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반성문

아이가 대학을 졸업했다

by 루서


"넌 집에 들어오면서도 핸드폰을 보면서 들어오니. 그 정도면 핸드폰 중독 아닐까?"

"왜 집에 들어오자마자 또 이상한 소리를 해요."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만 들여다봐서, 오랜만에 봐도 인사 한 마디 알아듣지 못하는 큰 애에게 보자마자 저주의 말을 퍼붓기 시작한다.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강아지 밥을 주었느냐고 묻거나, 엄마가 밥을 줄 거라는 간단한 소통이 안 되는 아이에게 엄마는 성부터 난다.



"대학원 등록금 첫 학기만 엄마가 전액 내주는 거야. 다음 학기부터는 전액은 힘드니 장학금 알아보고, 용돈도 보탤 수 있도록 알바도 찾아봐."


"장학금 못 받으면 쉬어야지."


"공부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도피처라면 너도 독립할 준비를 새로 해야지. 휴학은 아니지 않니? 대학원에 가는 이유가 공부에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취업을 피한 거면 엄마는 학비를 대줄 뜻이 없어. 도와줄 수는 있어도 엄마에게 의존하지는 마. 그럴 나이는 지났잖아. 엄마도 가능성이 있어야 투자를 하고 싶거든."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이성적인 분위기에서 나누는 대화라고 해도, 감정이 섞인 내용이다. 리얼한 대화는 엄마 생각에는 현실감을 일깨우는 팩트지만, 아이에게는 막말이다. 막말을 거부하고 문을 닫을 것 같은 아이가 엄마와의 대화를 이어간다.



"군대 가기 전 3학기는 학점관리 안 해서 성적이 엉망이었지만, 졸업할 때 학점이 나쁘지 않았어요. 나머지 5학기는 B학점이 거의 없거든. 맘먹고 하면 잘해요. 대학원 가서 열심히 할 거고, 그 이후 과정도 계속하고 싶어요. 대학원 이후 과정은 펀딩으로 해볼 거예요. "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듣지 않는 아이가 오늘은 유난히 부드럽게 엄마를 설득하며 미래의 계획도 아이치고는 야무지게 밝힌다.


SE-d3dd1a8c-f3ce-11ef-af2b-c3c907365eef.jpg?type=w1



아이가 대학을 졸업했다. 요즘 졸업식은 졸업장만 받아오거나 가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는 갈 생각도 안 했다. 아이도 오기를 바라는 것 같지 않았다. 졸업식을 마치고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에 들러 바로 올 것 같다는 아이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재수, 삼수한 동기 형들과 놀다 왔다는 아이는 자기 또래 남자들은 이제 진짜 시작을 하는 중이라고 전한다.



재수한 형은 로스쿨에 입학했고, 삼수한 형은 회계사 준비, 친구는 행시에 도전하는 중이라며 삼성이나 한투에 취직한 동기도 있지만 많지는 않단다. 회사 생활이 맞지 않을 것 같고 회계사나 변호사란 직업도 끌리지 않는다며 연구직을 선택하겠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글쎄. 공부를 하겠다는 아이에게서 도무지 학문의 뜻을 발견할 수 없어서 늘 불안했다. 엄마보다 책도 안 읽고 서점도, 도서관도 안 가는 아이가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건지 의아하기만 했다. 미래의 계획이 불투명해서 지연시키는 거라고 믿는 쪽이 합당했다.



엄마가 봐도 한 가지에 몰두해서 파고드는 일은 괜찮아도 유연하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은 부족해 보이는 아들이라 취업을 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공부를 서포트해 줄 여력이 부족한 엄마에게 아들의 결정은 부담스러워서 늘 열린 결말을 유도했다. "공부하다 보면 너의 길이 보일 거야. 꼭 박사과정이나 유학까지 가지 않더라도 좋은 연구직이 있을 수도 있지. 하다가 힘들면, 공무원도 괜찮으니 할 수 있는 만큼 해."



