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리뷰
특별히 기다렸다가 본 영화는 아니다. 언니가 대도시사랑법 무대 인사를 본다고 하길래, 여유로운 휴일에 할 일이 없어서 선택했을 뿐이었다. 20대 청춘 로맨스라서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대 차이를 확연하게 느끼고 당황할 수도 있겠다고 예감했다. 웬걸. 보는 내내 온전하게 빠져들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미친년과 게이가 주인공인 영화는 이론으로만 생각했던 일들이 구체적인 현실 에피소드로 찾아들어 눈물샘을 자극했다.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여성의 결핍은 '나이트 죽순이'로 규정되었고, 남들과 다른 게이의 정체성은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청춘의 리얼 버라이어티 일상을 피부에 와닿을만한 온도로 실감하며 다시 물었다.
'나는 내 자식이 동성애자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딸이 원나잇으로 임신을 했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편견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며 산다고 믿는다. 나와 다를 뿐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놓고 막상 이태원 게이바 골목을 우연히 지나다가 당황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이율배반적이라고 느꼈던 최초의 순간이 영화와 겹쳤다. 머릿속으로는 단순 명료하게 정리되었던 문제들을 섬세한 드라마로 접하자 자신이 없어졌다.
내 자녀라면, 사랑하되 간섭하지 않고 존재를 존재대로 인정하는 성숙한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영화는 우리 내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마녀사냥을 자연스럽게 다룬다. 남성 톡방에서 여성을 상품화해서 평가하고 다양한 가십을 만들어 퍼뜨리는 장면은 익숙하고, 남녀 간의 동거란 그렇고 그런 지저분한 가십성 안주거리로 적당하다. 분노를 느끼며' 이의 있다'라고 외치고 싶은 정의로움이 솟아나지 않는다. 집착이 폭력으로 변질되는 장면도 한두 번인가. 사랑이 저문 시대에 남은 것은 우정의 연대뿐이라며 씁쓸함만 커진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달라져도 사는 일은 비슷한가. 뻔하디 뻔한 타인의 시선 앞에서 온몸에 안간힘을 주며 강한 척, 버티는 재희를 지켜보며 많이 울었다. 나도 잘 모르는 것이 내 인생인데 사람들이 왜 나를 평가하느냐며 주저앉아 통곡하는 재희는 시대도 세대도 분명 다른데 나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오십이 넘도록 살아도 인생을 몰라서 같이 울고 싶었을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재희였다.
우리는 인생에 정답은 없는 거라며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살아도 살아도 인생을 모르겠고,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며 흐지부지, 어영부영 회피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그러면서 남의 인생은 쉽게 마침표를 찍는다. 나와 조금만 달라도 이슈화해서 부풀려 재생산하기 바쁘다. 내 이야기는 도마에 오르길 바라지 않으며 남의 이야기는 잘디 잘게 썰어댄다. 나도 그런 존재에 포함될 수 있다. 소문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강의실 앞에서 가슴을 까는 나이트 죽순이, 원나잇으로 임신을 하는 젊은 여성이 있다면 마찬가지 잣대로 단정할지도 모른다. 이 명제에서 떳떳한 사람은 극소수겠지.
흥수와 재희의 경험이 양심의 좌표가 된다. 남의 인생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우습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인류애를 확장하고 싶다. 내 기준에 나쁜 사람이라 해도 함부로 단정하지 말자고 결심하게 된다.
미친년과 게이의 동거는 신박해서 재미있다. 우정에 남녀가 필요할까. 진짜 우정은 남녀 사이에서 더 강해질 것도 같다. 여성끼리의 질투나 남성끼리의 허세가 없으니 훨씬 강한 연대감이 생기지 않을까. 술에 절어 사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나도 그 나이엔 그랬던 것도 같다. 남들의 시선으로 인해 벌어지는 오해는 속상하면서도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있어서 짜릿하다. 재미요소로 이만한 에피소드가 없겠다. 경험해 보지 못한 요즘 시대 청춘을 지켜보는 일은 웃음 나도록 즐거운데, 하필 미친년과 게이의 사연이라 자꾸 눈물이 흐른다.
