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서 Oct 23. 2024

엄마가 미웠어

방황하는 갱년기

엄마가 미웠던 시간이 있다.     


" 알아서 잘하는 모범생을 왜 때려서 키운 거야?" " 잘하니까 더 욕심이 났지." 잘 키운 딸이 자랑이길 바랐던 엄마의 속마음이 어린 마음에도 읽혔다. 엄마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동네방네 전교 1등 했다고 소문내는 엄마 때문에 친구들이 고까운 눈으로 쳐다보는 게 싫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가 되면 자식 흉을 볼지언정, 자랑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마음만 굳게 먹었다.      


아빠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엄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것처럼 당황하셨다. 엄마의 자랑이었던 딸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서른 초반의 나이었지만, 혼자 남은 엄마를 위해 씩씩해야 했다. 장녀는 새로운 보호자가 되었고, 엄마는 온갖 집안 문제를 장녀와 의논하기 시작했다. 모든 건 사회생활을 좀 해본 딸이 해결해 드려야 했다. 


아빠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수술 부위가 천공되어 생긴 패혈증은 병원의 책임이 분명해 보였다. 의료 기록을 내어주지 않는 병원에 화가 났다. 아빠의 죽음을 의료사고라고 판단하고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의 심정으로 거대 병원과 신경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어린 두 아들 육아에 엄마까지 챙기다 보니 사랑하는 아빠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조차 없었다. 마음의 준비 없이 보내드린 것도 서글픈데, 슬퍼할 시간마저 가질 수 없어서 암담했다. 최선이 없어서 차선을 생각했다.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뻔했다. 아빠에게 해드리지 못했던 효도가 사무쳐서 빚 갚는 심정으로 엄마께 잘하자고 마음먹었다.     


꼭 아빠 때문은 아니었다. "너희 아빠처럼 잘하는 남편이 어디 있니." 아빠를 그리워하는 엄마도 애틋했다. 잘해드릴 이유는 충분했다. 정 많고 살뜰한 딸은 아니지만, 아들처럼 든든하게 굴었다. 태몽도 아들 태몽이었다니, 장남처럼 하는 게 맞아 보였다.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아서 문제였다. 언젠가부터 끝이 없을 것 같았다. 지나고 나면 빛이 보이는 터널이 아니라 동굴일지도 모르겠단 불안감이 올라왔다. 아니다. 우리 엄마는 딸이라고 해서 한없이 요구하는 뻔뻔한 사람은 아니다. 받은 만큼 주어야 속이 편하지, 덜 주면 불편한 분이 맞다. 비빌 언덕이 없는 인생이라 미래를 위해 아직 챙겨야 할 게 많은데, 그나마 가진 지분을 엄마에게 나눠드리는 것이 아까운 내가 문제였다.      


고3 때 부도 직전으로 몰렸던 아빠의 사업으로 꼬여버린 인생, 주저앉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사느라 내 몫 챙기는 것도 버거운데, 엄마까지 살피려니 부담스러웠다. 현실 중력에서 자유로운 남편은 '돈이란, 욕망덩어리'로 여기는 사람이라 혼자 바둥거려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양가의 도움 없이 ‘내돈내산’으로 출발한 결혼 생활. 내 집 마련하고 아들 둘 키우려면 졸라맬 허리도 없이 아껴야 하는데 엄마까지. 마이너스 통장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동생이 어린데, 넌 동생한테 엄마 생일 밥값을 나눠 받아야겠니!" 엄마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다가 나도 모르게 열이 올랐다. "걔가 왜 어려. 걔도 결혼해서 애가 둘인데, 엄마 생일 때마다 내가 혼자 가족들 밥값을 다 내야겠어! 동생네가 먹은 밥값은 동생이 내면 왜 안 되는데!" 톤이 높아진 목소리가 흔들리며 눈물이 터졌다. 해외로 떠나며 엄마 1년 치 생활비를 목돈으로 드리고 간 딸에게 엄마가 이러면 안 되지 않나, 엄마 어깨 수술비도 나 혼자 냈는데 너무 하잖아! 억울해서 울어 버렸다.      


엄마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선제공격이 효과적이었다. 엄마가 임플란트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면 "엄마, 애들 학비랑 학원비가 얼마인 줄 알아, 아들 둘 먹이고 공부시키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거짓은 아니었지만 징징거림은 분명했다. 엄마 얼굴만 보면 박봉으로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유행 가사처럼 읊조렸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딸에게 미주알고주알 말씀하시지 않았다. 엄마의 생활비를 용돈 수준으로 낮췄다. 다행히 국가 정책이 엄마를 도와드리고 있었다. 효도는 셀프라는데 우리 엄마의 효도는 세금이 해주고 있다.    