아이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은 상태라 성공해서 윤택하게 살기를 바라는 욕망도 버렸다. 아이가 굴곡 없이 평안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나이 들고 보니 큰 차이가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생 길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 말로는 이렇게 뱉어내고 막상 아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느라 평생 돈 버는 엄마, 쉬지도 못할까 봐 겁이 나서 딱 2년만 서포트를 해주겠다며 일찌감치 선을 그어 두었다. 현실적인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 않다. 일하는 엄마는 이제 자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일하고 싶을 뿐이다. 냉정한 엄마라 해도 할 수 없다. 자녀의 인생이 곧 내 인생은 아니니까.



지난번 갑자기 아버지가 응급실에 가시게 되어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났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아버지는 내내 편찮으시다. 환자를 돌볼 때는 자신의 통증을 무심하게 여기다가, 혼자가 되면 참았던 병이 나기 시작하는가 보다. 청력 차이가 많이 나서 한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는 상태를 신경도 쓰지 못하신 채 지내오시다가 이번에 문제가 생겼는지 어지럼증으로 쓰러지시는 일이 잦아지셨다. 평생 술 담배를 거의 안 하시고 각종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해오셨는데도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건강인가 보다.



노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갓 우리나라 굴지의 건설 회사에 입사했다는 남의 집 딸 이야기를 들었다. 큰 딸은 전문직으로 승승장구를 하고 있고, 작은 딸도 건축학과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을 해서 남 부러울 것이 없는 엄마였는데 작은 딸이 이번에 갑상선 암 판정을 받았단다. 요즘 갑상선암은 암도 아니라지만, 암이 림프절을 타고 폐까지 전이되어 더 정밀한 검사를 해야 한다니 스물여섯 살의 꽃다운 청춘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다 가진 것 같고, 살면서 어려움 하나 없이 사는 것 같아도 살다 보면 생기는 난제들. 똑똑하고 착한 두 딸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엄마의 마음엔 누구도 헤아릴 수 없는 걱정만 가득할 것이다. 그 마음 다 알지는 못해도 짐작할 수 있다. 나도 엄마이므로.



문득 아이가 건강하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어 버렸다. 오래전, 세월호 사건이 생각났다. " 아이가 살아만 있다면, 어떤 욕심도 내지 않으며 키우리라." 그렇게 마음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면 안 되겠지만 가끔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게 해 준다.



"부모는 돈 없는데, 공부는 안 하면서 재수, 삼수한다고 학원비 몇 백씩 내게 만드는 애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줄 아니. 애들 등쌀에 뻔히 견적이 나오는데도 재수 학원비 내주는 부모도 많아. 공부는 하지도 않으면서 부모가 그 정도도 못해주냐는 애들도 있는데, 너희 애들은 어떡해서든 엄마한테 손 안 벌리려고 하잖아. 중 고등학생 시절 학원비를 많이 내준 것도 아니고 재수를 한 것도 아니니, 그 정도면 효자 아니냐."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공부 습관을 키워준다며 유난을 떤 엄마의 입김이 거세어서인지 중 고등학생 시절에 학원비를 많이 쓰지 않고 가성비 좋게 대학을 가긴 했다.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넉넉하지 않은 용돈에 대한 불만 없이 아르바이트해서 살아가는 쪽을 택했다. 엄마니까 해 달라는 요구보다, 엄마의 부담을 줄여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엄마는 착한 자식들 이야기를 풀며 비교한 적도 있는데, 다른 부모들은 이렇게 해준다며 불만을 이야기한 적도 없다. 수능 끝나자마자 떡볶이집 알바부터, 치킨집, 중국집, 인테리어 건설회사, 심지어 쿠팡 야간 근무까지 본인들이 알아서 생활고를 해결하는 중이다.



"공부 좀 하는 아이가 따지지 않고 건설 쪽 알바도 하고, 쿠팡 알바도 할 정도면 착한 거야."



