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 민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2)

by 요아킴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시작


1980년대 초, 영국은 마거릿 대처라는 여성을 총리로 뽑았다. 그녀는 1970년대 영국의 침몰은 노동당 정부의 방만한 정부운영과 여기에 편승한 강성 노동조합 때문이었다고 판단했다. 영국병을 고치는 첫 번째 단계로 강성노조 죽이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파업을 밥먹듯이 하던 광산노조를 조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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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국영광산은 산업혁명 이후 수백 년 파 들어가서 심도도 깊고 채산성도 떨어지는, 한마디로 폐기 처분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국영탄광에서 나오는 석탄 대부분을 국영 석탄화력발전소가 사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따라서, 국영 석탄발전소를 없애면 자연스럽게 국영광산도 없애고, 광산노조도 사라지고, 노동당은 힘이 빠져 재집권이 어렵다는 것이 대처의 생각이었다. 마침 북해에서 값싼 천연가스가 생산되기 시작했기에, 낡고 더럽고 운영비가 비싼 석탄발전소를 허물고 이를 가스발전소로 대체하면 모든 것이 대처의 뜻대로 될 것 같았다. 영국판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시작이었다.


자유화, 민영화, 그리고 재앙의 급습


런던정경대학에 스티븐 리틀차일드라는 경제학 교수가 있었다. 그는 당연히 자연독점으로 생각하던 전기를 입찰로 거래하는 기막힌 시스템을 고안했다. 그는 머릿속에 수영장을 일단 그려봤다. 그리고 동시에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10개라고 가정할 때, 가장 싼 가격으로 발전한 발전소의 전기부터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나머지 9개 발전소가 부르는 값에 따라 순서대로 수영장을 채우는 기막힌 생각을 했다. 그렇게 되면 연료비가 싸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류로든지 발전단가를 낮춘 발전소의 전기부터 먼저 팔리게 된다. 그러면 발전소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원가를 낮추지 못한 발전소는 시장에서 퇴출된다. 최고의 합리성을 가진 시장이었다. 그래서 이 시장의 이름을 수영장, 즉 풀(Pool)이라고 붙였다.


이런 경쟁을 하려면 발전회사가 복수여야 했다. 그래서 잉글랜드 전력청의 발전소들을 화력 두 개, 원자력 하나로 분리했다. 당시 영국의 원전, 화력이 비슷했는데, 북해에서 터져 나오던 천연가스가 석탄보다 상대적으로 쌌다. 석탄발전소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하나씩 문을 닫고 가스발전소가 금세 늘었다. 석탄을 팔 곳이 없어진 국영탄광들은 하나씩 망했다. 노조는 대규모 파업을 했지만, 정부를 이길 수 없었다. 전기요금이 떨어진다고 국민들은 좋아했다. 가스발전소들은 대부분 민간회사들이 지었다. 성공적인 구조개편으로 보였다. 탄광 폐쇄에 성공한 대처 정부는 철도, 통신도 이런 식으로 분리, 경쟁, 그리고 민영화를 했다. 당시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 영화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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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으로, 그리고 발전연료를 가스로 바꾸면서 떨어지던 영국의 전기요금이 다시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실시간 생산과 소비, 그리고 대체제가 없는 전기는 수익을 쫓지 않는 공기업 체제에서는 그럭저럭 돌아간다. 하지만 수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발전회사가 난립하면 사고가 난다. 문제는 영국식을 그대로 따라 했던 미국에서 터졌다.


자유화의 악몽, 캘리포니아와 그 형제들


미국에서 소득 수준이 가장 높은 동시에 사막 기후 때문에 환경규제가 제일 심한 캘리포니아는 영국의 전력산업구조개편을 그대로 따라 했다. 1992년 관련 법률안이 주의회를 통과했고, 1996년부터 지역별로 독점을 허용하되 주정부가 엄격히 관리하던 민간전기회사들을 분리했다. 엔론 AES, 서던 컴퍼니 같은 발전회사들이 앞다투어 발전소를 매입했고, 2000년 겨울이 되자 전기요금은 폭등했다. 발전회사들이 풀시장의 허점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나중에 관련자들은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발전회사들은 고의적으로 발전기를 끄면서 전기도매가격을 조정했다. 심각한 범죄였다. 이후 캘리포니아는 자유화를 중단했고 지금도 주민의 세금으로 손실을 보전한다. 비슷한 일은 2003년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서도 벌어졌고, 이후 호주 빅토리아저, 뉴질랜드 등 묘하게도 영미권 국가들에서 이런 시장조작이 나타났다. 이후 영국식 풀시장은 모두 폐기 처분됐다.


거름통 지고 장에 가는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이들보다 한발 늦게 구조개편을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였다. 2000년 전력산업구조개편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2001년 한전이 독점하던 발전부문이 6개 회사로 쪼개졌다. 하나씩 민영화 순서가 정해졌지만, 노동자들의 파업이 2002년에 있었고, 민영화는 막았다. 당시 발전소를 사려던 기업들은 나중에 캘리포니아 전력사태로 벌을 받고 망해버린 외국계 기업들이었다. 만약 그때 해외매각이 됐다면 정말 아찔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친구가 장에 가자니 거름통 지고 밭에 가던 바보가 장에 가는 꼴이 될 번 했다.


나도 노동조합의 해외매각 민영화 반대에 앞장섰다. 우리는 2002년의 발전민영화를 막았고 2004년에는 2단계 민영화였던 배전분할도 막았다. 당시 싸웠던 노조원들은 모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발전부문은 형식적으로 경쟁하고 배전은 한전이 독점하는 이 구조가 이때부터 계속되는 것이다. 이제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도 있고 전기를 수송하는 송전선로 문제도 있다. 그런데 아무도 아무것도 안 한다.


이제 내가 올리려는 글은 2003년부터 시작된 민영화 반대 당시의 기록이다. 그냥 기록으로 남기면 재미가 없어서 소설 형태로 쓴다.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인물이고 모든 사건은 실화이다. 다만 이름만 바꿨다.


에너지 전환, 에너지 안보 모두가 무겁게 다가온다. 준비가 부족한 이 상태로 계속 가면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 올 것 같다. 불과 몇 년 안에. 그래서 이런 걱정을 나누고 싶다. 모두의 집단지성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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