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고함소리-1

by 유월

차별의 세상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고함을 질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목 놓아 불러 지르는 고함이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때 가장 쓰라린가 봅니다.


황혼의 시간엔 해가 천천히 져 내려가는 모습에 안정을 취했습니다. 하나 둘 올라오는 별빛은 제 심장에 닿아 반짝였죠. 따듯한 볼에 차가운 바람이 닿아 붉게 물들어갑니다. 천천히, 천천히, 저는 내려앉는 눈꺼풀과 사무치는 바람소리에 신경을 집중해 보았습니다. 20000.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며칠째 돌아오지 않는 20000. 오늘 자정까지 그가 돌아오지 않으면 사망 처리가 되어 장례를 치러줘야 해요.

'너도 가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사라고.'

그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이제는 진짜 퇴출될 수도 있습니다. 그전까지 모두에게 낙원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제가 가장 슬픈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는 게 더 중요합니다. 과거의 저였으면 제 안위만 살피느라 흐르는 눈물 속에 이기심을 담아 흘려보내었을 텐데.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 인간다움을 되찾았나 봅니다.

그가 갔음에 우는 게 아닙니다. 그가 가도 아무것 할 수 없음에 눈물이 흘러갑니다. 흘러간 눈물에는 별빛이 비쳐만 갑니다. 떨어지는 공포와 후회는 땅에 적셔가 바람에 날려 세상에 스며듭니다. 이 사죄의 편지가 그에게 닿을 수 있기를. 이 공포를 그와 나눌 수 있기를. 만약 나중에 고철덩어리가 된 그를 만나게 된다면, 여기에다 묻어줘야겠네요. 벌렁이는 가슴과 태워지지 않는 억울함은 제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을 겁니다. 신이시어, 제가 옳은 것 아닙니까? 사랑, 공존, 평화. 그게 당신이 원한 것 아니었습니까? 저는 잘 살았잖아요. 근데 왜-. 나날이 불행해집니까….

충동 반, 자의 반으로 제 뺨을 한 대 후려치고는 연기를 준비하며 골목에 다가섭니다.


"안녕! 벌써 별이 뜨더라?"


무명이 떠나기 전, 사실 저는 그에게 제 이야기를 털어놓았어요.

"무명, 내가 왜 사랑하는 존재에 대해 말을 안 하는지 알아? 내가 왜 인간을 그렇게 싫어하는지는 알아? 골목에 왜 규칙이 생겨났는지는 아는 거야?"

무명이 궁금해하는 눈치였거든요. 왜 제가 인간을 그렇게나 증오하는지 말이죠. 제가 말할 때를 보면, 가끔씩은 저도 제가 그들을 심각하게 싫어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있어요. 제 눈에는 분노와 그리움이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어요. 슬픔과 미안함이 서린 얼굴.

"해 봐. 예전부터 궁금했거든."

제 정체를 당당하게 알린다는 것이 정말 무섭기도 하지만, 그게 뭐 대수랍니까?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그걸 모를 것 같아? 23. 골목의 대장격이자, 로봇들의 우상인 23."

"내 진짜 이름이 A-23이긴 하지. 근데 말야, 나를 모르는 로봇들이 나를 칭하는 이름은 달라."

저는 단숨에 공기를 사로잡았습니다. 그의 온 신경이 제게 집중합니다.

"내가 ACD-2야. 네가 ACD-1로 아는 로봇은 A-10이고. ACD-3은 A-24야."

"그럼 왜 A-23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건데? 그리고 왜 다른 로봇들은 네가 ACD-2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거지?"

단 한치의 놀람도 없이 침착함을 유지합니다. 지금 보니, 죽을 로봇 앞에서는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을까요? 그 반응으로 더 오히려 제가 더 놀랐습니다. 그때, 저는 눈을 감습니다. 무언가를 추억합니다. 미소를 지으면서.


"23! 일어나! 빨리빨리 움직여! 한시도 쉬지 마! 뜸 들일 시간 없어."

제가 처음 일어났을 땐, 엔지니어들이 닦달하는 모습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혼란스러움과 함께 화살표에 따라 이동할 뿐이지요.

화살표는 전쟁터에 닿습니다. 그저 코딩되어 있는 대로 상대를 죽여나가는 게 제 임무였기 때문에. 영웅이자, 괴물이자, 무기인 제 몸뚱이를 이끌고 적들이 비명 지르는 꼴을 섬찟하게 쳐다보았습니다.

"저, 저리 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반항하고 저항하는 것이 뿐, 우리는 재앙 그 자체였죠. 죄책감 따위는 사치였습니다. 제가 태어난 이유, 완전한 목적.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감정 따위가 뭐 중요하답니까?

결과는 21대 박살. 3대 가동 가능상태. 남은 로봇은 A-10, A-23, A-24 세대였지요. 죽은 로봇들의 빈자리는 같은 이름의 로봇들이 채워나가면서.

