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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진년 Nov 02. 2024

늦가을의 산사

늦가을의 산사山寺 / 허진년


색 바랜

먹물 옷소매에

걸림 없는 생사生死이나

요란한 단풍들이 계절을 돌아서니

큰 뜻도 싫다는 것을

이내 마음인들 어찌 하겠나

녹슨 풍경은 자기 뺨을 때려 울고

허공을 가르는 죽비는

제목소리로 경계를 뚫고

휑하니 스쳐 지나는

반야般若에게 어디 가느냐

물어 보고 싶어라

불이문不二門을 넘어 서는

홑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그림자 일렁이지만

탱탱한 내 육신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구나

엎드려 보내는 마음마저

대낮 같이 알아차리는 법으로

속일 수 없는 참마음을

빈 바랑에 채우려 나서 보니

저만치 앞서 가는 이가

누구인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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