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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그널 G Aug 12. 2021

영화 클래식의 반딧불이를 만나러 갔다

[차철호의 #길] 갑천→두계천 자전거산책

엉뚱한 상상을 했다. 영화 ‘클래식’에서 손예진과 조승우가 함께하던 그 강가에 가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어리석게도…. 그건 CG잖아, 머리는 줄기차게 말하고 있었는데도 그 곳을 향해 페달을 밟고 있었다. 클래식을 촬영했던 두계천. 손예진과 조승우가 처음 만났던 곳, 반딧불이가 어둠 속을 수놓던 밤, 그 장면을 촬영한 곳이 대전 서구 원정동의 두계천이다. 두계천은 계룡 신도안에서 발원해 대전 서구 용촌동에서 갑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16.5㎞ 중 대략 3분의 1은 대전, 나머지는 계룡이다.


갑천 자전거도로. 도안 억새숲 앞을 통과하고 있다.
노루벌 가기 전 메타세쿼이아 길목의 갑천.

#1. 갑천

가수원동을 지난 자전거는 갑천을 달리고 있다. 익숙한 길, 상보안과 노루벌을 지나 흑석유원지에 이른다. 물안리다리를 건너면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흑석동→장태산 가는 방향이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는다. 대추벌 마을을 통과한다. 갑천누리길 2코스 구간이다. 마을을 지나면 다리(봉곡교)가 나오는데, 다리를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예전에 이 길을 못 찾아 헤맸던 기억이 난다. 이 길로 접어들면 천변길의 멋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 왼쪽 숲은 진한 여름향기를 내뿜고 오른쪽 갑천은 풍성한 물길을 보여준다. 야실마을 들어가는 다리에 서면 갑천과 두계천이 합쳐지는 지점이 보인다. 그리고 곧 정뱅이마을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인다. 직진하면 중촌꽃마을→장태산 임도로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정뱅이마을을 지나 두계천으로 갈아탄다. 10여 년 전 ‘100년 후에도 살고 싶은 농촌’을 목표로 여러 실험을 시도했던 정뱅이마을. 희미해져가는 담벼락 벽화처럼 이 마을도 다시 평범한 농촌마을이 되어 있었다. 아쉽다.


두계천길의 석양. 옆은 호남선 철길이다.

#2. 두계천

정뱅이마을을 뒤로하고 두계천 물길을 따라 달린다. 군데군데 두계천 자전거(산책)길을 알려주는 안내도가 친절하게 서 있다. 두계천을 따라 계속 가면 계룡대에 닿는다. 자전거 타고 대전에서 계룡대 다녀오는 코스도 좋다. 천변 길을 쭉 따라가는 길이어서 편안하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계룡산 천황봉 뷰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왕복 50㎞ 안팎 거리여서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오늘은 원정동 무도리마을까지만 간다. 호남선 기차나 호남고속도로를 타다 보면 계룡과 대전 경계쯤에 우뚝 솟은 봉우리, 위왕산이 보이는데 그 아래 두계천이 있고 무도리마을이 있다. 아래 사진 속 바위산이 위왕산이고 산 그림자 비치는 곳이 두계천이다.   

위왕산과 두계천.

#3. 위왕산

위왕산은 신도안에 자리하는 임금을 호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위왕산(衛王山) 혹은 위왕산(爲王山)으로 부른다고 한다. 신도안 부근의 모든 산들이 신도안을 향해 굽히고 있는 모습인데 비해 이 산만은 신도안을 등지고 있는데 그것은 수구막이를 호위하는 대장이 말을 탄 자세로 외곽을 경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계천길을 따라 계룡 방향으로 가다 보면 멀리 있는 위왕산이 점점 다가온다. 우뚝 솟은 포스가 인상적이다. 두계천길은 걷기도 좋고 자전거 타기도 좋다. 23번 시내버스가 오가기도 한다. 호남선 철길 따라 달리는 열차와 함께 걷는 재미가 쏠쏠한데, 해 질 무렵엔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자전거탄풍경 노래가 절로 나온다.


영화 '클래식' 촬영지.

#4. 영화 '클래식'

방학을 맞아 시골 외삼촌네 놀러온 준하(조승우)는 친구들과 냇가에서 놀다가 소달구지를 타고 지나가는 주희(손예진)를 보게 된다. 준하와 주희가 처음 만난 그 곳. 정뱅이마을과 세편이마을 사이 두계천 물길이 돌아나가는 모퉁이였다. 반딧불이가 밤하늘을 수놓던 섶다리가 있던 곳도 이 곳이었다. (섶다리는 어느 해 태풍으로 유실되었다고.) 반딧불이 춤추는 불빛 속에 준하와 주희의 풋풋한 이야기가 흐르던 강가, 유려한 영화음악이 들릴 듯하다. 오늘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을까?

클래식 촬영지 바로 앞 마을 세편이마을의 석양.

뜨겁던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두계천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서늘한 바람이 분다. 불빛이 많지 않아 별도 많다. 깨끗한 환경의 어두운 물가, 어쩌면 정말 반딧불이를 볼 수도 있겠다. 점점 커지는 기대감. 느릿느릿 풀숲과 물가를 훑는다. 꽤 오랜 시간 머물며 물가 따라 걷는다.


역시나 ‘혹시나’였나?

보이지 않는 반딧불이.

풀벌레 소리만 가득하다. 그때,

멀리 물 위의 작은 빛이 보인다.

서둘러 다가간다.

풀숲 사이에서 숨바꼭질 하는 빛.

보였다 안 보였다 한다.

아른거리는 형광빛. 정체는 ...


낚시 야광찌였다.


허허, 웃음이 나왔다. 많은 별들이 놀리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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