엄마 노릇하느라 힘들었다며, 아이들 대학 간 이후로는 아이들 챙김에도 소홀했던 엄마인데 아이들은 그런 엄마에게 특별히 요구한 것도 없다. 엄마의 인생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었다. 큰 애 군대 가자마자, 작은 애 대학 가자마자 이혼을 했으니, 아무리 성인이라지만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을 텐데 감정의 티를 내지 않았다. 엄마의 인생을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었다. 엄마가 솔로가 되고서 미주알고주알 풀어내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들어주며 심지어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착한 아들들 맞는 것 같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기숙사에 들어가고, 코로나 시즌에 군대를 다녀오면서 엄마는 아이들 밥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둘 다 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단백질 섭취를 중요하게 여기길래 구워 먹을 수 있도록 고기만 주문해서 김치냉장고에 넣어두곤 했다. 엄마도 엄마 노릇 그만두고 본인 인생을 살고 싶어서 그렇게 지냈다.



며칠 전, 동네 언니네 놀러 갔다가 또래 아이들이 베이킹을 좋아해서 케이크도 직접 만들고 쿠키도 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원 다니는 딸이 만든 블루치즈 케이크도 먹어보았고, 대학생 아들이 만들었다는 초콜릿 쿠키도 먹어 보았다. 시중에 파는 디저트보다 맛있어서 많이 놀랐다. '엄마가 요리를 좋아하니, 아이들도 닮는가 보네.' 음식 하나를 담아도 예쁘게 담는 언니를 아이들은 많이 닮은 듯 보였다.



끼니를 때울 정도의 요리만 해주고 말았던 나를 닮아서 아이들은 무심하고 시크한 걸까. 살가움과 다정함이 부족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뒤집어 보니 내가 다정하고 살가운 엄마가 아니다. 아이들 밥도 숙제처럼 해야만 하는 일이었지, 즐거워서 한 기억이 없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며 생활리듬이 불규칙해지자, 함께 모여 밥을 먹을 시간이 사라지며 어쩌다 먹어야 하는 끼니는 최대한 간단하게 '처리'를 하곤 했다. 반찬가게와 쿠팡에서. 평생 돈 벌어 자녀 뒷바라지하는 엄마는 그래도 된다고 여겼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집에서 밥 먹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작은 아이는 독립을 했으니 더욱 집에서 밥 먹을 일이 없다. 큰 애도 3월이 되어 대학원에 다니면 많이 바빠질 거다. 모든 끼니를 밖에서 해결해야 할지도 모른다. 엄마가 밥이라고 챙겨줄 시간도 얼마 없는데, 소홀했다는 생각에 미안스러워진다. 집에 오면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는, 따스하고 정감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들어 주지 못한 건 아이들 탓이 아니라 엄마 탓이 맞다.


SE-d3e557ef-f3ce-11ef-af2b-5bdbe302ea68.jpg?type=w1 언니 딸과 아들이 만들었다는 맛있는 디저트


따스한 한 끼의 식사를 풍성하게 챙겨줄 능력이 없어서 단출하게 차려주는 냉랭한 엄마가 입에서 뱉어내는 말도 밉상이니, 아이들이 어느 구석에서 엄마의 정을 느낄 수 있을까. 이혼하고 그동안 쌓인 빚을 갚듯이 자기 인생 살겠다며 바쁘게 놀기만 한 엄마가 이제야 철이 드는가 보다. 엄마도 이제야 철이 드는데, 아이들더러 언제 철드냐고 물었으니, 듣는 아이들 입장에서 얼마나 어이없었을까.



아이들도 크다 보면, 자기 몫을 헤아릴 줄 안다. 어느 정도를 바라면 되는지 무엇을 요구하면 안 되는지 알면서 살아간다. 그런 아이들에게 현실 운운하며 그나마 가늘게 이어가는 엄마의 정을 끊어내면 안 되겠다. 앞으로 점점 멀어질 일만 남았으니 엄마 곁에 머문 순간만이라도 너그럽고 푸근해야겠다. 아이들이 떠나는 인생의 시간을 맞아 맛있는 요리를 자주 해줄 수 없더라도 말이라도 곱게 해야겠다.


아들, 내일 엄마랑 밥 먹는 거다~ 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 도시의 늦사랑 <6> 우리 서로 알아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