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by 루서


오십이 넘어가면 축구의 전반전처럼 인생의 한 축이 끝난 느낌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아이들의 성장과 양육이 마무리되며 나의 쓰임이 줄어서 그런 것도 같고, 백 세 인생의 중간 즈음이 지나면서 호르몬 때문에 생긴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도 같다.




인생에서 가장 고민이 많은 나이는 이십 대 초반일 것이다. 세상을 아직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 대학을 졸업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생존할 수 있을까"를 무거운 짐처럼 짊어져야 하는 시즌을 감기처럼 겪어야 한다. 온통 고민하고 안간힘을 다해 선택했건만, 최선의 선택지는 오래가지 않는다. #서울자가에대기업다니는김부장 을 보면 쓰라리게 다가온다.




전공이 직업인 경우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의지만 있다면 평생 해온 일을 정년까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경제적 이유와 사회적 보상을 고려한 복잡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고민 없이 오랜 시간 일 하기에 딱 좋다. 월급이 작아도 만족할 수 있다면, 굳이 새로움을 찾아 애써 노력할 필요가 없다. (관리자가 되기 위해 나를 갈아 넣는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요즘처럼 금쪽이가 많은 세상에서는 극복해야 할 문제도 많지만.)




'상승'과 '성공'을 제거한 인생은 단순해 보이지만, 산다는 게 어디 그런가. 단순하려고 마음먹으면 복잡할 게 없는 것이 삶이지만, 단순하고 싶다고 단순할 수 없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성취하지 않아도, 성공하려 애쓰지 않으며 살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은 머리꼭지에 늘 붙어 다닌다. 그 고민이 한 번 더 깊어지는 시기가 오십 대, 중년이다.




엄마로서 살 때는 삶에 대한 고민조차 사치였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벽 앞에서 걱정만 많았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현실을 겪을 아이들에게 무엇을 준비시켜야 하는지,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주변을 걷어낸 후, 온전하게 나만 중심에 두고 생각해 보는 인생 시즌은 처음이다. 아이들 성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었던 10여 년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고민하다가도 현실에 치여 놓치고 살았나 보다. 한 때는 '성취'해 보겠다고 도전을 한 것도 같은데 첫 마음과 다르게 시간이 지나며 다시 일상의 챗바퀴로 돌아와 버렸다.




'시도'는 '성취'가 아닌 '삶의 일탈'로 남았다. 깊이 없이 얕았고, 성장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아쉬움이 남았는지 '어떻게 살까'는 반복된 질문으로 얼룩처럼 남았다. 오롯이 나를 향한 질문이지만, 남들과 다르지는 않다. 삶의 방향과 계획이건만 우리 또래의 유행을 흉내 내고 있다.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나이가 들수록 노후를 안정되게 만들어 줄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해서 재테크에도 관심을 가졌고, 중년은 결국 '근테크'라고 해서 안 하던 운동도 시작을 했다. 외국어 하나는 해야 한다고 해서 결심을 해보았지만, 선뜻 내키지는 않는다. 외국어는 조금 더 큰 자극이 필요하려나 보다. 영어 유튜버들과 친해지려고 애쓰고는 있다.




평생 내돈내산을 사느라 버거웠던 재테크는 더 이상 업그레이드는 힘들 것 같다. 잘 유지하는 게 목표다. 과거와 다른 속도로 빠르게 달라지는 세상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며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만족이다. 재테크보다 소중하다는 근테크도 도전과 포기를 반복하며 여러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쳐왔다. 운동 루틴이 안정되며 호흡과 땀의 기쁨을 발견하는 요즘, 한계를 이겨내는 몸의 신호를 발견할 때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성취감에 기분이 째진다.




육각형 인간은 이미 글렀으니, 육각형 삶을 시도하고 싶고 육각형이 안되면 삼각형이라도 만들고 싶다. '조화로운 삶'을 상상하며 재테크와 근테크와 더불어 취미와 배움도 챙겨 본다. 취미생활에 인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취미러'에 어울리도록 문화생활에 심취했던 시간이 꽤나 길다. 공연과 전시를 아이들보다 더 챙겼다. 내 인생에 그만큼 집중했던 분야가 없어 지난 시간이 만족스럽다. 잠시 소원했던 취미를 다시 살려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머리로 하는 취미보다 몸이 기억하는 취미를 가져야 할 것 같다. 강의를 들어도, 공부를 해도 기억이 오래가지 못하는 한계를 점점 더 인정하는 중이다. 아직은 가만히 앉아 귀로 듣는 강의가 더 좋긴 하지만 취미의 변화도 필요해 보인다. 나이 들수록 예체능과 친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귀를 거쳐 심장으로 향하고 있다.