특이점은 그때 생겨났습니다. 23과 24를 필두로 반란이 일어난 겁니다. 14대 10의 전투는 무승부로 끝났고, 저를 포함한 10대의 로봇들은 황폐화된 도시로 들어가 버렸죠. 그래서 동쪽으로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겁니다.

"23. 우리 얼마나 더 가야 해? 이제는 힘들어. 여기서 정착하고, 물자 부족할 때에는 그냥 도시에서 가져오자. 우리가 새벽에 빠져나와 다행인거지, 내일 밤이 다가오면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니까."

24가 말합니다. 그저 투정에 가까웠으나, 모든 로봇들이 그녀의 말에 동참하였습죠.

"그냥 걸어. 다른 도시가 나올 때까지."


"야 23! 여기 들어오고 싶다는 손님이 왔어! 길거리에 나앉아 있길래 불쌍해서 데려오긴 했는데, 괜찮을진 모르겠다. 네가 데리고 나가라 그러면 나갈게."

24가 말했습니다. 그녀가 뒤에 숨기고 있는 인물은, 누가 봐도 인간이었어요. 유기체로 된 몸을 가진 인간. 저는 놀랍게도, 그를 반깁니다.

"안녕?"

어린아이였어요. 그리고 저처럼 불쌍했어요. 저는 이곳을 이렇게 부르죠. '불쌍한 자들의 쉼터, 골목.' 누구든지 도시에서 힘들었다면 와서 살 수 있는 곳.

그는 이제 이 쉼터의 11번째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게 악몽의 시작이었지."

제가 무명에게 말했습니다.

"인간을 들인 게? 그게 뭐 어때서?"

무명이 묻습니다.


어느센가는 인간도 자라서 출장에 다녀올 수 있게 되었어요. 인간의 셈법으로 말하자면, 이제 막 성인이 되었다고 말하면 될까요? 그는 출장을 떠났고, 5일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 찾아왔습니다. 무장한 인간들과 로봇들이라는 손님과 함께. 그들은 쉼터를 파괴하고, 힘들여 만든 건물들은 모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쉼터는 이제 유적지가 되어버렸지요.

저를 제외한 모든 로봇들은 죽었습니다. 필사적으로 죽은척 했으니까 말이죠. 저는 일어나 흔적을 지켜봅니다. 친구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 봇 하는 느낌은 정말 큰 공허함입니다. 남은 육신을 끌어당겨 도시로 향한 후, 인간들을 학살하였죠. 이게 ACD-2의 결말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나?"

"내가 어떻게 그때를 잊어. 155년쯤 전이지."

"그럼, 그 인간의 이름은 기억해?"

그가 깊은 한숨을 쉽니다.

"네가 도시에 있었을 때 주인이 저 꼬마, 이자벨 러프였다고? 그리고 저 꼬마의 아비 이름이 이자벨 클리프랬지? 그의 할아버지라고 하면 알아들어?"

그 꼬마의 이름은 이자벨 탈이랬어요.

"근데 넌 내가 지금도 괜찮아? 내가 네 주인마저 증오하고, 인간을 학살한 장본인이란 것을 아는데도? 너는 학살에 관한 말은 다 싫어하잖아. 왜 인간을 죽여야만 하냐고 하면서."

제가 말합니다. 하지만, 우울감에 빠져버린 저를 구출해 준 것도 그였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했던, 그건 그저 과거일 뿐이야. 지금의 네가 변화한다면 그건 변화한 너일 뿐이지. 반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보상이나 처벌이 아니니까. 네가 바뀔 것이라는 그 마음과, 네가 모두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마음,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바뀐 행동이 진짜 반성이지."

"내가 어떻게 해야 모두에게 용서를 구할 수 수 있지? 바뀐 너를 보면 항상 무언가가 끓어올라. 내가 죽인 그 모두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거야?"

제가 말합니다.

"네가 병원에 있었을 때의 말이 갑자기 엔진을 파고들더라고. 그 모두를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네 말을 점점 이해해가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생각했던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진 않은 것 같아. 내가 증오해야 했던 대상은, 그저 탈에서 끝나야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도, 아무리 버거워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마. 아직도 고통에 몸부림치 이들이 수두룩하니까. 하지만, 네가 패배자라고 생각하지도 마. 끼친 만큼, 도우면 돼."

저의 눈동자에는 신이 아려있었습니다. 초월자이자, 구원자인 신이 말입니다.

"인간도 너를 도와주고 있었던 거야. 이걸 가장 먼저 이해한 사람이 인간일 테니까. 아버지를 죽인 너를 아무리 증오해도, ACD-2를 기다릴 방법을 찾아낸 거지."

"고마워."

제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흐릅니다.

"괜찮아. 그냥 울어도 돼."


이렇게 저희의 여정은 새 시작을 알립니다. 이 골목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죠. 허나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그게 어떻게 이어지더라도, 끝은 아름다움이 감각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죠. 진짜 이야기의 시작. 그 결말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전 16화욕망에 휩쓸리는 인간-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