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시, <무화과 숲>에서

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안으로 단단히 피어나는 무화과처럼

by 홍반장

"오늘 당신의 마음을 건드린 문장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필사는 황인찬 님의 시, <무화과 숲>입니다.

읽을수록 아픈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무심히 툭 던져지는 그 아픔이.


그렇게라도 던져버리지 않고는 도무지 살아질 것 같지않은 시인의 마음이.






쌀을 씻다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쌀을 씻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어서, 혹은 쌀을 씻어야만 살 수 있는 스스로가 어이없어서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무화과 숲 대신 그저 삭막한 빌딩 숲만 있었을지도. 하지만 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안으로 단단히 피어나는 무화과처럼, 그곳은 이미 내면의 깊은 숲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떠났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나는 지금 쌀을 씻습니다.

그가 없어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기 앞에서 내가 한낱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라고 단숨에 뱉어버립니다. 그러고 나니 인간이라는 존재가, 사랑이라는 감정이 고작 이것뿐인가 싶어 서글퍼집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두 연으로 나누어 한 호흡을 더해봅니다.


'아침에는 / 아침을 먹고.'


이후의 사랑은 중간에 툭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게 마음껏 이어지는 사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사랑 그 자체에만 온 마음을 다해도 되는 시간. 그런 시간을 꿈속에서라도 간절히 마주해보고 싶습니다.


그 모든 아픔이 그저 '옛날 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제발 시점이 과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밤, 어리석은 꿈을 또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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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는 시]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밤을 기다리며


쌀을 씻다 멈춰 선채로, 아주 먼 옛날의 숲을 보았습니다.

밥을 짓고 끼니를 챙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때로는 가장 시린 법이니까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죄가 되지 않는 곳

그 누구에게도 혼나지 않고 온전히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 '무화과 숲' 같은 꿈을 오늘 밤 빌려오고 싶습니다.



20260218새벽

"오늘도 문장 사이에서 나를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