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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번 버스의 투명인간들과 미국

by 요아킴

지금보다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 때가 있었다. 출근 시간이 보통 7시 30분으로 사무실에서 제일 빠른 편이었다. 사무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처음으로 들어와 불을 켜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한발 먼저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런 기분. 뭔가 남들보다 앞서 간다는 그런 치졸한 성취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늘 그랬듯이 그 사무실, 아니 그 건물에서 항상 나보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건물의 청소를 담당하던 용역회사 미화원들이었다. 보통 여사님이라고 불리던 분들이었다. 여사라는 말의 원래 뜻과는 상당히 다르지만 어쨌든 그분들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대체 그분들의 출근 시간은 언제길래 내가 비번을 누르고 사무실에 들어가도 이미 그들이 다녀간 흔적이 보였다. 깨끗해진 사무실이었다. 여사님들은 내가 출근하기 몇 시간 전에 사무실, 화장실 등등 건물 곳곳을 청소하고 다시 불을 끄고 문도 잠그고 나가셨던 것 같다. 때로는 불을 끄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었다.


그러다 올해 초 전주로 발령이 났다. 주로 금요일 오후에 집으로 상경하고 일요일 늦은 오후에 전주로 가는 그런 일상이었다. 지난주, 친한 분의 모친상이 주중에 있었고 조문을 위해 상경했다가 다음 날 첫차로 전주로 돌아가는 일정이 있었다. 전주로 가는 첫 버스는 아침 6시. 서초동의 남부터미널에서 있었다. 그 차를 타려면 늦어도 5시에 출발하기로 작정을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오전 4시, 교통 앱을 확인하니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고 돼 있었다. 원래 택시를 타려 했는데 버스가 다닌다니. 서둘러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로 나갔다. 벌써 교통량이 많았다. 승용차, 승합차, 화물차, 택시는 물론이고 버스도 다니고 있었다. 정류장에서 약 5분을 기다리니 드디어 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왔다. 641번 파란색 간선버스. 영등포 문래동에서 서초구 양재동을 왕복하는 버스였다. 첫새벽 빈 버스를 예상하고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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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 오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편하게 앉아서 가려는 생각이었는데 빈자리가 없었다. 좌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서 있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시계를 보니 4시 25분. 영등포에서 떠난 첫 버스 같았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다니. 이 많은 사람이 이 시간에 어디로 가는 걸까. 사실 이 새벽에 시내버스를 탄 기억이 없었다. 버스 안을 둘러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버스 승객들의 대다수가 아무리 젊어도 50대 후반에서 60대는 돼 보이는 중년 여성들이었다. 남자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젊은 층도 거의 없었다. 승객의 성별, 나이별 분포가 이런 경우를 처음 봤다.


남부순환도로로 접어든 버스는 정류장마다 계속 그 또래의 중년 여성들을 태웠다. 그분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우리나라 중•노년 여성들의 독특한 머리 스타일. 파마머리였다. 키들도 모두 비슷했다. 1미터 60이 안 돼 보이는 작은 키들이어서 그분들의 파마머리가 더 잘 보였다. 조금 생각하니 문득 답이 나왔다.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여성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영등포와 동작구, 그리고 관악구 쪽에서 탄 그분들은 모두 서초구와 강남구, 즉 강남 쪽으로 그 새벽에 이동하고 있었다. 의문이 풀렸다. 이분들은 우리가 흔히 ‘여사님’으로 부르기도 하고 또는 그냥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청소하는 분들이었다.


그 순간 돌아가신 노회찬 전 의원의 ‘6411번 버스 연설’이 떠올랐다. 노회찬 전 의원은 구로구에서 강남구까지 가는 6411 버스를 언급하며,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 온 수많은 '투명 인간'들"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한 달에 85만 원 받는,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인 50, 60대 아주머니들인 것이 노 전 의원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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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내가 새벽 버스에서 본 그분들이 바로 노 전 의원이 말한 바로 그 투명인간들이었다. 버스 노선만 달랐지 거쳐 가는 길은 거의 비슷했다. 서민들의 동네인 서울의 남쪽의 서부지역에서 우리나라 부의 상징인 강남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분들은 말 그대로 “투명인간”이었다. 가끔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만나도 우리는 그분들의 존재를 애써 무시했다. 그분들도 우리에게 별다른 말도 건네지 않고 자신들의 일만 하던 그런 분들이었다. 그 투명인간들 덕분에 화장실은 냄새도 없이 깨끗했고 사무실은 출근하기도 전에 깔끔했다. 누군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관심 없었다.


641번 버스가 사당동을 지나 서초구로 접어들면서 한 명 두 명씩 그 투명인간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5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터미널 근처에 이르자 버스가 비어 가고 있었다. 주변의 빌딩들에도 불이 켜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투명인간들이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고 눈가가 살짝 젖어들었다. 물론 그분들도 적절한 돈을 받고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서민들이 그 잘 나가는 강남의 빌딩들을 매일 그렇게 쓸고 닦는 덕분에 그 사무실의 잘난 우리는 불편 없이 일을 해 나간다. 누가 더 중요하고 누가 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모나 어머니뻘 되는 분들이 그렇게 묵묵히 궂은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우리는 살아간다. 갑자기 투명인간들이 고마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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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도를 놓고 보면 지역별 격차가 확연하다. 동남쪽에는 부가 몰려 있고 서남부는 가난하다. 의정부와 가까운 북쪽과 고양에 가까운 북서쪽도 다 서민들의 동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들 한다. 부자가 부를 쌓고 세금을 잘 내면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경제를 이끄는 힘이 된다. 그리고 서민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일자리로 나름대로 생활을 영위한다. 문제는 그 두 집단 사이의 격차가 클수록 사회는 불안해지고 상대적으로 더 가까울수록 사회는 안정되고 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에도 더 좋다. 물론 내가 만든 부를 내가 누리는데 무슨 문제냐고 하는 부자들도 많겠지만, 자신들의 뒤를 받쳐 줄 서민이 없으면 그들의 부도 무너진다.


지금 미국에서 트럼프라는 광인은 자본주의의 바탕인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이는 트럼프 혼자의 생각이 물론 아닐 것이다. 천문학적인 무역과 재정적자는 미국을 망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이를 해결하라는 여론을 의식한 그런 행동일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 틀렸다. 미국인들의 과소비와 이를 맞추기 위한 재정적자를 외국, 특히 동맹국들의 경제를 털어서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모두가 망한다. 자유무역을 주장했던 것도 미국이었고 그 결과 막대한 손해를 본 것은 미국 소비자들의 과소비와 이를 부추긴 그들의 금융, 그리고 이를 뒷받침했던 패권화폐 달러의 남발이었다. 문제 해결의 방법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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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트럼프 같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부자에게는 이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폭력을 휘두르며 국가주의를 조장해서 모두가 서로 싸우게 만드는 극우집단의 발호는 유럽, 일본, 미국을 휩쓸고 있다. 세계대전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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