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다. 몇 년 전 고은 시인이 계간 시 전문지 “시평” 이라는 잡지에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 현저하게 줄어 가슴에서 터져 나오는 시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요지의 글을 게재 하였다.
이에 대해 같은 잡지 그 해 겨울호에 시인 정세훈정세훈
변영로, 현진건의“술 권하는 사회”도 떠 오르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천상병 시인의 한낮에도 맥주 한 병을 비스듬히 들고 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떠 오른다.
역사적으로 보면 시인 보들레르는 술에 탐닉했던 대표적 작가 중 한 명이다. 자신의 시적 영감이 메말라 가는 걸 보지 않기 위해 현실과 유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보들레르는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에 취한단 말인가? 술이건 시건 덕성이건 그대 좋을 대로 취할 일이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소설가 잭 케루악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술에 취해 극도의 흥분상태로 책상에 앉을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술 마신 다음날 아침에 그림을 그리는 습관을 가졌던 영국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도 보름 동안 만취와 숙취를 거듭하는 가운데 걸작을 완성했다고 한다. 예술가와 술, 술과 작품, 술과 에로티시즘의 관계들을 풀어보면, 술은 이제 문학에서 그 관계를 청산할 때도 되었다는 것은 공감한다.
누구든, 술잔 꽁무니에 매달리는 그 변명이 싫다.
현실을 짓이겨 가며 살아가는 시인들은 애매모호한 두 가지 세상을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모순에 아파할 때가 많다.
그 비릿한 가슴을 달래려고 술잔 가득히 술을 부어 본다지만 좀 그렇기는 하다.
진정한 글쓰기는 감성을 북돋우고, 뜨거운 열기 가득한 가슴으로 심해 같이
깊은 곳에서 퍼 내어 보는 그런 취기도 필요하지만 아닌것 같기도 하다. 그런, 취기가 아닌 반짝거리는 총기로 글을 써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솔직히 무엇이라 딱 잘라 말하기가 나에게는 버거운 화두인 것 같다. 술! 그것 참 정말로 좋은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