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고슬링의 영화들
그제 영화관에서 재개봉 영화 노트북을 보았다. 대학교 입학 초반에 친구에게 추천받았던 영화인데 드디어 보게 된 것이다. 추천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의 세월... 영화, 드라마, 책 추천을 수도 없이 받아보았고, 알려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는 꼬박 전하지만 이처럼 실제로 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싫은 것이 아니고 그저 잘 내키지 않은 탓인데 까닭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라이언 고슬링도 OTT에서 꾸준히 찾아보거나 개봉 소식이 들리면 망설이지 않고 영화관으로 향하게 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단연 첫 번째는 디카프리오요, 두 번째는 제이크 질렌할, 고슬링은 적어도 다섯 손가락에는 들지 않을까? 고슬링의 매력을 알게 된 계기는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보았던 영화 드라이브인데 조용하고 서늘하면서도 예쁜 미소 덕분이었다. 마치 로봇처럼 감정 표출 없이 아름다운 미소만 보여주는 모습이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더불어 그의 상당히 차분한 목소리와 전체적으로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예고 없이 나오는 잔인한 장면들이 새로움을 주기도 했다. 이는 영화 미드소마 이후로 징그러움에 대한 역치가 높아졌기에 피가 낭자한 영화들에 거북함을 가지기보다 그 자체로 이해하게 된 덕분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 이후로 선택한 작품도 그 유명한 라라랜드가 아닌 블루 발렌타인이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나의 사고 흐름에 궁금증이 인다. 다만 시월 초에 본 영화 조커:폴리 아 되가 라라랜드의 어두운 버전이라는 평도 있었기에 조만간 보고 싶은 목록에 있기는 하다.
블루 발렌타인은 마음이 아픈 영화였다. 연애 시절 신디와 딘의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빛이 났지만 결혼 후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다름에 지치고 만다. 그 과정에서 딘은 한없이 초라해지는데 그 부분이 무엇보다도 괴로웠다. 함께 사랑하던 사이에서 하나를 그토록 초라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원망스럽고 동시에 신디의 입장도 공감이 되었기에 이러한 양가감정 사이에서 제삼자인데도 그저 힘에 부쳤다. 딘은 죄가 없다. 신디를 아끼고 사랑했을 뿐인데 이렇게 작아져야 하는 것일까. 작아지는 정도를 넘어 비참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둘의 간극이 성격이나 성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며 보다가 신디 가족과 딘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보며 배움의 차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 마음이 시리고 울적했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니기를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정확히 어느 쪽에 더 공감을 하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영화나 책처럼, 혹은 주변 사람들처럼 깊고 불같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기에 그저 어느 입장이든 두렵고 벌써부터 회피 기제가 발동하려고 한다. 어떤 외적인 요인으로 인한 것이 아닌 둘 사이의 감정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이렇게 먹먹하고 쓰라린 것이라니 초반의 설레는 달콤함이 있다 해도 이리 다른 면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면 나의 삶에 차라리 오지 말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면서도 초라함에 대한 상념을 폭넓게 적고 싶은데 경험 부족으로 인하여 제목을 지을 때와 다르게 좀처럼 펼쳐지지 않아 아쉽다. 읽고 있는 책 중 초조한 마음 또한 인간의 감정 중 연민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영화에서의 비슷한 감정과 공감을 느끼게 될 것 같은데 그 와중에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될는지 궁금하다.
다시 돌아와서, 영화 노트북은 해피 엔딩이다. 블루 발렌타인에서와 같이 천생연분처럼 사랑하는 모습을 보며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예감했지만 기쁘게도 그 예상은 빗나가 한날한시에 부부가 함께 세상을 떠나는 결말이다. 이는 나에게 있어 더없이 행복한 끝맺음인데, 죽음 그 자체의 불확실함보다 두려운 것이 상실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느끼는 그 절망을 겪을 필요 없이 함께 죽는다는 것. 로미오와 줄리엣도 하지 못한 완벽한 사랑의 결말... 결말은 이렇듯 행복했으나 중반부 노아와 앨리의 이별 즈음부터 블루 발렌타인처럼 둘의 환경 차이에서 오는 다름으로 헤어짐을 앞두고 초라해지는 노아의 모습에 사랑에는 초라함이 꼭 따라붙는 그림자 같은 것인가 라이언 고슬링이 이런 영화에만 출연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불편하고 혼란스러웠다. 너무나 흔한 클리셰로서 그저 지겹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볼 때마다 안타까움에 숨을 크게 내쉬게 되는 건 두 사람이 사랑한다면 함께 더욱 귀하고 빛나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나의 치기 어린 짧은 생각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