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 에너지 안보 /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이 역설적으로 전 세계 비전투 국가들 중에서 가장 큰 경제적 손상을 입고 있습니다. 이란 사태로 촉발된 호르무즈 해협 위기가 오래 지속되면서, 한국 경제의 결정적인 약점인 '에너지 안보'와 '대외 의존성'의 실체가 명백히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올라가는 단순한 수준을 넘어서, 제조업의 토대와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고통스러운 교훈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외국 언론과 국제 싱크탱크들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호르무즈 해협 물류 중단으로 인해 이전에 없던 충격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의 약 61%, 나프타 수입의 54% 정도를 이 해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에너지 통로가 막히자, 지난 3월 코스피는 하루 사이에 12% 내려앉으며 46년 역사상 최대 일일 하락폭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원화 값 역시 1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했습니다. 직접적인 군사 충돌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수입 경로 하나가 끊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가 금융 체계가 크게 요동치는 드문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전략비축유 체제에 대한 우려도 새로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식 기록상(IEA 기준 등) 한국의 석유 비축량은 200일분을 넘는 것으로 집계되며(약 208일분), 공식적으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그러나 위기 이후 국제 싱크탱크 일부에서는 수출용 정제 물량과 석유화학 원료, 실제 내수 소비 속도 등을 신중하게 반영한 '정부 실제 가동 물량'을 약 26일분 수준으로 매우 낮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숫자 산정 방식과 관계없이, 공식 장부상의 여유분과 실제 위기 상황에서 시장이 체감하는 완충 능력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함이 드러난 지점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비슷한 입장인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명확해집니다. 일본 역시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지만, 국가 비축과 민간 비축, 산유국과의 공동 비축 등 3단계 체계를 통해 총 240~250일분 정도의 튼튼한 완충 장치를 갖추고 있습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일본이 절대적인 비축량 우위뿐만 아니라 시장의 신용도 면에서도 한국보다 위기 극복 능력이 높다고 분석합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정유와 석유화학, 수출 중심 제조업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원재료 공급 차질이 곧바로 산업 전체의 가동 중단 위험으로 퍼져 나가는 구조적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긴급한 상황에 처한 한국 정부와 산업계는 필사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전략비축유의 신속한 방출과 함께 정유 기업들 대상 원유 스와프를 추진 중이며,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과 에너지 절약 운동 등 다각적인 수요 관리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4~5월 수급분으로 UAE 등 17개국에서 1억 배럴 이상의 대체 원유를 빠르게 확보하며 공급처 다양화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은 한국 경제에 '에너지 안보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국가 존속의 과제'라는 무거운 숙제를 남겼습니다. 앞으로 중동 의존도를 줄이는 근본적인 구조 개선 없이는, 한국 경제가 언제라도 다시 지정학적 위기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