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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시대를 헤쳐 나갈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세 가지 대전환과 우리의 선택

by 요아킴

세 개의 대전환이 우리 앞에 있다. 첫 번째가 디지털 기술을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운영 방식, 고객 가치 등 모든 영역에 통합하여 근본적인 변화를 이끈다는 ‘디지털 대전환’이다. 두 번째 대전환은 ‘AI 대전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인공지능의 상용화다. 산업혁명에서 뒤처졌던 동양이 기계로 무장한 유럽 세력에 무릎을 꿇었듯이 디지털 혁명과 AI 혁명의 시대적 조류를 따라가지 못하면 영원한 후진국으로 낙오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대전환과 초혁신 경제”를 통해 잠재성장률 3%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AI 대전환의 핵심은 인공지능(AI) 기술을 경제 및 사회 전반에 적용함으로써 혁신을 이끌고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의 2026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대전환’에 총 10조 1100억 원이 편성됐다. 35조 원 규모의 R&D 예산 속에도 AI 부문이 일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대전환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더러운 화석에너지에서 탈피해 무탄소 청정에너지로 가자는 ‘에너지 대전환’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무탄소 전원 즉, 원자력, 재생에너지, 청정수소/암모니아 등의 발전 비중을 70%까지 확대된다. 무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은 신규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 신규 건설로 발전 비중을 2024년의 31.6%에서 35.2%까지 높아지는 한편 천연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율은 29.2%로 늘어난다. 수명이 다하는 석탄발전소는 폐지하고, 일부는 LNG 발전 등으로 전환하거나 기타 무탄소 전원으로 대체할 예정이다. 선제적인 전력망 확충 및 계통 운영 체계 마련하겠다는 계획과 수요관리를 위한 에너지 효율 향상 및 수요자원거래시장(DR) 운영 등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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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 전환 앞에서 모두의 관심은 AI에 몰려있다. AI 산업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부문이지만, 여기에 필요한 막대한 에너지원, 즉 전기가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2025년 기준 전력생산설비는 약 150GW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최대 수요 98GW를 충분히 만족시킨다. 하지만 GPU 25만 장이 돌아가고 이와 연관된 반도체 등 AI 산업이 우리의 계획대로 발전할 경우, 전력수요는 대폭 늘어난다. 그런데 옛날처럼 값싸고 안정적인 대형 석탄과 원자력발전소에만 더는 의존할 수 없다.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 규모를 100GW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했는데, 이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목표인 78GW 보다 22GW가 늘어난 규모이다. 국제사회에 우리의 에너지 전환 의지를 보여주는 NDC 목표는 53~61%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목표는 높고 고결하지만, 현실은 참 힘들어 보인다.


겨우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좇아야 한다. AI를 앞세운 디지털 대전환에서도 세계를 선도할 국가의 위치에 자리 잡아야 하는 동시에 인류 미래를 위한 에너지 대전환에서도 뒤처질 수 없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설비를 대폭 늘려야 하는데, 이런 대전환을 뒷받침할 재생에너지 자원은 호남을 비롯한 남부지방과 바다에서 가능하다. 생산한 청정 전기를 주요 소비지인 수도권으로 실어 나르는 일, 즉 송전과 변전이 문제이다. 전남에서 생산한 깨끗한 전기는 전북과 충청도를 지나 서울로 가야 하는데, 이미 이들 지역에는 송전설비가 포화상태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곳에서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태양광 설비가 몰린 곳들에는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대형 소비자가 위치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들이다.


최근 한전은 호남-수도권 초고압 직류 송전(HVDC)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계통을 재구성하고, 반도체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의 전력수요를 반영한 전력공급 인프라 확충을 위한 ‘제11차 장기송변전설비계획’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호남-수도권 초고압 직류 송전(HVDC) 계통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계통을 재구성하는 한편으로, 2038년까지 송전선로를 2023년 대비 71.9% 증가한 61,183C-㎞(서킷킬로미터)로, 변전소는 43.2% 증가한 1,297개로 확충할 계획이다. 산단 내 변전소 신설, 기존 전력망과의 연계 등의 설비계획도 포함됐다. 2038년까지 72.8조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는데, 한전의 현재 상태로는 매우 버겁다.


전력망 포화상태의 원인은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이다. 기존의 전력망은 서남동해안에 몰려 있는 대형 석탄과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한데 연결해서 대한민국 곳곳으로 보내는 환상망 구조이다. 한전과 전력거래소는 전국을 단일 계통망으로 연결해서 효율적으로 관리해 왔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전력품질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국토의 여러 곳에서 태양광과 같은 간헐성이 높은 분산형 전원이 나타나고 기존 전력망은 이들을 수용하는데 한계를 보인다. 실제 계통망을 운영하는 전문가들 사이에는 이런 재생에너지 접속의 폭발적인 증가가 국가계통망 전체의 운영을 위협한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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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이 세운 계통망 확충계획이 계획대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해 자신하기는 어렵다. 현장에서는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그리고 지역 주민들은 송변전 설비건설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논리는 간단하다. 자신들은 쓰지도 않는 전기를 ‘서울 사람들’에게 보내기 위해 왜 ‘시골 사람들’이 희생해야 하는가이다. 특히 발전소는 없고 전남에서 생산한 전기가 지나가는 길목은 전북지역에서 이런 저항이 가장 강하다. 물론 특별법에 따라 송변전설비 지역의 주민들에게 보상은 이뤄지지만, 한전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주민들은 현실성 있는 수준의 보상과 함께 전력설비 건설계획 단계에서부터의 투명한 정보공개와 주민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이런 반대 때문에 여러 설비건설 계획이 지연되고 있고, 현장의 한전 직원들은 애가 탄다.


지역 주민과 시민환경단체의 반대를 묵살하고 한전 혼자서 전력설비를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총리실 산하에 새로 설치된 ‘국가전력망확충위원회’가 이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현재 계통망 설비의 인허가권을 가진 지자체는 계통망 건설의 당위성과 지역 주민들의 반대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이다. 중앙정부가 강력한 의지로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주민들에 대한 보상 규모와 범위 확대도 필요하다. 현장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수준의 보상책으로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전원개발 보상 제도를 전편 개편해서 수용되는 토지에 주민참여형 공동태양광 사업을 허가, 발생하는 이익을 지역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것 같은 적극적인 보상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런 대전환에는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대전환 과정의 절차적 합리성과 공익성 원칙이며, 이를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부른다. 디지털, AI, 에너지 대전환에서 사라지는 산업, 일자리, 그리고 지역경제가 있다. 모두 사람의 문제이다. 사회의 성숙도는 이런 구조적 변화를 효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그 충격을 최소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AI 대전환은 지식노동자들의 일자리부터 뺏는다. 에너지 대전환은 에너지, 운송 등의 산업 부문의 구조조정을 일으킨다. 사라지는 산업, 지역경제, 그리고 일자리를 사회의 다른 부문으로 유연하게 연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한 사회적 담론과 국가적 대안 수립이 필요하다. 단순한 직무 재교육과 재배치, 그리고 재정지원 등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한다. 석탄발전소 노동자를 태양광발전소로 재배치한다는 식의 실패가 뻔한 구상은 버려야 한다.


국가 경제와 성장의 미래를 좌우할 AI와 디지털 대전환,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대전환은 고통이 따르는 힘든 길이다. 외국 사례만 무리하게 끌고 와서 서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우리가 밟고 사는 우리 땅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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