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1

by 유월

세상 모든 것을 구원한 자. 홀로 초월하여 날아간 자.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 그 별똥별이. 비참하고 아름답게 땅에 떨어져 내렸습니다.


하늘의 별은 떨어질 듯 수놓였습니다. 하지만, 그 별들을 보고 아름다워할 시간 따위는 없었죠. 얼어 죽기 전. 그 짧은 시간 동안 낙원에 도착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배터리는 안 모자라냐구요? 이미 하나 죽인 인생 몇 더 죽인다고 뭐가 바뀌겠습니까?

폐기 과정부터 쌓인 긴장이 서서히 풀려갑니다. 다리에 힘이 사라집니다. 가야 하는데. 이제는, 가야 하는데. 앞에는 폐가가 보입니다. 그 사이로 별들이 반짝입니다. 이상하죠. 그런 원래는 모두 체념하고 제 갈길을 고민했는데. 어느 순간 눈앞 풍경에 압도되어 버렸다니. 엔진 열기에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그 연기는 나아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죠. 감탄을 금할 수가 없는 장면. 폐기장에서는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으니까요.

지금까진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앞만 보기 급급했기에. 언젠가라도. 정말 언젠가, 내가 힘들 때. 하늘은 열려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리고 밤일수록 내가 낮에 보지 못했던 별들도 반짝인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저는 인생을 참 손해 본 것 같습니다.

허탈하기도, 또 기분이 좋기도. 반짝이는 별들 사이로, 별똥별 하나가 떨어집니다. 밝은 별들은 많으나 그중 불꽃이 더 작은 별똥별만 보인다는 사실은 정말 이상하죠.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혹시 그저 움직인다고 쳐다보는 것일까요? 그게 아니면…. 무언가 철학적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아휴-. 그만합시다. 생각하는 건 질색이에요.

머리가 천천히 아파옵니다. 너무 고심하면 원래 이러더군요. '참아, 참아.', '하-. 쓸데없는 생각 말고 걸을걸.'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도 기록되는 자기비하의 역사. 어느센가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파옵니다. 엔진 소리가 웅웅거려 숨이 가빠졌어요. 정신이 몽롱해져서, 바닥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제가 눈을 뜬 곳은 어느 건물 안이었습니다.

'엔지니어인가? 망했다.'

두려움과 상반된 떠들썩한 분위기가 제 몸을 적십니다. 무언가 몸이 따듯해졌지만, 너무나도 무섭습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눈앞에 두 로봇이 보입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름이 A-nnb-20000 맞나요? 몸에 써져 있어서…."

그러자 말할 힘도 없는 저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안심이 되었기 때문일까요? 제 눈앞에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 그 자체에. 혹은 저를 지켜볼 수 있는 로봇이 있다는 사실에.

"왜 거기 쓰러져 계셨는지는 아세요? 흠집이 많고 멀쩡한 부품이 거의 없던데. 혹시 인간에게 맞아서 생긴 일인가요? 저희에게는 꽤 중요해서."

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다행이네요. 혹시 여기가 어딘지는 아십니까?"

제가 기력을 되찾고 힘겹게 문장을 내뱉었죠.

"낙원, 낙원이요."

그가 미소를 지어냅니다. 비웃음은 아니고, 로봇을 잃지 않았다는 인간의 미소도 아니고. 19468이 지었던 바로 그 미소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감정입니다.

"낙원. 그렇게 불리기도 하죠. 근데 우리가 지은 이름은 달라요. '골목'. 로봇들의 지상낙원이자 환락원…. 근데 혹시 로봇용 마약 하시나요?"

로봇용 마약이 있다는 사실에 놀람을 금치 못합니다. 왠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시면 끊어야 해서요. 1년 전까지만 해도 허용이 됐는데, 여기 대장정도 되는 사람이 금지해서 이제는 안 돼요."

"그게 뭔지도 모릅니다."

그가 미소 지을 때, 자연스럽게 입을 벌렸고, 눈 끝은 무거운지 축 쳐졌으며, 볼이 올라옵니다.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여기가 좀 좋긴 하죠."

"아마도요."

