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괴한 현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21년 1월, 백악관을 떠날 때만 해도 그가 4년 후에 다시 대통령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연속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고 한 번 건너뛰고 다시 대통령이 된 매우 드문 경력의 소유자이다. 미국 역사에서 아마 두 번째로 기록되는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후반에 제22대와 제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브랜드 대통령 다음으로 이런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초, 트럼프가 다시 공화당 후보로 나서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트럼프의 승리를 예상했다. 트럼프를 좋아해서가 절대 아니었다. 그냥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현직 대통령 조 바이든은 참 좋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정직한 전형적인 민주당 소속 정치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 바이든이었다.
획일적인 비교가 비논리적이지만, 현재 미국의 공화당은 정통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주된 지지층의 한 축은 전통적인 기득권 세력, 특히 자산을 많이 소유한 상류계급이다. 석유와 같은 에너지업계와 방위산업체 등이 공화당의 주요 지지자들이다. 공화당 지지자의 다른 한 축은 상대적으로 산업이 덜 발달한 중부와 남부의 보수적인 백인 저소득층이 공화당을 많이 지지한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적으로 비슷한 현상으로, 보수우익 정당은 전통적 부자와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학력이 낮은 계층의 지지를 받는다.
이와 반대로 미국의 민주당은 IT업계 CEO들, 금융권, 전문직군 등의 지지를 많이 받는다. 이들의 다수가 최소 대졸 이상 고학력층들이다. 미국의 주요 노동조합들도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한다. 민주당에 후원금을 제일 많이 내는 조직이 AFL-CIO와 같은 노동조합들이다. 지역적으로 따지면 대도시가 몰려 있는 동부와 서부 해안가 쪽 사람들이 주로 민주당을 지지했다.
트럼프는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뉴욕의 부동산 기업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로부터 철저히 돈 버는 훈련을 받았다. 청소년 때 잠시 방황하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반강제로 상류층 청소년이 가는 군사학교 보내는 바람에 일찌감치 규율과 단체생활, 그리고 스포츠에 눈을 떴다고 했다. 고등학교 과정인 군사학교를 졸업 g 지역 대학을 다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와튼 스쿨로 편입해 졸업했으니, 공부도 어느 정도 성실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동산 개발 사업으로 큰돈을 벌면서도 특별한 정치색은 보이지 않았지만 1992년 미국 대선에 출마했던 로스 페로가 만든 개혁당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개혁당은 공화/민주 양당을 모두 비판하며 스스로를 중도라고 불렀지만, 세계화 반대, 관세 장벽 쌓기, 자유무역협정 거부 등 현재 트럼프가 보이는 고립주의를 표방하는 강경한 우파적 성격의 정당이었다. 이런 주장들은 로스 페로가 1992년 대선에 이미 내세웠던 것이며 어쩌면 극우로 여겨질 수 있으나 당시는 공화당의 네오콘과 민주당의 신민주 세력이 미국 정치를 양분하던 시기여서 신선하게 들리기도 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1999년 미국 대선 개혁당 경선에 참여하려다 포기했고, 이후 개혁당을 나와서 민주당에 입당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트럼프의 정치적 견해는 상당 부분 민주당의 성향과 일치했다. 의료보험 개혁을 찬성하고, 유색인종과 LGBTQ+ 권리에 대해 호의적인 발언을 하고, 낙태 처벌도 반대했다. 트럼프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는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세를 바꿔 2008년 대선에서는 공화당의 매케인을 지지했다. 그는 자신의 사업적 이익에 따라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에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사업가 기질을 보였다. 이런 모습이 대중에게는 주류 정치와 타협하지 않고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다수가 친민주당 입장인데, 트럼프는 언론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는 언론과 자주 싸웠고, 이런 모습이 유권자들에게는 공화당 정치인들보다 더 강한 이미지를 심어 줬다고 한다. 트럼프는 2016년 갑자기 공화당 경선에 뛰어들었고, 기존 정치인들을 제치고 경선을 1등으로 통과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원로 정치인이자 언론, 재계, 연예계 등 각계의 지원을 모두 받았고 본선에서의 승리 역시 민주당의 클린턴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개표 결과 정치 신인 트럼프가 힐러리를 꺾고 당선되는 대이변을 일으켰고, 트럼프는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기존 정치인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였는데,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중시하던 동맹국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미국 우선주의를 과감하게 실천했다.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셰일가스를 비롯한 석유산업을 육성했고, 북한의 김정은과도 직접 만나는 등 그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연방 하원을 장악했던 민주당은 2019년 12월, 트럼프를 탄핵했고 이 탄핵은 공화당이 약간 우세했던 상원에서 거부됨으로써 정치적 위기를 겨우 넘겼다. 이후 그의 막무가내식 행보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고,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에게 패배함으로써 그의 집권 1기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선거결과를 인정 못한다고 공언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의회당 난입 사건을 일으키는 등 엄청난 정치적 위기를 미국에 던졌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통령과 집권당의 행동과 비슷한 모습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 세계는 곳곳에서 극우 성향의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으며, 이는 전 지구적 위기 상황으로까지 해석이 된다. 트럼프의 이런 행동은 지지자들은 더 굳세게 뭉쳤다.
