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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진년 Sep 09. 2024

보라색 여자

보라색 여자 / 허진년


소설을 쓴다는 그 여자를 내심 좋아하였나 보다

아마 보라색을 무지 좋아한다고 하였던 것 같다

왜냐고 물어볼 때마다 내 팔을 꼭 감으며 다가서곤 하였지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였지

미완성의 여백이 있어서 좋다고 하였던 것 같다

남는 자리에 내가 들어가 앉으면 꼭 알맞다는 것을

나는 어슴프레 알고 있었지만

항상 옆을 지나치는 향기에 코를 열고 벌름거렸었지

길을 걷다가 작은 가게를 들르면 무엇인가를 집어 들고는 나를 처다 보았지만

결코 내가 지갑을 열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래

소설을 쓴다던 보라색의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이 난다

그 여자는 와인색도 좋아하였고

그리고 가을 속으로 걸어가기를 좋아 하였지

시월이면 주저 없이 가을 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니

겨울이 올 때까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그 여자의 허물을 홀겨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내 감정을 아무렇게 방치하고 유기하는 것이 죄였구나

오늘 아침엔 한기가 든다


그 해 여름 햇살로 데워진 내 감정이 뜨거웠다면

유혹의 페르몬 향기가 조금만 짙었더라면

텅 빈 겨울, 잘게 금이 간 거울 앞이 아닌

따뜻한 가슴을 부여 안고 마주 앉아 있을 것인데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갔으니

겨울이 시작되면 봄처럼 웃으며 오지 않을까

그런데 그토록 울어대던 매미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이상하다, 여름 햇살을 발기발기 찢어서 여기저기 걸어놓고

어디로 사라졌지

죽기 살기로 운 죄 밖에 없는데

그 울음소리가 내 목청 안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은데

망할 놈의 가을하늘은 왜 저렇게 높을까

까치발로 당겨내려 빨리 겨울을 만들고 싶은데


물음표가 징그럽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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