠나 독립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은 오히려 그때부터 자신들에게 의지해주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당신이 집을 비운 며칠 동안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 둔 가족들에게 오히려 서운해하는 모습을 보였던 일화가 나에게는 참 공감이 가고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서운해하는 부모님을 이해하고 또 배려하기 위해 독립을 자꾸 미루게 됐다.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도 그렇지만 사실은 정서적인 독립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세상을 경험해 본 당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사실 진작에 부모님의 그늘 아래 있을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기준에 충족해 인정받고 싶었기에 지금도 너무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 결혼유무와 관계없이 현대의 대부분의 성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당신들의 재력과 지식 또는 경험이 워낙 존경스러워서 그렇다한들 실은 그 모두가 부모님이라서, 부모님 세대였기에 가능했던 것들이고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는 우리가 직접 창조하고 발전시켜야 할 몫이 있는 것뿐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감사하고 중요하고 절대적이었던 부모님이지만 여전히 그들로부터 물리적,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다면 그 상황이 바로 나를 힘들게 하는 가장 첫 번째 원인인 것이다. 이제는 나의 삶에서 인정받는 기준을 부모님이 아닌 나로 바꿔올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을 훈련하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은 어쩔 수 없이, 당연하게도, 성인이 된 이후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완벽한 물리적 정서적 독립이다. 그저 건강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정도의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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