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무게와 AI의 매끄러움 사이에서)
나는 글을 쓸 때 AI를 이용한다.
마지못해서도, 거창한 의식 때문도 아니다 - 이제는 그저 작업의 일부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고백 아래에는 다른 마음도 있다.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 보이고 싶은 마음.
조금 더 단정하고, 조금 더 통찰력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
예전의 글쓰기에는 늘 편집자가 있었다.
책이든, 신문이든, 잡지든 - 누군가는 글을 읽고 묻고, 덜어내고, 다듬었다.
작가를 더 또렷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쓴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이제는 내 옆에 다른 존재가 앉아 있다.
대신 써주는 존재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다. 묻지 않아도 반응하고, 언제든 응답하는 존재.
어떤 면에서는, AI가 예전의 편집자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나는 나의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70년 동안 살아오며 쌓인 기억들, 일과 실패, 관계와 후회, 말하지 않고 남겨둔 일들까지.
그리고 말로 다 하지 못한 생각들.
모든 글은 거기서 시작된다.
AI는 삶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내가 꺼내놓은 것 위에서만 움직인다. 그리고 곧바로 답이 돌아온다.
문장이 정리되고, 흐름이 잡히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방향이 열린다. 때로는 생각만 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말해준다. 그럴 때면 조금 어지럽다. 이렇게 쉽게 글이 만들어져도 되는 걸까 싶어서.
하지만 진짜 글쓰기는 그다음에 시작된다.
나는 다시 읽는다. 천천히, 여러 번.
어떤 문장은 남기고, 어떤 문장은 지운다.
너무 매끄러운 문장은 덜어내고, 나답지 않은 표현은 고친다.
“이건 내 말이 아니다.”
“여기는 조금 열어둬야 한다.”
그렇게 계속 묻고, 고치고, 다시 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작가이면서, 동시에 편집자다.
AI가 만든 문장을, 다시 내가 고치는 사람.
예전에는 며칠이 걸리던 일이 이제는 한 자리에서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쉬운 것과, 진짜 사이의 거리.
나는 여전히 그 사이에 서서 쓴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를 붙잡고 있다.
글의 시작은 언제나 나라는 사실이다.
AI에게는 어린 시절이 없다.
오래 살아온 시간도 없다.
후회도, 다짐도, 스스로를 설득해 온 기억도 없다.
어떤 문장을 쓰기까지 무엇을 견뎌야 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건 오직 나의 몫이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AI가 만들어준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글은 점점 더 매끄러워진다. 읽기 쉬워지고, 그럴듯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글이 나의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AI를 지름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울에 가깝다.
때로는 나를 더 날카롭게 만드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제 질문은 단순하다.
AI를 쓰는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남아 있는가다.
내 생각을 AI가 대신하게 놔두면, 나는 사라진다.
하지만 끝까지 내가 선택한다면 -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 그 글은 여전히 나의 것이다.
결국, 나는 내 이름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판단도, 목소리도, 책임도 모두 나에게 있다.
AI는 도울 수 있지만, 나를 대신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는 원래 혼자 하는 일이 아니었다.
항상 누군가와의 대화였다.
편집자와, 독자와, 그리고 나 자신과의 대화.
이제 그 대화에 하나가 더 늘어났을 뿐이다.
기계라는 존재가.
하지만 그 문장 뒤에 있는 삶 - 70년의 시간 - 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그건 살아낸 사람만이 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신중하게.
AI 덕분에 문장은 조금 더 쉽게 올지 모른다.
하지만 결정은 그렇지 않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
무엇이 나의 것인가.
그 자리에서, 글쓰기는 다시 시작된다.
나는 여전히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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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6년 1월 3일 “Hanoi Star”가 발표한
(AI 시대의 글쓰기: 내 안의 허영과 마주하기)에서 시작되었다.
그 글이 던진 질문을, 나의 삶 위에서 다시 이어가 본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