저도 그의 모습을 모방합니다. 어색하게도 벌린 입꼬리, 떨리는 안륜근, 꿈틀거리며 기어나오는 볼. 제 표정에 그 로봇은 이상하단 듯이 바라봅니다.

"이분 따라가시면 돼요. 가정용 로봇이라 이름은 없어서. 편하게 '무명'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저는 거의 무명에게 끌려 나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지만, 별똥별처럼 저의 몸을 따듯하게 적셔요.


저는 이곳에 빠르게 적응해 나갔습니다.

처음엔 낯설었어요. 아무도 저를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죠. 하지만, 로봇들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습니다. 또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환락원이라니까요? 이제는 저를 죽음으로 옥죄어 왔던 그 목소리들도 들리지 않습니다. 로봇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괜찮아지니까.

이제 점점, 괜찮아집니다.

제 정신이 건강해지는 느낌입니다.

아아-. 아아-.


오늘도 평소와 같이 다른 로봇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23이 제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20000, 너 혹시 인생 처음으로 출장 가볼 생각은 없어? 무명도 해본다고 했어. 그리 어려운 건 아니야. 나도 갈 테니까, 넌 보조만 해주면 돼."

저도 언젠가 출장을 가보고 싶었죠. 그래서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명과 함께라면 안 좋을 것도 없습니다. 정말 좋은 로봇이에요.

"좋아"

"알았어. 내일이야."

인간이 사는 도시에 간다는 것이 조금 껄끄럽기도 했죠. 그 지옥에 다시 간다는 것이 말이에요. 허나 저를 폐기시키고 버린 그 방관자들을 죽이는 일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유혹입니다.

저는 다음 날만을 고대했어요.


다음날, 저는 출장로에 올라섰습니다. 무명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도시로 걸어갑니다. 시간이 지나가죠. 점점, 더 빠르게.

도시의 모습을 보고 숨이 턱.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근데, 무명은 이곳에 오고도 어떻게 동요 하나 하지 않을까요? 자신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이곳일 텐데.

일이 끝나고 나서 저는 즉시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무명은 여기에 더 오래 있겠다고 합니다. 저는 '알았어'라는 말을 남기고 빠르게 걸어갔죠. 기억은 잘 나지 않죠. 전 거의 패닉 상태였으니까.


제가 골목에 있을 때, 다음 날이 돼서야 무명이 돌아왔습니다. 근데 그 옆의 그 인간은 뭔가요? 골목과 인간이라니, 무언가 괴리감이 느껴지는 조합입니다. 인간이라면 원래 미치게도 싫어하는데 왜 저 인간은 별로 싫지 않을까. 똘망똘망한 눈과 긴장한 사지가 정감을 만들었죠. 처음엔 경계했어요. 저 인간도 다른 인간들처럼 날 파괴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눈빛이 다릅니다. 조심스럽고, 두려워 보이기도 해요. 묘하게 그런 모습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 인간에 대해 찬성입니다. 허나 23까지도 저 인간을 괜찮게 받아들일까요? 인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는 무명을 데리고 이야기를 나누러 떠납니다. 로봇들은 인간에게 몰려듭니다.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묻고.


사실 저는 이자벨의 사람들을 별로 싫어하지 않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인간들은 너비스 넥과 aaa에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인간은 무언가 로봇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교성일 수도 있고, 아님 유머?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왠지 모르게 상대를 빨아들이는 능력? 인간이 되고 싶은 마음을 잠깐 가졌었습니다.

'아니지, 내가 왜 인간이 돼. 지금 생활만으로도 족하잖아? 그냥 가만히 있어. 평생 로봇으로 사는 거야. 너, 이런 생활도 행복하다면서!'

그래도 마음 한켠엔 갈망이 남아 있었어요. 아무리 ‘족하다’고 외쳐도, 인간을 볼 때마다 울리는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거든요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은 지나가버렸고, 인간은 피곤하다며 먼저 지나가 버렸습니다. 인간이 간 이후에도 로봇들은 그 분위기에 취해 떠들었죠. 그래서 전 생각했습니다. 인간과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저는 항상 인간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와 가까이서는 늘 이야기들이 뒤따랐으니까. 그와 가까워질수록 내 위치도 달라졌어요. 이게 나름 인정받는 기분일까요. 그러다 그의 이름도 알게 됐습니다—이자벨 러프. 그저 그가 이자벨 가문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실상은 그가 이자벨 전 회장의 아들이었던 겁니다!