자기 객관화를 위해 배움은 필수라 했다. 중년 전문가 #이호선 교수님 강의에서 새로운 배움, 새로운 관계가 새로운 자극을 주게 되고, 익숙함에서 벗어난 자기 성찰에 이르러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들었다. 친한 주변 사람들은 나이 들수록 인간관계의 폭을 좁혀야 한다고들 하던데, 아닌가 보다. 최근 영화 #윗집사람들 에서도 '머나먼 타인의 새로움'의 의미를 느껴 보기도 했다.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다. 마음 깊이 숨겨두고 아직 꺼내지 못한 욕망이 가끔 존재감을 과시한다. '연기'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면을 표현하는 수업을 받고 싶어서 문화센터 홈피를 들락거렸는데, 생각만 1년째 중이다. 두려움은 아닌데 막상 발동이 걸리지 않는다. 상상을 글로 써보고 싶은데, '상상력'과 '창의력' 세포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해 두려움이 앞선다. 그리하여 소설 쓰기 수업도 생각만 3년째.




고민하는 사이 몸은 더 노화되어 이제는 출퇴근과 운동, 그 사이 끼니를 해결하고 반려견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나이 탓을 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다. 자기 객관화를 나이 합리화로 퉁치는 현실이 슬프지만 오십 넘어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앞으로의 삶은 지루하지는 않더라도 단조로울 것 같다. '일상을 유지하다 인생이 끝나도 괜찮은가?'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이 꼭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근테크를 시작해서 루틴을 만들어 빠짐없이 해내려는 내가, 바쁜 일상 중에도 배우려는 마음을 잃지 태도가 기특하다. 저질 체력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신호를 감지할 때 성취감이 단순함의 아쉬움보다 크다. 인생에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5km 뛰기'도 가능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기니, 겁냈던 배움도 마음먹으면 해 낼 것 같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적당히 가까운 곳을 찾아 배우는 시간도 언젠가는 올 거라 믿으니 막연했던 불만이 거치며 스스로에 대한 긍정이 강화된다.




긍정만큼 파고드는 객관화에 혼자 웃음이 번진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구나.' 한 번 더 성찰한다. 이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배움을 하라는 건가 보다. 자신에 쉽게 만족해서 심지어 기특해하니 말이다. 합리화에도 능하다. '취미 활동이 부족하고, 배우지 못하고 있으면 어떤가. 의욕을 가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시도하면 되지!' 변명이 정답이 되어버린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도시락 챙기고, 강아지 산책 시키고 출근해서


걷뛰 40-50분 하고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하거나 퇴근 시간에 맞춰 필라테스로 근테크 하며 하루를 보내는 현재.


충분한 수면을 위해 10시 반이면 자야 해서 독서량이 부족해서 이 또한 아쉽지만, 휴식이 주어진다면 독서와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계획을 만드니까.




쉽게 만족한다고 타박하지 말고, 일단은 예뻐하기로 한다. 그 마음 잃지 않아야 시도하고 두드릴 것이다. 예뻐하기로 한 스스로가 메타 인지가 부족한, 자기 객관화가 덜된 '자아'가 아니길 바라며, 힘을 내어 본다.




P.S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지역 서점 인문학 수업에서 #이정모 관장님의 1년 치 강의가 열린다. 한 달에 한 번, 첫 주 월요일에 이정모 관장을 만나 "진짜 과학" 수업을 듣게 된다. 얼리버드로 냉큼 신청했다. 신난다!


겨울 휴가 때 홍대에 가서 미술 수업 듣고, 1년간 이정모 관장님의 과학 수업을 들으면 1년 간 인문학 강의는 충분하겠다. 만족스러운 계획이다. 벌써부터 콧노래가 나온다. 빠지지 말고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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