특히 흥수가 마음에 더 남는다. 엄마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는 게이라는 정체성. 감추려다 보니 사랑에 솔직할 수 없어서 결국 사랑을 놓치는 장면은 안타까워서 눈물 난다. 언제까지 기다려줄 것만 같았던 순수한 사랑은 떠나 버렸다. 떠난 후에 느끼는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소리 내어 우는 흥수에게서 새롭게 발견한다. 흥수만큼은 아니겠지만, 왠지 나도 아프다.
미친년이고 헤픈 년이고 걸레라서 데리고 놀아도 되는 취급을 받는 재희를 지켜보는 일은 가슴이 시렸고, 그랬던 재희가 정신을 차리고 가야 할 길을 찾는 장면에서는 딸처럼 뿌듯했다. 배경이 좋은 남자에게 맞춰주느라 다소곳해진 재희의 변화는 뼈 아팠지만, 결국 고생 뒤에 좋은 일이 있다고 잘 맞는 인연을 찾았을 때는 내가 베프인 듯 덩달아 기뻤다.
오십대지만 이십 대, 삼십 대처럼 공감했고 가끔은 그와 그녀의 부모 된 심정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당사자 관점에서 보아도 괜찮고, 부모의 시선에도 보아도 좋은 영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감하며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웰메이드 작품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김고은 #나상현의 연기도 빨려 들어갈 듯 실감 났다.
오직 오늘만 사는듯한 재희가 좋았다. 오늘만 살아도 괜찮았다. 그렇게 살지 못한 오십 대 여성은 한 번쯤 오늘만 살고 싶어서 오히려 동경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나이트죽순이에 미친년은 우정이 무엇인지 아는 의리 있는 여성이고,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결핍으로 인한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스마트한 여성이다. 진짜 베프가 되어줄 줄 아는 따듯한 사람이기도 하다.
영화의 잔상이 남아서, 밥을 먹으며 이십 대 아들과 요즘 연애 풍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를 보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이십 대 남성에게는 '노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어 보였다. '대가리만 꽃밭'이라는 속어를 들으니 다른 설명은 안 들어도 될 듯했다. 본인도 학내 게시판에서 읽거나 들어서 알게 된 간접경험이라 정확하지는 않다고 하면서도 논리는 명확했다. '대가리만 꽃밭'인 여성들의 결혼은 퐁퐁남으로 이어졌다. 아들 이야기를 들으니 그럴 만도 해서 설득되기도 했다.
영화에 긍정성과 아름다움을 부여했던 순수한? 내 영혼이 퐁퐁남 이야기로 오염되기는 했지만, 영화는 인간적인 따듯함을 많이 품고 있어서 더없이 좋다. 기억할만한 예쁜 장면과 대사도 많아서 강추하고 싶은 영화다.
기억하고 싶은 대사와 장면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다.
사랑에는 약간의 집착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 사랑이 가벼운 요즘 청춘들에게 무게감을 주는 표현이라 여긴다. 이것이 꼰대에게 적용되면 데이트폭력이 되는 것 또한 영화는 담아 주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추상적이라 와닿지 않지만 보고 싶다.라고 표현하는 행복한 표정의 김고은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보고 싶은 거구나. 내가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기거나 좋아하게 된다면 보고 싶은 감정인지 꼭 되물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성소수자가 성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흥수는 아빠를 잃은 엄마가 자신 때문에 어떻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다. 진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보지 못했던 착한 흥수에게 같은 부모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부모님께 알리면 돌아가실 것 같지만, 자식이 성소수자라도 다 사신다. 그 일로 돌아가시지 않는다. 그러니 부모님 걱정부터 하지 말고 본인 걱정 하며 살길.
사랑은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일. 재희는 아아를 좋아하는데 매번 자기가 좋아하는 뜨아만 두 잔 시키는 남자 친구를 참아준 일, 하이힐을 포기하고 낮은 구두를 신어준 일.
맞춰주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매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은 나타난다. 남들은 불편해하는 솔직함과 반항심을 멋지다고 표현해 주는 사람이 내 짝이다. 미친년의 광기에 숨은 진실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인연이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면 된다. 그렇게 사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