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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라 Sep 25. 2023

안녕 나의 가해자 3

#성격장애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이 있다. 이상한 사람을 피해 가면 더 이상한 사람을 만나는 기적을 경험해 본 사람은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일 수도 있겠다.



인구의 4%는 정서지능이 발달하지 못한 소시오패스라고 한다. 다른 이를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이득으로 갈취하는 이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꽤 많이 있다. 아직 이런 이를 보지 못했다면 그것 자체가 당신의 행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반면 소시오패스의 하위범주인 나르시시스트들은 어떨까?

정서지능은 발달되었으나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들을 뜻하는 말로 다르게는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불린다.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대부분 자기애가 넘쳐나고 자신만 알기에 자신감이 넘쳐나는 사람을 떠올린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의 가장 치명적인 비밀은 자기애가 바닥을 치닫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깊이 있고 안정적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사력을 다해 타인을 깎아내리며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과시해야만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을 폄하하고 깎아내리면서 교묘하게 신경을 긁었던 그 사람이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에게나 당혹스러운 사건은 생긴다. 같은 당혹스러움 앞에서 어떤 반응과 해결책을 찾아내는지가 갈릴뿐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이 상황 해결 능력을 오로지 입시에서만 찾아내도록 훈련받아왔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당혹스러운 일을 겪는 상황은 고작 수능 따위에서는 다룰 수도 없는, 배우지 않은 것들이 수억 가지다. 기를 쓰고 나름대로의 좋은 회사에 입사했는데 하필 거기서 만났던 ‘빌런’이 바로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나이도 성별도 성격도 전부 다양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어디 한 군데에서 같은 교육을 받은 것처럼 특유의 패턴이 있었다.



1. 무례함

2. 반성과 성찰을 하지 못 함

3. 관계를 무시함

4. 남들에게 보여지는 가치를 맹신함

5. 자신의 가치조차 그가 현재 의존하고 있는 사람의 기준에 둠



그들은 각자가 가진 나름대로의 강점도 있다. 특히 비상식적인 소신이 그렇다. 자신들만의 기준이 뚜렷하고 그것을 신뢰함을 바탕으로 추진력 또한 잘 갖추어져 있기에 거침없이 직진을 하는 모습이 잘 보인다. 그러나 그 ‘거침없이’에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무시하거나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경향까지 있는 것이 문제였다. 이는 아마도 자신의 목표에 방해가 될 것 같다고 여기는 불안에서 따르는 행동일 것이다.



어떤 중요한 일을 진행해야 할 때 때로는 이들의 지도력은 절대적이기도 하다.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잘 알고 거기에 맞춰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 주로 타인의 재능을 자신이 갈취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게 함정이지만 그런 성과를 통해 이익을 얻게 되는 집단의 주체와 서로 의존하는 관계도 잘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의존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그들은 타인에게 상당히 무례해진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술 접대문화가 깊이 뿌리 박힌 채 만연하는 것은 여전히 그것을 유일한 ‘능력’으로 가지고 있는 이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녔던 회사들도 각자가 그런 최종병기와 같은 영업사원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들은 남들이 보기에 괜찮은 학벌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그럴듯한 자격증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들의 몇십 년의 경력은 가히 존경스러울만했으나 그 경력의 대부분이 영업에 의한 실적으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충격과 허무함은 다른 어떤 배신감보다 강했다. 그 뒤로 그를 보는 자체가 안쓰러운 마음뿐이라는 걸 안다면 그런 허세와 허풍을 부린다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과연 그는 알았을까?



그가 의존하는 그룹의 실질적 리더는 자리를 비우고 그에게 대부분의 업무성과를 의존한다. 그런 반복이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팀원들을 가스라이팅하는 것으로 나인 투 식스는 채워진다.

그가 그 긴 업무시간에 하는 주 업무는 가스라이팅 외에 어떤 것이 있을까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받은 건 그저 두 번째 충격이었을 뿐이다. 미팅이 있는 척 몰래 나가서 당구장을 다녀온다든가 찜질방에서 낮잠을 자고 오는 것, 무언가 집중해서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에는 불법사이트에서 다운받은 영화를 즐기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업무시간에 땡땡이 한 번은 쳐봤다고 하지만 ‘어쩌다’의 기준이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것을 타인에게 들켰을 때 유난히 그 사람에게 더 허풍과 허세가 심했다. 마치 자신처럼 ‘타인의 실적을 갈취하는 능력을 갖췄을 때 이런 걸 누릴 수 있다.’는 자신만의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 따위 이상한 기준으로 중심이 세워지지 않았기에 그런 그가 우스웠을 뿐이다. 이 부분은 열심히 감춘다고 감췄으나 어쩌면 나도 모르게 티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는지 자신이 존경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은 그는 더 펄쩍 뛰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자신의 능력과 성과의 기준을 나에게도 강요하는 억압적 말투와 태도는 내가 가진 가치를 애초에 무시한 채 밀어붙이기만 하는 거라서 당연히 통할 리가 없었다.



때로는 학창 시절 어떤 친구나 사회에서 가볍게 만나는 관계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이 어떤 특정 그룹에서 성취한, 그 그룹 내 특유의 기준에 맞춰진 지위를 통해 전혀 그 그룹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존경을 강요하는 무의식 중의 언행을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예이다. 이 기준은 학벌, 직장, 직급, 지역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성별이나 인종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가진 지위를 과시하며 타인이 자신을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지만 그런 기준에 가치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의아함과 어색함만 남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성취감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타인의 마음이 전혀 읽히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혹시 나도 이런 면이 있었나? 하며 걱정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다. 인터넷이나 심리 전문가가 복잡하게 이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한 자가진단 테스트 문항을 내놓지만 그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진지하게 대화할 기회를 만들고 물어보면 된다.

“내가 지금까지 당신을 좀 힘들게 하는 면이 있었지? 가만히 돌이켜보니 마음에 걸리는 면이 있어서 급 미안해지네. 진지하게 우리 관계를 위해 좀 고쳐보고 싶은데, 문자로 내 어떤 면이 어려웠는지 정리해서 보내줄 수 있어? 그럼 앞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한테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서 사람들에게 진지한 몇 가지의 대답을 받는다면 당신은 희망을 가지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얼마든지 발전을 해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조금 걱정해야 하는 관계는 당신에게 아무런 단점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관계에서 어느 누구인들 다 좋았다고 다 괜찮다고 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한다면 당신이 너무 불편하고 어려운 나머지 그런 대화를 하는 것조차 불안하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진짜 걱정되고 두려운 단계의 관계는 이런 대화의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겠다. 여전히 자신을 과대평가하며 타인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조차 무시하려는 마음이 과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선의의 의도를 가진 사람들을 가볍게 상처주곤 했을 지에 대해 털끝만큼이라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런 건방진 말을 하는 나는 그러면 과연 어떻게 이렇게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해 잘 파악하게 됐을까? 상처받은 경험이 많아서도 맞다. 실제로 그런 가정환경과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러나 나 역시 이런 자기 연민에 빠져 타인의 입장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거나 나만의 감정대로 그들을 쉽게 재단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상처와 아픔의 그 중간중간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나르시시스트, 즉 가해자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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