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by 루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이불을 턴다. 책상은 말끔히 치워져 있다. 얼룩까지 걸레로 닦는 건 아니지만, 정돈된 책상이 말끔하다. 입었던 잠옷 겸 운동복은 잘 개어 침대 한편에 둔다. 옷장이 작아 온전한 수납이 어렵다 보니 빨래 정리까지는 완벽하지 않지만, 아무 데나 놓아두진 않는다. 입은 외투는 옷걸이에 걸어 가지런히 놓아둔다. 냄새나는 방이 싫어 다이소에서 저렴한 디퓨저를 샀다가 가격 대비 괜찮은 디퓨저로 바꾸었다. 깔끔까지는 아니지만 정돈된 방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솔솔 풍긴다.




얼마 전까지만 렌즈를 끼고 뚜껑을 닫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면 피아노 뚜껑도 닫지 않았다. 자고 나면 몸만 쏙 빠져나왔고 침대 커버에는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아무리 빨아도 베개 커버에선 냄새가 났다. 참 모를 일이었다. 빨고 또 빨아도 왜 특유의 머리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지. 책상은 정신이 없었다. 필요한 물건, 꼭 보관해야 할 서류, 쓰레기가 엉켜서 구분이 어려웠다. 그래서 가끔 실수를 했다. 중요한 물건들이 쓰레기로 들어갔다. 돈 관리도 안되어서 종이 들 사이에 지폐가 뒹굴었다. 쓰지 않은 화장품과 필기류, 라이터가 함께 널브러진 책상은 통째로 폐기처분을 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아들 방이 바뀌었다. 냄새가 나서, 헝클어진 방을 보기 싫어서 문을 꼭 닫아두었던 방이 쾌적해졌다. 잠깐 소독이나 정수기 점검을 와도 부끄러웠던 상태가 손님 와서 갑자기 보더라도 괜찮아졌다. 디퓨저 향이 마음에 들어 오히려 열어두고 싶다. 센스 있는 언니가 골라준 디퓨저는 아들 방에 두고, 아들이 사 온 저렴한 다이소 디퓨저는 화장실에 두었다. 아들 방을 기분 좋게 드나드는 건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인 기억이다.






바쁘다며 방에서 밥을 먹거나 시켜 먹고는 그릇을 내놓지 않아서 찌꺼기나 밥풀이 그릇 꼭대기에 말라 붙기 일쑤였다. 책상 서랍에는 치킨 집에서 서비스로 준 하얀 무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가끔은 침대 아래에서 피자 상자가 나올 때도 있었다. 자기 빨래는 스스로 하겠다고 해서 모르는 척했더니, 썩는 냄새가 나도록 돌리지 않았다. 본인 옷만 급해서 세탁기를 돌려도 건조대에 널은 적이 거의 없었다.




빨래에서 라이터가 나오면 경계 없이 화가 올라왔다. 용돈이 부족하다면서 왜 새 라이터는 바지 주머니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 걸까? 빨래 통에서 버린 라이터만 300개는 될 거라는 게 엄마의 레퍼토리였다. 재미도 없는 '라이터 300개'를 농담 삼아 말하며 명확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포기한 마음을 다독였다.




아들이 바뀌었다. 밥을 먹자마자 설거지를 한다. 데워 먹기 편하라고 해주는 요리는 대부분 볶음밥인데, 다양한 볶음밥이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빨래도 알아서 돌리는 날이 있고, 세탁기가 멈추면 자진해서 건조대에 빨래를 넌다.




부탁하지 않았는데 강아지 산책도 다녀온다. 초코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기 어렵다며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퇴근하는 엄마와 마주치면 싱긋 웃는다. 재활용 쓰레기를 부탁한다는 이야기는 기약이 없는, 대답 없는 허공의 메아리였는데, '설거지를 못해서 죄송하다며 대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나가겠다'라는 톡을 보낸다. 지나가는 말로 '이것 좀 버려줄래' 하고 뒤돌아 서면 바로 사라져서 신기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ADHD 판별법' 유튜브를 공유하며 보았다. 방 정리, 시간 관리가 안된다며 스스로를 ADHD로 인정했다. '약을 먹어 볼까?'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정말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을까?' 고민도 했다. 그랬던 대화가 아주 오래전 일 같다.




