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프리오의 영화들

셔터 아일랜드, 인셉션, 레볼루셔너리 로드

by 독자

디카프리오에 한창 빠져있을 때 분단위로 쪼개 보고 다시 보았던 영화 세 편에 관한 글. 그의 필모는 상당히 많고 이 말고도 본 영화가 많지만 또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나머지는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첫 글에 별 거 안 썼는데 사천 자가 넘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


1.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

이렇게나 슬픈 영화인지 상상도 못 했던 자체로 반전이었던 단연 최고의 영화이다. 포스터만 보고서는 셜록 같은 주인공이 뭔가를 밝혀내는 영화인 줄로만 알았다. 분위기는 다소 어두워 보이긴 했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고 마음이 너무 쓰릴 정도로 슬펐다. 아내가 환상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인셉션이 많이 생각났다. 같은 해에 제작된 영화이기도 하다. 2010년이면 영화관에서 일할 때인데, 3월에 개봉한 셔터 아일랜드가 7월 인셉션이 개봉할 때까지도 상영관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도 볼 생각도 안 했던 과거의 나... 당시에 뭐 하고 지냈던 건지 문득 궁금해진다. 근무 중 수없이 보았던 마지막 장면인 테디와 척이 계단에 앉아있는 장면만 십 여년째 기억에 두고 있다가 엄청난 그 반전을 이제야 본 것이다. 몰라봐서 아쉬울 따름.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긴 하겠다. 그때 본 직원들이 재미없다고들 했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물론 나에게는 더없이 완벽한 영화이다. 서사는 물론이고 완벽한 연기에, 영상미까지. 특히 돌로레스가 처음 등장한 장면은 뮤직비디오같이 아름답고 레오의 돌로레스에 대한 슬픈 그리움을 깊이 느낄 수 있으면서도 복선이 드러나있다. 처음 볼 때엔 몰랐지만 다시 보니 영화 전체에 수두룩하다. 그 후에 개봉한 인셉션은, 다크나이트 감독인 놀란의 영화라고 셔터 아일랜드보다 홍보를 더욱 떠들썩하게 했던 것 같다. 큰 상영관 네다섯 개를 다 차지해서 여러모로 꽤나 바쁜 시기였었다. 그렇지만 다크나이트 개봉 전쯤부터 영화관에서 일하기 시작했었는데 희미한 기억으로 다크나이트가 더 폭발적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그리워지는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인셉션 역시 오래도록 상영관에 걸려있었고, 뭐든 한 박자씩 늦은 나는 상당히 작은 관으로 옮겨진 후에나 서너 번 더 보았었다.


디카프리오가 많이 울어서 마음이 많이 아프고 연기를 이렇게 잘하는 배우인지 새삼 깨달았다. 상 탈만한 연기 아닌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레버넌트에서는 그럼 얼마나 더 대단한 연기를 보여준 것인지 궁금해진다. 돌로레스가 보일 때면 곧바로 디카프리오 눈가가 촉촉해진다. 척이 닥터 시한으로 등장했을 때 배신감에도 울먹이고. 환상이든 간에 척을 실험 대상으로 만들 수 없다며 가파른 절벽을 내려가고 탈출구가 될 수 있었던(애초에 불가능이지만) 배를 타지 않고 등대로 향한 것은 척으로서 깊이 감동받을 일 아니었나... 척이 알아주지 않아서 내가 다 속상했다. 다카우에서 친위대를 죽인 일도 사실이 아니라고 닥터 코리가 그러는데, 그것도 죄책감이 만들어낸 허상인 모양이다.

(You were at Dachau, but you may not have killed any guards.)

죽기까지 한 시간이 걸린 그 사령관은 진짜인가? 어느 것도 확신하지 못하게 하는 전개로 여러 번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부에서 테디가 모든 기억이 돌아왔다고 증명한 후에 척에게 여기를 빠져나가자고 할 때 아주 짧은 순간, 척과 함께 연기한 줄 알고 기뻤지만 이내 척의 표정을 보고 크게 실망했고, 테디 상태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줄 알고 너무 불안했다

그러나 You know this place makes me wonder which would be worse? To live as a monster or to die as a good man? 하는 질문에 안도감을 느꼈다.

전두엽 절제술인가 하는 그 비인간적인 수술을 받으러 가는 것이든, 아예 생을 끝내는 것이든 결코 안도할 만한 결말은 아니나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테디로서 그렇게 당해버리는 것이라면 너무 안타까워 절망적이었을 텐데 괴로운 기억을 없애는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었으니까. 자신을 괴물이라 여길 수밖에 없고 다른 자아를 만들어낼 정도로 견딜 수 없는 그 기억이 너무 먹먹하고 속상하다. 돌로레스는 무엇 때문에 그 지경이 되었을까. 호숫가 회상 장면에서 총소리가 날 때 영화관 옆에 앉으신 분이 꺅 소리를 질러서 두 배로 놀랐다. 원작인 책도 나중에 읽어 보고 싶다.