트럼프의 주된 지지자들은 저소득층, 저학력 노동 계층이다. 이들은 미국이 앞장서서 이끌어 갔던 세계화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었다. 소련의 몰락 이후 세계 유일 패권국이 된 미국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세계에 퍼뜨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었다. 특히, 2001년의 9.11 사태 이후 미국은 미국의 뜻을 거스르는 모든 존재를 악으로 규정하고 무력을 사용하면서까지 미국식 정치와 경제 체제를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로 전파해 나갔다. 그런데 이런 미국식 세계화는 오히려 미국의 노동자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활짝 문을 연 미국 시장은 중국산을 비롯한 값싼 수입품이 넘쳐나게 됐고, 미국의 제조업은 해외로 떠났다. 소위 말하는 러스트 벨트라는 지역은 과거 미국 제조업의 상징적인 지역들이지만, 자유무역 때문에 기업들이 떠나고 황폐한 곳들이며,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었다. 트럼프는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과거 로스 페로가 주장했던 관세 인상, 보호무역, 미국 중심의 고립주의를 주장했다. 그 결과 2024년의 대선에서 트럼프는 화려하게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트럼프는 미국 인구의 70%에 육박하는 백인, 그중에서도 다수를 차지하는 세계화로 직장을 잃고 저소득층을 전락한 유권자들의 표심으로 다시 대통령이 됐다. 그러므로 그가 지금 펼치고 있는 모든 정책은 당연히 이들을 달래기 위한 포퓰리즘이다. 하지만, 관세 보복으로 미국을 세계에서 고립시키면 결국 그 피해는 미국인들에게 돌아간다.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재생에너지 투자를 중단하면서 석유 산업을 육성하면 이는 결국 인류의 미래를 파괴한다. 그리고 무역전쟁으로 세계와 대립하면 그만큼 미국의 물가는 올라간다. 트럼프 4년의 미래가 이렇게 암울하게 예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최근 트럼프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본 모든 나라를 대상으로 관세를 매겼다. 우리나라는 매년 상당한 흑자를 미국과의 교역에서 얻기에 26%라는 높은 관세를 책정했다. 트럼프가 발표한 명단에는 전 세계 국가 대부분이 포함됐다. 미국을 상징하던 자유무역으로 미국에 흑자를 본 모든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는 식으로 트럼프는 나서고 있다. 한마디로 제정신이 아니다. 무역에서 적자를 봤다는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자국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왜 인정하지 못하는지, 아니면 늘 그렇듯이 뭔가 다른 속셈으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는지 조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제 세계는 미국을 빼고 한데 뭉칠 생각이다. 중국은 오히려 속으로 웃음을 지을지도 모른다. 미국 대 세계, 이런 구조로 세상의 질서가 재편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국의 경제 규모이다. 미국은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해야 하는 나라이다. 관세를 올려서 수입 물가가 올라가면 가장 지접적인 피해는 바로 미국의 서민들에게서 발생한다. 세계를 상대로 벌이는 트럼프의 전쟁, 얼마나 또 어떻게 진행될지 계속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