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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진년

끌 / 허진년


아픔은

혼돈을 회복시키는 절규이다


사월초파일 직지사 대웅전에 엎어졌더니

무릎팍 밀어내는 마루 틈에 끌이 솟아있다

풀 먹인 두루마기 동정 깃 같은 서슬에 놀라

봉정사 극락전이 어제처럼 상기되고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이 어깨 붙여 오고

병산서원 만대루가 시간을 다듬고 있다


만남을 당부하며 몸 내어 준 자리마다

상처 없는 아름다움이란 끝이 없다

들머리마다 조각난 바람으로 틈새 메우고

무딘 날 갈아 단단하게 갈무리 할 때마다

가슴 잘린 것들만 켜켜이 침묵으로 산다

필요한 동거가 서로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혼자라서 서럽지 않는데 묻지 않는 답들이 지독하게 외롭다

삶의 단면을 잘라내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으면

옹이진 아픔마다 덧나는 망치질에 통증 덧붙여

손마디 차분하게 수평으로 무늬를 편집하고

등에 업힌 삶의 무게를 아무렇게나 내려놓듯이

오차 없는 파열음을 접목시키는 깊은 우려가

제자리 찾아내어 접었던 공간만큼 결을 만든다


무언이 토해 놓는 날선 끌을 잡고서

들판을 건너가는 그늘만큼 빠르게

키 낮은 앉은뱅이책상 하나 만들어

은밀한 접선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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