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전 : 르누아르와 세잔
세잔과 르누아르, 그리고 피카소로 이어지는 예술적 계보
세잔과 르누아르는 세계 미술사에서 특히 풍요로웠던 19세기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같은 인상주의에서 출발했지만 각기 다른 회화적 여정을 걸었다. 르누아르의 작품에서는 섬세하고도 조화로운 표현이, 세잔의 작품에서는 엄격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이처럼 상반된 두 거장의 회화적 양식은 풍경, 정물, 인물 등 표현하는 대상이나 주제를 불문하고 다양한 작품들 속에서 각기 뚜렷한 특징을 드러낸다.
이들이 남긴 예술적 유산은 피카소를 비롯한 20세기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피카소는 세잔과 르누아르의 작품을 직접 소장할 만큼 그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졌다. 세잔으로부터는 입체주의의 탄생에 영감을 얻었고, 독창적인 인물 표현에 있어서는 르누아르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피카소의 작품도 함께 소개되어, 두 거장이 후대 예술에 남긴 발자취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감상 중 : 르누아르와 세잔
두 화가를 연결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르누아르는 모네, 드가 라인에 가까웠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바지유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인상주의 화가들 그룹 중에 르느와르가 있었다. 르느와르는 풍경화와 인물화로 기억하고, 세잔은 정물화로 기억한다. 르느와르는 소녀, 세잔은 사과.
르누아르의 '보트 위의 점심식사'는 특별하다. 애정하는 그림 중 하나다. 그냥 볼 때는 몰랐는데, 도슨트의 자세한 설명을 직접 듣고 보니 르누아르는 드라마 작가만큼이나 그림에 이야기를 놓아두는 화가였다. 서로 엇갈린 호감이 웃음 나게 재미있었다. 그림에 보이는 모든 인물의 어긋난 러브 라인은 인생 드라마처럼 기억에 남았다.
세잔의 사과는 세상을 바꾼 3대 사과 중 하나라 했다. 뉴튼의 사과, 세잔의 사과, 스티브잡스의 사과(아담과 이브의 사과를 원조라고도 한다.)는 전과 후를 나눈 혁명적인 사과란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데, 그림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화가들만 아는 획기적인 통찰이겠지? 갈릴레이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처럼 예술사의 상식을 뒤바꾼 세잔의 사과는 감정이 아닌 이론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오랑주리 오르세 미술관 전시는 꼭 가보고 싶었다. 르누아르와 세잔의 그림도 기대되었지만, 오랑주리 미술관의 그림이 물 건너온다는 것이 좋았다. 모네의 작품이 전시되는 건 아니지만 #이건희미술전시에서 모네의 수련은 보았으니 르느와르와 세잔만으로도 충분히 좋을 것 같았다.
기대만큼 괜찮았다. 왜 르누아르와 세잔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교하기에 좋은 화가였다. 부드러운 터치감으로 섬세한 색채를 표현한 르누아르의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이불처럼 포근했다. 가까이 보면 겹쳐 덧칠한 표현이었는데 멀리서 보면 빛에 의해 실물 같았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그린 게 아닌데 멀리서 보면 한 올만큼의 가는 붓으로 다 그린 듯 보였다. 사람도 풍경도 밝고 아름다웠다. 관절염으로 손에 붓을 묶고 그린 화가의 치열함과는 다르게 모든 그림이 행복했다. 세상을 아름답게 포용하는 따듯함이 전해졌다.
반면 세잔은 투쟁적이었다. 투박했고 거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감이 돋보였다. 르느와르의 그림과 함께 여서 더 그랬을 것 같다. 블루톤의 어두운 색채가 많은 그림은 차가웠고 붓의 터치는 단순해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도 있었다. 화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진리를 찾고 싶어 하는 철학자 같달까.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에 대한 수용보다 화가만의 논리를 통해 주제를 부여한 듯 보였다. '원래 그런 것'이 아닌, 바꾸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가득 차 보였다. 그런 느낌은 고갱이나 마티스를 통해서도 느꼈는데, 빛이나 색을 통해서가 아니라 '질서'나 '구조'를 통한 배제된 열망이랄까. 다 드러내지는 않은 이성적인 열망이라고 할까. 여하튼 그랬다.
전시장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는데, 그래서 더 집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지 않고 #HPOINT로 들었다. 현장 오디오 가이드는 그림마다 설명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플 가이드는 14 작품만 설명을 해준다.
미술 전시가 많은 요즘이다. 미술에 관심 많은 시민들이 언젠가부터 많아졌는지 전시장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다. 전시를 꾸준히 다니다 보니, 같은 화가의 전시가 반복되곤 한다. 뮤지컬은 보고 또 봐도 괜찮은데 미술 전시는 본 전시를 또 보고 싶지는 않다. 낮은 수준의 감상자를 위해서인지 테마 전시도 많아지는 중이다. 특히 외국 미술관 작품을 들여와서 선보이는 미술관 전시가 늘었다.
좋은 아이템이다. 여행 가서 미술관에 들어가더라도 시간 제약 때문에 보고 싶었던 화가의 작품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비행기 탈 일 없이 편하게 한국에서 즐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다만, 유명한 대표작까지는 전시하 기는 어려운지 막상 가서 보면 알고 있는 작품보다 모르는 작품을 더 많이 보고 오곤 한다. 그래도 좋긴 하지만.
이번 전시도 르누아르와 세잔의 대표 작품을 본 건 아니었으나, 유명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서운하거나 아쉽지는 않았다. 특히 두 화가의 작품을 비교하며 감상하기에 좋았고, 세잔이 피카소에게 준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어서 더 기억에 남았다. 세잔의 화풍이 피카소의 큐비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직접 느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국립 박물관 말고는 미술관이 강남이나 성수에 있어서 티켓을 구매해 놓고도 가기 싫어 취소할 때도 있다. 다녀오면 뿌듯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 앞으로는 좀 더 부지런을 떨어봐야겠다. 오랑주리 오르세 미술관 티켓을 찾다가 오래전에 구매해 놓은 다른 전시 티켓을 발견했다 11월 말까지인데 안 가고 있었다. 돈 버릴 뻔했다. 잠자고 있는 티켓을 취소할까 하다가 기운을 내어 보기로 했다.
화가를 만나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감상 후 : 그날,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