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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서 Oct 22. 2024

장례식의 진실

방황하는 갱년기




#장례식 #부고 #슈퍼문 #통증증후군 #누군가돌아가시는일 #엄마 #배우자 


루서야, 엄마 소천하셨어. 



중학교 때부터 친구여서, 친구의 어머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대강은 알고 있다. 씩씩하신 분이셨다. 여장부답게 가게 운영도 잘하셨다. 동네에서 꽤나 유명한 가게를 알차게 꾸리시기도 했다. 활동적이셨고 특히 운동을 좋아하셨다. 섭렵하지 않은 운동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신 분이었다. 언젠가부터 건강이 안 좋아지며 이유 없이 통증에 시달리셨는데 '통증증후군'이라는 병이란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어, 진통제에 의존하셔야 했다. 대한민국 병원이란 병원은  모두 다니며 구석구석 검사해 온 긴 세월을 들어온 지 오래다. 시간이 흐르며 아버님도 많이 힘드시고, 장녀인 친구도 지친 듯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길 한복판에서 울음이 터졌다. 갑자기 몰려든 슬픔이 감당되지 않아, 입을 막고 진정해야 했다.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에, 전혀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이 일어나자 예상하지 못한 마음은 강한 슬픔을 뿜어냈다. 



이유 없는 통증을 알 수 없어서 막연하게 고통스러울 거라는 생각만 했다. 통증은 누구와도 공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이해받기가 힘든데,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도 힘들다. 아픈 사람은 고통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가족의 어려움까지 헤아리지 못하니, 갑자기 이기적인 아이처럼 보이는 변덕스러운 환자를 감내하는 일은 배우자도 자녀도 어려워 보였다. 



얼른 회복하시길 바랐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어쩌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기대도 품었다. "우리 엄마 언제 괜찮아지실까?" 친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사주를 볼 줄 아는 내게 묻곤 했다. 답답한 아버지가 무당이라도 찾아가서 물어보라고 하셨고, 그래서 다녀오기도 했던 친구였다. 곰곰이 생각하다 "10월만 지나면"이라고 대답했다. 친구에게 엄마인 인성이 입묘 되는 달이면서 어머님한테 좋지 않은 달이라 10월을 잘 넘기길 바랐다. 친구는 엄마한테 "10월만 잘 넘기면 괜찮아진대"라며 위로했다고 했다. 10월의 바람은 흩어졌다. 



어머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얼굴은 학창 시절의 얼굴이다. 최근 모습을 뵙지 못했다. 친구로부터 전해 듣기만 했지, 어머님의 뵈러 가지는 않았기에 기억 속 어머님은 고등학생 시절 '친구 엄마'여서 병환의 상태가 더 와닿지 않았다. 얕지만 편찮으신 어머님을 뵙지 못한 죄책감으로  오랜 과거의 얼굴을 어렴풋하게 떠올리며 슬픔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는 마음의 이야기에 동의했다.  마음의 이야기대로 하고 싶었다. 온전하게 슬퍼해야 할 시간이 맞았으므로.



다른 마음이 설치기 시작했다. 나에겐 갑작스러운 설렘이 준비되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내린 시간은 30분 남짓. 30분이 흘렀을 뿐인데 마음의 온도가 달랐다. 슬픔은 이미 고요하게 깔렸고,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기쁨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다. 피어오르는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설렘에 접선했다. 아무 일도 없는, 아니 오히려 유쾌한 일이 많은 기분 좋은 하루의 끝을 보내는 사람처럼 발랄하게 웃으며 통화하는 내가 묘하게 느껴졌다. 30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길거리에서 슬픔에 북받쳐 입을 막고 울던 나는 30분이 지나자마자 콩닥 거리는 설렘을 봄꽃처럼 피워내고 있었다. 