2. 인셉션(Inception, 2010)

2010년 개봉 당시에 몇 차례 관람한 이후로도 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주기적으로 보고 듣는 영화이다. 듣는다는 것은 OST. 어느 날 각 잡고 인셉션을 보았다면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한 열흘에서 이 주일 정도는 같은 장면들을 돌려보고, Time 같은 삽입곡은 100번 가까이 들어야 비로소 그 주기가 마무리된다.


영화에서 새드 엔딩보다는 열린 결말이 보기에 편하다. 비극으로 끝나면 그 여운이 감당이 안 되어서. 대표적으로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있다. 어느 여름에 봤는데 물속에 잠긴듯한 그 멍하고 우울한 여운이 그 계절의 반의 반 정도 지속되었었다. 그렇지만 그게 싫은 건 아니다. 오히려 찾아서 보는 편인데 다만 마음을 좀 다잡고 정주행 시작을 해야 한다는 것뿐.


인셉션은 열린 결말이면서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


"You're waiting for a train. A train that will take you far away. You know where you hope the train will take you, but you can't know for sure. Yet it doesn't matter. Now, tell me why?"


"Because we'll be together!"


기찻길에 머리 베고 나누어도 낭만적인 대사. 맬과 코브가 얼마나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같은 대사가 극 중에서 총 세 번 나오는데 맬이 뛰어내리기 전에 외칠 때에는 소름이 돋는다. 코브는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반복해서 보아도 매번 공감되는 부분은 같고 이해 못 한 부분은 아직까지도 그렇다. 그렇기에 평생에 걸쳐 다시 보고 싶을 것이다.


3.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 2008)

타이타닉의 두 주인공이 다시 만난 영화. '첫눈에 반한 후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부분을 기대하고 소장으로 구매했는데 그러한 장면은 단 한 줄의 설명만큼만 나온다. 초반부터 독설을 퍼부으며 싸운다. 이 영화 이전에 본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이어 디카프리오가 아내에게 'I hate you'를 듣고 있다. 셔터 아일랜드, 인셉션에서도 그렇고 계속 아내와 뭔가 문제가 있는 역할이다. 이렇게 디카프리오에게 몰입한 상태라 그런지 몰라도 작중 에이프릴이 너무 답답했다. 겉으로 보기엔 안정되고 행복해 보이는 부부이지만 그 안에는 채우지 못할 공허함이 있다. 특히 에이프릴이 심각하게 헤매고 있는데, 꿈 많은 배우였던 그녀는 프랭크와 첫눈에 반해 결혼하고 아내, 엄마의 역할에 갇힌 것이다. 더군다나 배경이 1955년이다. 당시 사회적 배경을 잘 아는 것은 아니나 여성이 꿈을 찾고 자아를 실현하기에는 걸림돌이 많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에이프릴은 프랭크에게 당신이 날 덫에 가두었다는 식으로도 화를 내지만 실은 에이프릴에게 펼쳐진 문제들은 남편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꾸만 프랭크에게 쏟아내고 지난한 싸움이 계속된다. 프랭크는 수시로 아내의 기분을 살피면서 위로의 말이며 노력을 하지만 에이프릴은 아랑곳하지 않고 프랭크를 몰아세운다. 중후반부쯤에는 대화하자는 프랭크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모든 걸 이야기해야 하느냐고 회피하다가 싸움이 더 번진다. 이러니 마지막으로 식사한 아침, 프랭크가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해결책은 없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다음 날, 프랭크도 아마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해결 방안 없는 싸움은 여기서 멈추고 새롭게 시작하거나 아니면 이혼하는 것. 그런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오는 프랭크를 에이프릴은 살갑게 대하며 아침을 준비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밤새 애타는 심정이었을 프랭크는 긴가민가 하는 표정으로 아내를 살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마움을 표한다. 지금껏 먹은 아침식사 중 최고였다면서. 무심한 게 아니라 그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을 것이다. 안도하는 마음으로 출근하는 프랭크를 배웅하고 에이프릴은 태중의 아이와 죽음을 맞는다. 작중 낙태 허용 기간이 12주였는데 그 이후였으니 아마 죽음도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 과다출혈로 숨지고 병원에서 소식을 들은 프랭크는 오열하고, 슬픔으로 가득 차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쉼 없이 달린다.

파리로의 이주가 무산되고 에이프릴의 결말은 예상할 수 있었는데, 영화의 엔딩이 너무 인상적이고 소름이 돋았다. 휠러 부부의 이웃들의 태도. 밀리는 새로 이사 온 젊은 부부에게 안타까운 마음인 척 휠러 부부의 이야기를 전한다. 파리로 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부러움과 상대적 박탈감에 뒤에서 눈물을 흘리더니 홀로 아이들을 기르는 프랭크 이야기를 안줏거리처럼 삼는다. 더 심한 건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헬렌 부인이다. 휠러 부부가 기차에서 내렸을 때부터 특별함이 느껴졌다고 비위를 맞춰대고, 정신 병동에 있던 수학자 아들의 수준 있는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며 집에 함께 찾아오곤 하더니 일이 일어난 후에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변덕스럽고, 예민하며 짜증스러운 구석이 있었다고. 집도 험하게 써서 일찍이 나가지 않은 것이라고. 어쩜 그리도 가식적인지. 듣고 있던 헬렌의 남편은 보청기 볼륨을 서서히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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