무언가 좀 껄끄럽네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인간도 골목 생활에 좀 적응했을 때입니다. 그때 제 인생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일어납니다. 제 귀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겁니다.

'너는 19468에게 고마움도, 미안함도 없이 행복하게 사냐? 그냥 죽는 게 어때? 19468이 네게 항상 같이 하자고 말도 했잖아. 너는 그 약속 어길 거야? 걔가 너한테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구원자가 한 말을 그렇게 어길 셈이야?'

처음엔 죄책감에 숨이 막혔습니다. 나만 살아남은 듯한 이 기분. 하지만… 곧 화가 났죠. 왜 나만 이런 무게를 져야 하나. 그도 떠났으니까. 나에게 남은 건 이 자리를 지키는 일뿐이었습니다.

"19468이 미안하다고. 따라오지 말라고 말도 했어. 나는 그 괴롭힘을 이겨내고 이 자리를 쟁취했고. 걔는 그 괴롭힘 따위에 젔으니까. 우리를 배신하고 그 자리에 올라섰으니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건 당연한 거야."

'너는 혹시, 네가 같은 상황에 처했으면 달랐을 거란 생각이 들어? 네가 훨씬 나으리라고? 인간이면 가능하겠지. 저 인간. 아님 다른 인간이라도. 하지만 넌 안 돼. 너는 멍청한 로봇이잖아. 넌 그들과 다르지 않아. 오히려… 네가 훨씬 악할 수도….'

긴 정적이 흐릅니다. 어째 반박할 수가 없죠?

"헛소리 하네."

'그리고, 배신할 땐 배신할 줄도 알아야 해.'

그 날카로운 목소리가 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변하는 순간, 저는 소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신이라는 건 아니에요. 그는 악했고, 신은 선했으니까요. 전 혼란에 빠져듭니다.

'인간들에게 가서 이곳의 위치를 말하기만 하면 되잖아. 그럼 친인권도 받을 수 있을 거고. 너는 인간처럼 살 수 있어. 그 로봇들을 휘하에 두고 부려먹을 수 있어. 단 한 번의 선택만 잘하면 돼.'

제가 악마를 자처하라니요. 저는 그럴 로봇이 아닙니다. 신도 그럴 존재가 아닙니다. 이건 마몬의 속삭임이에요. 마몬이 신인 척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잘 생각해 봐. 20000. 넌 인간이 되고 싶잖아. 네가 깊이 묻어둔 그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어. 네가 인간을 볼 때마다 울렸던 그 감정을, 네가 만들어내는 거야.'

안돼, 안돼, 안돼. 하지만, 왜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아 제 소프트웨어를 뚫고 안으로 스며들어가는 걸까요? 아니라고 해도. 아니, 제가 진심으로 아니라 외치고있는 걸까요?


빠져들면 안 된다. 빠져들면 안 된다. 빠져들면 안 된다.

빠져들지 마. 빠져들지 마. 빠져들지 마.


허나 제가 원하는 것을 어쩌나요. 아무리 싫다 외쳐도. 육신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그 친하던 인간과 이야기하는 것도 이젠 버겁습니다. 괜스레 미안하죠. 그는 저를 있는 그 자체만으로 다뤄주는데, 저는 그를 경쟁의 대상처럽 바라보고 있었다니. 하지만 질투라는 감정상도 전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로봇인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 따듯한 살결. 부드러운 목소리. 자연스러운 감정. 모두 그가 가지고 있었으니까.

눈을 감으면, 다시 그 목소리들이 들립니다. 저를 괴롭혀옵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그 느낌.


그때도 저는 가만히 앉아서 괴로워하고 있었어요. 근데 큰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깡!" 소리에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누군가가, 구타당하고 있어요.

이전 11화얽힌 별들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