  

지속된 거리 두기의 효과는 선명하다. 딸이 밥을 사면 엄마는 커피를 사 주신다. 쿠키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커피 주문하시며 디저트도 하나씩 꼭 끼워 넣으신다. 영화를 보여드리면 음료수라도 사 주려고 하신다. 엄마의 노년 계획은 장녀가 아니라 이모와 의논하신다. 남편 없는 자매끼리 함께 살아 보겠다고 집을 마련하기도 하시더니, 저렴한 시골의 실버타운에 같이 들어가서 지내고 싶으시단다. "딸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 거야."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엄마는 통장 잔고 내에서 해결하는 방식을 익히셨고, 원래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 욕심이라고는 없는 사람'으로 당신을 규정하신다. 엄마의 요즘 입버릇은 이것이다. "돈이 그렇게 많아도 건강이 안 좋으니 행복하지가 않더라. 돈 많은 친구들이 다들 별로야. 내가 건강 하나는 타고났지 않니. 그래서 엄마 삶도 괜찮은 것 같아 만족스러워."      


먼저 전화하지 않는 엄마께 연락드린 지 오래되었던 날, 원심력을 잃어버리고 튕겨 나간 공처럼 엄마에게 돌아오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멀어진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새로운 거리 재기가 필요했다. 한참 멀어졌다면 조금은 돌아와야 했다. 어색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일을 떠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효도는  밥 한 끼를 엄마와 같이 먹는 것. 밥 먹자는 핑계로 엄마께 전화를 자주 드려 맛집에 들렀다 예쁜 카페에서 수다 떠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수저 드시는 엄마의 손에서 떨림을 느낀다. '우리 엄마도 나이 많이 드셨구나….' 골골하시던 아빠와 달리 건강 체질이라 걱정이 없던 엄마도 이제는 슬슬 힘들어하신다. 말라서 기운도 없으면서 뭘 하냐며, 명절 음식 중에서 제일 쉬운 건 딸 시키고 어려운 일은 혼자 다 하셨던 엄마의 손이 젓가락 들 때마저 진동이 있다. 나보다 엄마가 더 오래 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시간도 있었는데, 이제는 얼마나 남은 걸까.     

엄마에게조차 계산하며 살았던 시간이 미안해진다. 끝이 없을지도 몰라서 불안하다면서도 나를 위한 취미생활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던 스스로가 밉다. 미안함과 미움이 등식으로 묶였다. 돈 많은 부자 친구와 밥을 먹을 때, 똑같이 나누어 비용을 부담할 줄 아는 엄마다. 갑자기 재산이 많아진 부러운 친구에게 다른 친구들과 달리 "넌 재산 많아 좋겠다." 한마디 없이 예전처럼 대할 줄 아는 엄마다. 스스로에게 만족할 줄 아는 자존감 높은 엄마에게 왜 그랬을까.      


아빠에게 남은 부채도 다 갚지 못했는데 엄마에 대한 죗값까지 치러야 한다. 인생의 숙제는 끝이 없다. 숙제는 아무리 쉬워도 편한 적이 없는데, 이번 숙제는 심지어 어렵다. 어려운 숙제라서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보지만, 겁이 먼저 난다. 두 아들로부터 온전하게 해방되는 날, 엄마라는 족쇄에 묶일까 봐 두렵다. 죄가 크다고 해서 죗값마저 크게 치를 자신이 없다. 그래도 조금씩은 갚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엄마와 밥 한 끼 먹고 영양제 챙겨드리면서,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다녀오면서.   

  

"넌 어릴 때부터 야무져서 걱정이 없었어. 너만치만 살면 무슨 걱정이니."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야무진 딸, 엄마가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까지 걱정하실 일 없도록 잘 사는 것도 좋겠다. 아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는 게 나에게 최고의 행복이듯이 딸이 행복하면, 엄마도 사는 맛이 나실 테니까. 거리 두기를 해제하고 엄마에게 밀린 빚을 갚기로 한 지금이 늦은 때가 아니길 바란다. 후회가 아니라 행복을 떠올릴 수 있는 과거로 남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엄마가 미웠던 시간 뒤에 미안함이 따라붙지 않기를.
이전 04화 장례식의 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