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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서 Oct 31. 2024

인연의 일 : 김동률의 산책을 들으며

추억 속으로


사람 사이의 일은 알 수가 없다. 감정의 온도와는 상관없이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특별히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약속이 느슨해지며 멀어지는 사람이 있고,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가까워지기도 한다. 삶의 사이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인연이 닿는 우연도 있고,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라 믿었는데 시간 리듬이 느려지며 안부 인사도 잘 묻지 않게 되는 지인도 있다. 생각지도 않은 사람과 친해지며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는 사이, 늘 내편이라 여겼던 절친과 뜸해지기도 한다.



멀어짐의 이유를 짐작할 수 없다. 마음이 식으니 물리적 관계도 멀어지는 것이겠지만, 마음의 방향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의지로 만들어 가는 것이 사람 사이의 일이라 여겼는데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란 걸 알 뿐이다. 말 그대로  사이가 존재하는 '사이'의 일이라 나의  의지로만 이어나갈 수는 없다. 



멀어지는 인연이 아쉬워서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관계의 소홀이 내 탓만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되어 가는 것뿐이다.  상대방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연락이 뜸해지면  마음의 거리가 생기며 예전만큼 편하지 않다. 오랜만에 만나면 마음은 반가운데, 못 본 사이 서먹해진 건지 대화에서 거리감을 느껴진다. 아무 말이 기분 상활 까봐 조심스럽다. '멀어지고 있구나'를  실감하면서도 인정하기엔 아쉬워서 쉬어가는 중이라고 여긴다. 멀어지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가까워지는 시간도 올 것이라 믿는다. 



한참 붙어 다니며 지금도 여행저축을 함께 붓고 있는 언니와 친구는 어쩌다 보니 연락이 뜸해졌고,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으며 지낸 동기들은 다시 뭉쳐서 주기적으로 만난다. 한창 아이를 키우느라 바빠서 서로를 챙기지 못한 친구들은 아이의 성장이 마무리된 후 다시 이어지고, 홀가분했던 싱글들은 부모님이 편찮으실 나이가 되자 꼼짝을 못 하면서 멀어지는 중이다. 다양한 변수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가까이 한결같은 인연은 귀하디 귀하다.



오랜 시간 인생을 공유한 사람들과의 교류는 멈추다가 다시 흐르기도 하고, 흐르다가 멈추는 과정을 반복한다. 새로운 인연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왔다가 사라지면 그 공간을 채우는 것처럼 다른 인연이 찾아든다. 지나고 나면 그랬다.  누군가 떠나면 누군가는 찾아왔다. 그때는 몰라서 부여잡으려고 애썼다. 떠난 뒤의 빈자리가 두려워서 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사람은 떠나도 마음은 보내지 못해서 기억으로 부여잡았다. 한참 흐른 후에야 알았다. 떠나야 찾아들 수 있었고 비워져야 채워질 수 있다는 걸. 이별이 선행되어야 만남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인연의 이치였다.  흔하디 흔한 노래 가사는 대중 지성의 빛나는 통찰이었다.  



돌아올 자리를 충분히 믿어서 그리워할 이유가 없는 사람과의 인연은 멀어져도 괜찮다. 멀어짐에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으니 각자 잘 살면 된다. 다시 가까워졌을 때,  멀어졌던 사이를 돈독하게 채우면 된다. 살다 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되는 것을 모르지 않기에 언젠가는 서로를 보듬고 챙기는 시간을 기다리면 되고, 아니라면 고운 마무리 삼아 행복을 빌어주면 된다. 



그리워하는 일이 전부인 인연도 있다. 이미 끝을 알면서도 마음에 여운이 남아 쉽게 보내지 못하는 인연은 그리워할 만큼 그리워한 후 천천히 떠나보내는 것도 괜찮다. 빈자리가 서러워서 쉽사리 놓지 못하겠다면, 마음이 하고 싶은 만큼 붙들고 있어도 된다. 미련도 그 인연과의 몫이다. 그리워하는 일이 지겹다면 훌쩍 떠나보는 것도 좋다. 빈자리가 채워질 날이 오는 것도 사람의 일이다.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면 진이 빠져서 새로운 인연을 잡을 힘이 없다. 놓아줄 것은 놓아주어야 빈자리를 찾아온 새로운 손님을 맞이할 수 있다. 



인연도 숨과 같다. 내뱉어야  들어마실 수 있다. 힘을 꼭 주고 멈추고 있으면 흘러야 할 사람 사이가 통하지 않는다. 뱉어낸 만큼 차오르는 숨의 때가 있고, 차오르면 뱉어야 하는 시간도 있다. 흩어 보낼 인연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이치에 맞고 내 안으로 들어오는 인연은 또 그렇게 하는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숨 쉬는 것처럼.  



인연의 순간은 알 수 없다.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만큼 억지로 되지도 않는다. 마음이 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라서 섣불리 기대할 수도 없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다만 비워야 채워지는 것은 안다. 청소를 하고 정돈을 해야 물건을 새로 들여올 생각이 난다. 새 제품이 빛이 난다. 쓸모없이 정만 든 낡음은 힘들어도 이별이 필요하다. 이별 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한 마음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지만, 반짝. 빛나는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때가 아닐까. 



김동률의 신곡 산책을 들었다. 잔향이 오래가는 방향제처럼 여운이 남는 노래다. 이것이 전부인 듯, 끝이어도 좋을 만큼 아름다웠던 두 사람도 인연을 따라 멀어졌나 보다. 계절은 흐르는데 마음은 아직 보내지 못해서 머물러 있다. 아름다움의 끝까지 닿았다면, 끝에서 다시 돌아오기까지 한참을 기억과 함께 혼자 걸어야 하나 보다. 돌아오는 길이 멀어서 혼자서 진행 중인 인연은 끝까지 닿았기에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미련이라는 미련한 단어로 남겨도 될 마음을 가볍게 산책이라고 했다. 산책을 하며 인연을 거슬러 가다 보면 이별이 덤덤한 순간이 올 것 같다. 가벼운 발걸음 따라 어쩌면 새로운 봄날이 스며들 것도 같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싱그러운 향이 가득한

어느 봄날 강가를 걷고 있을 때

그날따라 듣는 음악도

내 맘처럼 흘러나오고

따듯한 바람에 둥실 맘이 떠갈 때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조금씩 젖어 갔네

누군가 볼까 잠시 멈춰 섰네

아름다운 것일수록

그만큼 슬픈 거라고

어쩌면 그때 우리는

아름다움의 끝을 피운 걸까

울어도 되는 걸까

이렇게 눈부신 날에

불러도 되는 것일까

고이 간직했던 그 이름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노란 빛깔 낙엽 가득한

어느 가을 공원을 걷고 있을 때

그날따라 듣는 음악도

내 맘처럼 흘러나오고

서늘한 바람이 머리를 간질일 때

나도 모르게 두 눈이 조금씩 젖어 갔네

누군가 볼까 잠시 멈춰 섰네

울어도 되는 걸까

이렇게 볕 좋은 날에

불러도 되는 것일까

애써 잊고 있던 그 이름

난 얼마나 걸었을까

어딜 향해 걷는 걸까

날 기다리고 있을까

마냥 빙빙 돌고 있을까

함께 걷자고 했잖아

나란히 걷자 했잖아

이토록 날이 좋은데

여전히 난 홀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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