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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학원, 대학 서열화, 그리고
아파트 권력

by 요아킴

한반도 남쪽 공화국은 서울 중심으로 움직인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고, 국민총생산 역시 절반을 훌쩍 넘는다. 일자리 역시 60%가 넘게 몰려 있다. 한 국가의 인구와 경제활동이 한 군데 몰려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는 없다. 대한민국이 아닌 서울민국이다.


서울은 과거 고대 백제의 탄생지였고 조선왕조 이래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중심지이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행정의 모든 기능이 몰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방 사람들도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올라온다.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일본의 도쿄 등 우리가 친숙히 알고 있는 여러 나라가 수도가 그 나라 제1의 도시인 경우가 흔히 있다. 하지만 서울처럼 과도한 인구 집중과 모두를 다 가진 도시는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부를 쌓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부동산이다. 일제의 강제 합병, 625 전쟁,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 IMF 시대 등 우리나라의 최근 100여 년 역사는 다른 나라들은 200~300년이 넘는 기간과 맞먹는다. 이런 정신없는 혼란기에서 개인은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쳤고, 어떤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땅이 가장 중요한 안전자산이다. 1970년대의 급속한 경제성장기에 정부가 추진했던 공단, 도로, 항만 등 국가 차원의 개발 과정에서 말 그대로 자고 나면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들도 사방에 있었다. 최고의 부동산인 서울 강남의 경우, 1960년대까지만 해도 버려진 땅들이었다. 모두가 땅을 사야 했고, 그 위에 지어진 아파트를 가져야 했다.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75%가 부동산이다.


부동산 하면 역시 서울이다.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니 당연히 땅값은 올랐고, 1980년대 이후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지어지면서 아파트가 부동산을 대표 자산이 됐다. 원래 서울의 인구 분산을 위해 신도시로 개발된 강남은 가장 비싼 아파트 공화국이다. 수요가 많으면 비싼 것이 당연하다고 하지만, 서울의 가격은 비정상적이다. 역대 정부는 부동산, 특히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아파트 가격은 정부의 정책 방향을 거의 무시했다. 지도를 놓고 보면 같은 서울에서도 서초, 강남, 송파 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압도적이다. 언제부터인가 목동과 용산 등 재발이 진행된 지역의 아파트 가격도 강남 못지않게 비싸다고 하지만, 서초•강남•송파 세 지역에는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


나는 강남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낸 강남 출신이다. 당시 내가 살던 대치동은 아무도 모르는 동네였다. 개포동의 논밭에서 놀았고 양재천에서 가재를 잡았다. 이 대치동이 오늘처럼 변하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초입이었다. 동네 아파트 상가에 작은 학원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국영수 과목을 전문으로 가르치던 학원들로, 당시로는 이런 학원들이 아파트 상가에 생기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리고 서서히 지금의 대치동이 됐다. 지금은 재개발이 많이 이뤄졌지만, 대치동 아파트들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사이에 지어진 것들로, 당시에도 이미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동네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나중에 알게 됐다. 바로 수학능력시험 때문이었다.


1994년부터 도입된 수능은 미국의 대표 대입 국가시험인 SAT를 본떴다. 기존 학력고사의 한계인 암기 위주의 시험의 단점을 해소하려고 대학에서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좋은 취지였다. 하지만, 모든 해결책에는 또 그만한 문제점이 나오는데, 수능도 그랬다. 학력고사는 고교과정의 모든 내용을 얼마나 잘 암기했고 이해했는가를 측정했지만, 수능은 고교과정 지식의 활용과 응용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학력고사는 혼자서 교과서를 딸딸 외우고 문제 풀이만 열심히 하면 성적이 향상되는 반면, 수능은 한 차원 높은 이해력과 이를 측정하는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학력고사는 혼자서도 준비할 수 있었던 시험이었지만, 수능은 전문적인 강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즉, 대치동에 등장한 ‘일타강사’의 강의와 예상문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수능이다. 일타강사 학원이 당시로서는 땅값이 쌌던 대치동에 몰렸고 그게 지금의 대치동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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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190여 개 대학들은 모두 한 줄에 서 있다. 입결로 불리는 입학 성적에 따라 1등부터 190등까지 순서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2,800여 개 대학들도 어느 정도 순위가 있다. 그런데 미국 대학의 순위는 우리처럼 입학 성적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미국 대학의 서열은 교직원 대 학생 비율, 교수들의 논문 발표 숫자, 장학금 규모, 학생들의 졸업 비율, 졸업생들의 연봉 수준 등 다양한 요소가 들어간다. 이런 순위에서 높은 대학들로 학생들이 몰리고 당연히 합격 난이도가 차이가 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순위는 오로지 수능성적과 내신 등 입학생들의 성적으로 매겨진다. 그리고 그 순위에 따라 졸업생들의 취업을 비롯한 사회적 성공과 평가 순위가 결정된다. 모두가 입시에 목을 매게 된다. 학생과 학부모는 대치동 학원에서 일타강사의 수업을 듣고 그들이 출제한 모의고사를 풀어야 사회적 성공의 앞자리에 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대치동 아파트값이 비싸다.