아이가 바뀐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라식 수술 시점이었다.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개안하면 사람도 달라지나?"라는 농담에 진심으로 동조할 뻔했다. 친구 딸도 대학 가며 라식을 해주었는데, 대학 가서 철든 게 아니라, 라식해서 달라진 게 아니었을까. 합리적 의심도 해 보았다. '눈이 잘 보이면 생활도 달라지는?' 논문이 있다면 찾아보고 싶을 지경이다.




아직 불안하기는 하다. 잠깐 반짝 변화를 보여주다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까 봐. 책상이 엉망이 되고 냄새나는 방으로 회귀할까 걱정된다. 늘 그래와서 포기가 익숙한 게 낫다. 잠시 광명을 맛보고 기대를 품어 버렸는데, 물거품이 되어 버린 마음이 더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꿈처럼 지나간 한 때는 잊기 어렵다.




아이의 변화가 '라식 수술'이 아니라면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짚어 보았다.


분명한 건 '자기 삶에 대한 만족'이다. 아이는 학부 때보다 대학원 생활을 좋아한다. 술을 잘 못 마셔서 겉돌았던 대학 1학년 시절부터, 힙합을 좋아하지만 밤새 술 마시거나 클럽에서 노는 걸 싫어해서 어울리지 못한 시간이 힘들었던 것도 같다.




결이 다른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어야 했던 사회생활 보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은가 보다. 게임에 빠져들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생활할 때도 있지만 한 번 관심사에 꽂히면 무섭게 집중력을 발휘하는 성향이 공부하는 생활과 잘 맞는가 보다. 권위적이지 않은 교수님과 박사과정에 있는 형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행복해한다. 벌려 놓은 일은 많아 힘들다는데 바쁨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인정 욕구가 강한 아이인데 이제야 원하는 인정을 받는가 보다며 짐작해 보기도 한다.




문과생의 대학원 생활은 불투명하다. 이과처럼 학비가 지원되지 않는다. 한 번 시작한 공부는 결국 박사과정까지 가야 끝이 날 텐데 현실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들은 가끔 꿈을 내보인다. 해외에 나가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 교수가 되는 것. 그러나 고집하지는 않는다. 꿈은 꾸지만 현실과 타협할 생각도 충분하다. 기회가 되면 공부를 계속하고 안되면 최선을 다해 공부하다가 연구원으로 들어가는 차선도 생각해 두고 있다. 대기업 취직이나 로스쿨보다는 가치 있다고 여기는 연구에 스스로를 갈아 넣는 일이 즐거운 아이다. (엄마는 아이가 취직을 했더라면 멀티가 안 되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이 강해져서 불행했을 것도 같단 예감이 들기도 한다.)




아이는 부모에게 기대거나 의지할 생각도 없다. 선을 명확히 그어서 미안하지만 지원할 수 있는 한계를 충분히 설명했다. 더 필요하다면 스스로 개척하는 것에 동의했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알아서 해결하는데, 그럼에도 용돈 받는 상황을 미안해한다. 얼마 안 되지만 부담은 되는가 보다.




아이가 대학에 간 이후, 생활 잔소리는 하더라도 진로에 개입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오래 살 인생,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게 최선이란 생각에서였다. 아이가 알아서 길을 찾을 거란 믿음은 있었다. 공부라곤 하지 않은 둘째도 그런 마음은 마찬가지다. 자기 인생을 함부로 여기는 존재는 없으니까. 다들 자기 스스로가 소중하니까. 방법만 모를 뿐.




엄마의 마음을 다 전할 수는 없더라도 안 그래도 미래가 불안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세상 변화를 잘 모르는 엄마 말에 아이들 인생이 망하는 실수는 하고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살아온 세상과 앞으로의 세상은 많이 다를 텐데, 내가 무엇을 조언하랴. 젊은 유전자가 판단하는 직관이 늙은 세포가 시키는 일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가치와 더불어 능력을 넘어서는 지원도 안된다는 생각도 확실하다. 아이에게 올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상식 적인 선에서 지원을 해주되 그 이상은 아이 몫으로 남겨야 한다는 게 평소의 생각이다. 대학 졸업 혹은 대학원 졸업 정도까지가 엄마의 몫이니 그 이상을 하고 싶다면 아이가 알아서 개척해야 한다. 해외 유학을 위해 노후를 포기하는 일은 내 인생과 상관이 없다. 아이들은 잘 이해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면 생활 모습도 달라질까?


