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에 순수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쉬울까. 아이처럼 순수한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는 일은 가능할까. 기쁨을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라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오히려 이율배반의 진실을 내 속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이 사람 사이에 일이다. 슬픔은 기꺼이 나눠줄 수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긴 타인에게 애처로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어려운 것은 기쁨이다. 기쁨이 진심으로 두 배가 되려면, 누군가의 삶에 깊이 들어가야 하고 깊이만큼의 애정이 있어야 하거나, 감정을 잘 조절해야만 가능하다.
타인의 기쁜 일에 순수하게 기뻐하고 아픈 일에 공감하려면 나를 갉아먹지 않아야 한다. 기쁨에 이중적인 감정이 생기면 마음에 앙금이 남는다. 부러운 마음이야 막을 수 없지만 질투나 시샘이 끼어들면 공감은 물 건너간다. '축하해', '잘됐다' 라며 겉으로만 건네는 덕담엔 긍정보다 큰 부정의 감정이 담겨 있다. 모순된 감정은 부작용을 불러오고, 내가 불러온 역풍은 본인이 고스란히 맞는다. 맞지 않는 약을 오래 복용하면 부작용도 커지듯이 겉과 속이 다른 감정은 타인이 아닌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
기쁨의 영역은 다를 때가 제일 좋다. 나에게 일어나길 바랐던 일의 주인공이 내가 아닐 때, 타인을 깔끔하게 축하하는 일은 어렵다. 누가 봐도 인정할 만큼 출중하거나, 뼈를 갈아 넣어 노력한 과정을 알기에 축하해 줄 만하더라도 내가 작아진 기분이 들면 기쁨의 순도는 떨어진다. 축하하는 영역이 나에게 불가능할 때, 타인의 기쁨이 더블이 되는 일은 가능하다. 나와 상관이 없어서 가능성이 현실 제로일 때 진심으로 기뻐하며 축하해 주게 된다.
돌싱의 연애는 유부녀에게 불가능하기에 기쁨을 나누기에 좋은 덕목 중 하나다. 잊었던 스무 살의 기억을 추억하며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도 괜찮다. 경험 불가한 현재 상황에서 다른 인생을 사는 타인의 기쁨과 아픔은 드라마 같아서 공감하기에도 좋다. 네이트판이나 연애 플랫폼에 올라오는 사연이나 고민상담을 읽는 것처럼 흥미 자극에도 잘 맞는다.
같은 돌싱끼리라면 불편할 수도 있다. 나에게는 거의 일어나지 않은 썸과 연애가 누군가에게만 자주 반복되면 '왜 저 사람에게만? 나보다 이쁘지도 낫지도 않은 것 같은데 왜?' 라며 속으로 투덜대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평소 사람됨이 안 좋아 보여 고깝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부정 감정은 더 강해진다. 여우 같은 그녀에게서 뜻하지 않은 질투가 샘솟는 걸 느끼며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고까운 사람이 연애 하나는 잘해서 보기 드문 괜찮은 상대를 만나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면, 재미있는 가십마저 차단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올해 유난히 사람과의 일이 많다. 운 때문인가 생각을 했다. 갑자기 그러한 운이 온 걸까? 그보다는 태도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혼 이후 싱글의 세계가 낯설어서 경계하고 까칠했던 순간이 많았는데,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사교적이었던 과거의 성격으로 돌아가며 친절해졌다. 아이들에게 쏟던 에너지도 마무리가 되어서 온전히 내 시간에 집중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날을 세운 것처럼 차갑게 굴던 시간이 언제인지 생각도 안 나도록 유쾌하고 싹싹한 사람으로 변했다. 글은 어려운데 직접 만나면 편안하다는 평가를 자주 듣고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예전보다 넓어졌다.
인연인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새로운 경험이 찾아든 가을.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사람대하는 일은 여유가 생겼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 이 세계의 매뉴얼을 전혀 알지 못해서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내 스타일대로 하는 게 최선이라며 나에게 물어본다. 해보지 못하는 경험에 놓일 때, 적지 않은 나이도 있으니 나다운 판단을 하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가끔은 들어주고 정리해 줄 사람이 필요함을 느낀다.
쓸데없이 솔직해서 속을 다 끄집어내는 타입이라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어서 듣는 사람의 분위기 파악하며 말을 꺼내는 편이다. 타인의 인연에 관심을 가지고 잘 들어주는 언니가 있다. 그 언니들에게는 미주알고주알 이야기가 쉽다. 타인의 문제는 금방 눈치를 채지만, 자신의 문제에는 둔감한 ESFJ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나의 인연사를 지켜봐 온 언니의 이야기는 도움이 된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알려주기도 한다. 파악하지 못했던 틀이 보이는 순간도 있다. 해결은 아니더라도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가끔은 생각하지 못한 선수가 등장해서 초짜의 서투름을 보완해주기도 한다. 구원은 신기할 정도로 전혀 다른 곳에서 오기도 한다. 그렇게 사람의 일을 사람으로 엮어 간다.
가까이 사는 언니와 꽤 자주 만나 이야기를 하는 요즘. 동네 위스키바에서 와인 한 잔 시켜두고 저녁을 먹었다. 변화가 많은 요즘의 나를 가장 적나라하게 파악 중인 사람이다. 남의 이야기는 궁금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을 것 같은데 잘도 들어준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본다. 내가 유부녀라면, 돌싱 친구의 인연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들어줄까? 정말 재미가 있을까? 나라면 재미가 없을 것도 같다. 뻔하잖아? 흐지부지 되거나, 이어지거나. 특별한 변수란게 없는 세상이 뭐가 그리 궁금할까? 친한 친구에게 들뜬 일이 있거나 아픈 일이 있을 때 들어줄 수 있는 애정의 발현 정도? 어쩌면 언니들의 인내심이 좋은 게 아닐는지.
새로 업그레이드된 이야기가 있냐며 물어주고 일부러 만나자고 해서 들어주는 일은 쉽지 않은 것도 같다. 남의 사건에 내 시간을 들이는 일이니 기본적으로 품이 든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서 사람을 만나서 삶을 교환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요즘처럼 혼자가 편한 세상에서 타인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유지하는 것은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동하는 평안한 교류를 하며 조언이나 충고 없이 공감해 주는 일은 기쁨을 공유하는 것과 비슷하다. 속이 뻔히 보이도록 유치한 내가 들켜도 안심이 되는 관계에는 만족이 있다. 와인 한 잔에 마음이 더 풀려서 쏟아내게 되는 수다는 가을의 인연만큼이나 즐겁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굳이 알릴 필요 없는 인생의 가십을 공유하는 시간이 괜찮은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