대학의 순위를 보면 소위 말하는 ‘인 서울 대학’부터 시작돼 서울에서 멀어지는 순서로 순위가 내려간다. 과거 일류대학이었던 지방의 국립 명문대학들도 이제는 ‘지잡대’ 소리를 듣는 참혹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성공으로 불리는 공식은 단순하다. 일단 대치동 학원에 가서 비싼 사교육을 받고, 인 서울 대학을 나와서 남들보다 좋은 직장이나 전문직 자리를 차지한다. 이런 사회적 명제 속에서 빠지면 그만큼 인생이 고달파진다. 그리고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의 가격도 이와 같은 형식으로 결정된다. 서울 하고도 비싼 곳에 아파트를 가지고, 자식들을 대치동 학원으로 보내고, SKY를 비롯한 인 서울 대학교에 보내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상류층인 법조계, 정치, 금융, 고위 공직, 전문직들이 대부분이다.


강남에 끼지 못하는 지방 사람들은 열패감을 느낀다. 그들의 자산은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그들의 자식들이 인 서울 대학에 들어가기 어렵다. 모든 점이 불리하다. 사회적 갈등을 계속 키운다. 반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재벌과 소위 명문가들은 강남 같은 졸부 동네에 살지 않는다. 그들은 북한산 자락에서 살면서 서울을 내려 보며 졸부들을 비웃는다. 이게 한국 사회의 계층구조이다.


이런 악몽 같은 현실을 예상했던 사람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그의 삶은 참 드라마틱했고 공과가 분명하다.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누구나 그를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친일을 했고, 사회주의 신념도 가졌었고, 반란을 일으켰고 장기 집권으로 독재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민족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와 사회 발전을 이끈 것 역시 사실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는 그에게서 특이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서울의 비대화를 싫어했으며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박정희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서울로의 인구 집중을 예상했는데, 문제는 서울이 휴전선에 너무 가깝다는 점이었다. 그는 안보상의 이유로 서울의 확대를 최소화하려 했는데, 심지어 지하철 건설도 반대했다. 도시가 편해지면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온다는 논리였다. 공무원들의 끈질긴 설득으로 1~4호선까지 건설은 허용하고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교육열,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역사적 전통을 이해했다. 본인도 그렇게 출세한 사람이었으니. 그래서 서울 시내의 대학들을 모두 지방으로 옮길 생각을 했다. 좋은 대학들이 서울에 몰려 있고, 이 대학들로 학생들이 몰리면 지방의 대학들은 시들고, 그럴수록 더 많은 학생이 서울의 대학으로 오는 악순환을 예상했다. 그래서 서울의 주요 사립대학에게 분교 건설을 지시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안산, 천안, 세종, 원주, 충주, 경주 등의 분교들이 그렇게 생겼다. 일단 분교를 만들고 나면 서울 본교의 학생 선발 인원을 서서히 줄여나가고 그 인원을 분교로 옮기는 방식으로 서울 시내의 대학들을 점진적으로 지방으로 분산하고 이전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사망 이후 전두환은 이 계획을 모두 취소했고, 본교-분교의 어정쩡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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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계획은 좋았다. 서울의 대형 사립대학의 경우 학생 수가 2~3만 명이 된다. 그들이 학교에 내는 학비, 생활비, 유흥비 등을 합치면 매우 큰 금액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서 영업을 하는 다양한 사업체들을 감안하면, 종합대학 한 개의 경제적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이런 사립대학들이 전국 각 도시에 분산돼 있다면, 단순히 이와 관련된 인구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분산 효과도 매우 클 것이다. 외국의 경우가 다 그렇다. 지역별로 대표적인 대학들이 흩어져 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효과는 지금과 같은 서울 중심의 개발과 부동산 광풍이 훨씬 덜할 것이다. 국토 균형개발의 핵심이 바로 여기 있다. 공기업 몇 백개를 사방으로 흩어서 주말이면 텅 비는 혁신도시를 만드는 그런 방법은 대부분 실패했다.


모두 겉으로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이야기한다. 언론도, 공무원도, 정치인도, 법관도 다 그렇다.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 서울 주요 지역에 부동산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고 이들은 아파트값 하락을 원치 않는다. 기득권 세력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할 때,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막은 사람들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었다. 그들도 아파트값 하락을 걱정했다. 아파트값 안정을 위한다고 공급확대를 이야기하고, 세금을 이야기하고 뭐든 대책을 세운다. 하지만 그런 결정권자들의 속마음은 딴 곳에 있다. 모두가 자기 아파트값은 계속 오르기를 원한다.


대한민국의 여러 부분이 선진국 수준이다. 하지만 지옥과 같은 입시경쟁,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하는 사교육, 아파트값, 서울 집중, 기득권 세력들의 서울 지배, 이런 문제들이 조금씩이라도 해결되면 그 성장 동력은 훨씬 커질 것이다. 돈도 사람도 전기도 다 서울로 몰린다. 이런 잘못된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면 미래는 그리 밝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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