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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진년 Sep 19. 2024

마네킹

마네킹 / 허진년


출퇴근 하려면 꼭 지나쳐야 하는 아파트 후문 담벼락에

어깨 하나를 빌려주고 사는 밀양댁 옷 수선 집이 있다

자지러지며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에도 미동은커녕

눈도 깜박이지 않는 미인이 서 있는데

눈길을 마주칠 수가 없다


저 냉랭함을 닮아 있는 나를 보는 것 같다


쇼 윈도우 창살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함

끓는 속내 묻고 무덤덤함을 가장한 무표정한 얼굴

절대로 뜨겁게 돌지 않는 핏줄을 숨긴 하얀 피부

무채색 마음과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파란색 꿈

해거름이 짙어져도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


나를 보는 것 같다

싫다


하루 종일 서 있어도 피곤하지 않는 것도 싫어

매끈한 다리도 싫고 잘록한 허리통도 싫어

고운 자태며 은은한 표정은 더욱 싫어

뭇사람의 시선을 감당하고 서 있는 것조차 싫다


도도한 저 오뚝한 콧날도 싫은데

속 모르는 밀양댁은 어젯밤 새워 가며

옷 한 벌 마름질하여 갈아 입혀 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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