남자는 이십 대 중반에 전전두엽이 완성된다고 하더니 뇌과학의 당연한 결론인 걸까?


바쁜 와중에도 새로 연애를 시작하더니 그래서일까?




아이는 바쁜 삶의 만족스러움을 드러내며 꾸준히 운동하면서 패턴화 된 생활을 이유로 꼽는다.


엄마는 잘 모르겠다. 운동은 군대 다녀오면서부터 마동석 같은 팔뚝과 함께 늘 보아온 거라서 말이다. 운동을 하건 안 하건 같았던 아이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가 운동에 있을 것 같진 않은데, 거르지 않고 운동하는 스스로가 기특한가 보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진심이자 진실이다. 실수도 많이 하고 잘못도 많이 해서 '좋은 엄마'라는 생각은 들지도 않지만, 잘 키우겠다는 생각에 진심을 쏟으며 노력해 온 건 맞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태도를 달리하며 무심한 때도 있었고, 사이가 나쁜 시간도 있었지만, 소원을 빌라면 늘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나를 위한 희망은 언제나 밀리곤 했다. 첫째 소원 아들, 둘째 소원도 아들, 그리고서야 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피고, 눈 감고 못 본척하면서도 신경이 곤두서며 스트레스받는 시간도 길었다. 이제야 마치 보답처럼 평화가 찾아온 것 같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짧은 시간의 '한 때'인 기분도 든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큰 애가 나아지니, 혹시 둘째가 안 좋을까 걱정도 된다.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이 함께 오는 게 인생이란 걸 오십 년 동안 충분히 경험했기에.




잠깐이더라도 누리고 싶은 시간이다. 한 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는 아이의 든든한 모습에 혼자 웃고, 밝은 아이의 표정을 보며 함께 웃는 시간을 즐기고 싶다. 워낙 바빠서 늘 막차 타고 오다 보니 마주치는 시간도 많지 않지만, 짧은 시간이 마주침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행복인 요즘, 아이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어오르고, 지금이 행복한 아이가 좋아서 '이렇게만...'이라며 절로 손을 모으게 되는 현재를 유지하고 싶다.




아들은 참 이상했다. 엄마보다 자상한 아빠와, 나 보다 섬세한 아이들 아빠가 인생에서 만난 남자의 전부였던 나에게 아들 둘은 외계 종족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타인이라면 손절을 했을 텐데 '내 새끼'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했다. 외계 종족의 언어와 방식에 이제는 적응이 되었고, 나름의 대처법이 생겼다. 그러자마자 정서적 이별을 해야 했고 이제는 물리적 이별도 곧 다가온다.




힘들지만 참아야 했고, 어렵지만 버터야 했던 기억보다 존재 자체로서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아이들 독립을 지지할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와서 감사하다. 엄마는 언제는 아들 편이고, 어쩌면 아들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아왔으니까. 스스로를 위해 산다고 해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덜 치열하게 살았을 것 같은 생각엔 변함이 없다.




엄마의 생각도 상황도 자꾸 달라지고 변할 것이다. 아이들의 현재도 예상과 다르게 펼쳐질 것이다. 미래란 바뀌고 달라지는 것이고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어른은 없다. 미래의 불안에 압도되지 말고, 지나간 과거에 집착해서 상처를 붙들지 말고 그냥 지금 현재. 이대로를 행복해하고 싶다. 현재에 충실한 아이들을 먼 시선에서 지켜보며 기도하고 싶다.








크게 바라는 것이 없으니 큰 시련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900%EF%BC%BF20251104%EF%BC%BF090031.jpg?type=w773



아들이 여자 친구와 그림 카페 가서 그린 첫 유화란다



900%EF%BC%BF20251106%EF%BC%BF145307.jpg?type=w773



산책이 좋은 요즘 가을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