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스스럼없이 떡볶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떡볶이는 꼭 섭취해야 하는 필수 음식이라고 덧붙이며, 주말은 대개 한 번은 떡볶이를 가족과 메인 식사로 즐길 만큼 중요도 높은 메뉴임을 강조한다.
떡볶이를 제일 처음 먹었던 것은 예전의 국민학교 1학년 때다. 그때는 학생 수가 워낙 많아서 1학년부터 3학년에 해당되는 저 학년생들은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등교를 했다. 즉 교실 하나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2개 반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수업이 점심 시간을 기점으로 끝나거나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또 학교 주변에 수많은 문구점이 즐비했고, 학용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간식거리, 그 시절 불량 식품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추억의 먹거리들이 지나가는 아이들의 눈길을 끌었었다.
나는 1981년 인천 산곡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시절 오래된 학교에는 다 있는 세종 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고, 모래 먼지 무성했던 운동장엔 뺑뺑이, 미끄럼틀, 정글짐, 철봉에 아이들이 빼곡히 매달려 놀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이던 시절 100원으로도 이것저것 군것질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에는 놀라운 액수이지만 내 기억으론 50원어치로도 쪼맹이 아이들 한입 사이즈의 떡 서너 개 담은 국물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었다.
한동안 떡볶이는 저렴하고 값어치 없는 음식으로 여겨졌지만 2000년 중반부터 시작된 프랜차이즈 열풍과 더불어 떡볶이 전문점이 생겨났고, 또 신당동 떡볶이집으로 유명세를 떨친 마복림 할머니의 고추장 떡볶이는 더 이상 떡볶이가 초등생들이나 먹는 길거리 간식이 아닌 대중 식사로서 자리매김하였다. 거기에 떡볶이는 사실 궁중 음식이라는 사실이 더해지면서 지위가 향상되는 변모까지 보여 줬다. 고추장이 아닌 간장 양념으로 떡과 소고기 그리고 야채를 넣어 순하고 부드럽게 즐길 수 있는 요리로 알려지면서 품위가 향상된 것이다. 또 넓은 냄비에 담아 떡과 라면 야채 삶은 계란 등을 넣고 끓여 먹는 즉석 떡볶이도 유행했다. 맛있다는 즉석 떡볶이집은 주로 나이 많으신 아주머니 아니면 할머니들이 운영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이 즉석 떡볶이의 화룡점정은 바로 마지막에 남은 양념과 함께 밥을 볶아 먹는 것이다. 떡과 면으로 충분히 탄수화물을 섭취하고도, 신이 내려 주신 축복의 식재료 김가루와 밥을 한데 섞어 약불에서 뭉근히 태워 누룽지까지 만들어 먹으면 한끼 풍족한 식사로서 부족함이 없다.
밀떡이냐 쌀떡이냐 이 대립 구도는 각자의 입맛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밀가루보다 쌀이 더 영양적으로 우수할 것이라는 편견이 더해질 수 있다. 다만 쌀떡은 쌀떡대로 쫄깃한 식감과 양념이 잘 베어 들어 떡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고, 밀떡은 밀떡대로 그 매끄러운 형태가 입안에서 부드러운 감촉을 전해 주기에 떡볶이 애호가인 나로서는 둘 다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라볶이다. 떡과 함께 라면을 넣고 살짝 매콤하게 조리한 음식을 더 좋아한다. 파, 양파, 라면(신라면), 오뎅 그리고 삶은 계란이 더해지고 마지막에 반드시 이 통깨(깨소금)란 친구를 아낌없이 넉넉히 뿌려 고소한 맛으로 풍미를 높여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추장 양념이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너무 달거나 간이 좀 센 편이라 집 고추장에 설탕을 섞고, 조금 더 칼칼한 매운맛을 살리기 위해 고춧가루 작은 스푼을 넣어 준다. 그리고 간이 부족한 경우 간장으로 맞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이 땡긴다. 이유는 매운 음식이 강렬한 자극을 주고 이런 통증이 일시적 쾌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통한 보상 심리도 작용하게 되는데, 뇌에서는 매운맛으로 인한 강한 자극과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신경 전달 물질인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즉 정신적 스트레스를 육체적 고통을 동반한 짜릿한 쾌감 그리고 뇌의 작용으로 해소하게 된다. 따라서 심신의 위안이 필요할 때 더 매운맛에 끌리고 이 중독성에 매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