가증스러웠다. 내가 싫었다. 짧은 시간에 전혀 다른 감정을 꺼낼 준비를 하는 내가 환자 같았다. 미룰 수도 있는 기쁨의 감정을 슬픔의 바로 뒤에 꺼내는  행동을 깨닫고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하고 있는 내 태도가 낯설었다. 성급하지 않아도 되는데, 서둘러 조바심 내는 모습에 조현병일까 봐 겁이 났다. 울다가 바로 웃고, 다시 슬픔에 빠지는 감정 변화가 순식간에 가능한 내가 정상인지 의심스러웠다.



늦은 밤 시간에라도 조문을 갈까 하다가 다음 날 여유 있게 친구를 만나러 갔다. 장녀인 친구는 손님을 맞으면서 떨어진 음식과 음료수를 챙겨 주문하고 있었고, 그 사이 밥도 먹어야 했다. 20년 전에 아빠 돌아가셨을 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잠깐 사이사이 슬퍼하고 대체로는 '장례의 일'을 치렀다. 정신이 없어서 입관할 때 비로소 울음이 터진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도 그래 보였다. 친구가 바빠서 오히려 친구 동생과 더 많이 이야기를 해야 했다.



"너 혼자 살지 말아라. 엄마 돌아가실 때 보니 자식하고 남편은 다르더라. 무정하다고 타박 많이 받은 아빠였는데 전혀 아니야. 가시는 길에 대한 마음 자세가 배우자하고 자식 하고 근본적으로 달라.  늙어서 짝꿍은 있어야겠더라. 너 썸남하고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썸남이 아니면 유턴이라도 해. 애들 아빠 착하잖아." 



슬픈 장례식장에서 친구는 나의 연애사를 재촉한다. " 이 와중에 너는 내 연애사가 궁금하니." 친구의 말에 웃음이 터진다.  연애사는 소중하다는 친구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풀었다. 듣다가 바빠서 자리를 비우면 그 사이 친구 동생과 어머님 이야기를 나누며 울었다. 일본에 살아서 엄마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듣지 못했던 터라 마음이 더 아파 보였다. 그럼에도 엄마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서로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어머님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오면 다시 썸남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었다. 어젯밤 순식간에 달라졌던 내 감정과 비슷한 속도였다.



친구의 친척분과 자리를 같이하며 친구가 환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모님과 농담을 하느라 웃다가, 조카들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웃다가 울고 그러다가 다시 웃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다. 장례식장의 식당은 고요하지도 차분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는 식당과도 비슷했다.



사는 게 그런 거였나. 


슬퍼서 울다가 금방 웃다가. 


농담으로 넘기다가도 


문득  아련한 추억에 눈물 글썽이게 되는 그런 거.



어머님의 소식을 듣고 길을 가다 멈추고 울어 버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설렘이 가득 담긴 발랄한 목소리로 통화하는 나를 장례식장에서 용서했다. 기쁨과 슬픔에 공존하고, 공존의 속도가 아주 빠른 순간도 존재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어머님의 부재가 슬퍼서 추억하다가 즐거운 순간이 떠오르면 슬며시 웃는 사람이고, 즉흥적인 태도 변화는 타인인 나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울기도 하다가 웃고, 웃다가도 눈물을 닦는 장례식의 모습이 삶의 진실인가 보다.



가버린 엄마가 원망스럽다가도 오히려 후련한 순간이 동시에 오기도 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해 주기 싫은 마음도 동시에 찾아든다. 존재의 상실이 슬퍼서 울다가도 즐거운 소식이 반가워서 웃는 모습이 장례식의 현실이다. 그 현실 안에 내가 있고, 사람들이 있다. 그 순간이 누구에게나 진짜 삶이 아닐까. 



슈퍼문 데이, 보름달이 활짝 올라왔던 날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어머님이 건강하시길 바라는 소원을 미처 빌지 못했더랬다. 다시 슈퍼문 사진을 보며 소원을 빌고 싶다. 어머님을 잘 보내드리고 싶다. 부디 그곳에서는 아프지 마시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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