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입사지원서에 '존경하는 인물'을 쓰라고 하면 늘 망설이지 않고 작성하던 대상이 있다. 바로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
이동진 평론가님을 '존경한다'라고 명시하게 된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영화를 보고 나면 동진 님의 평론을 찾아보는 습관이 있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이렇게 명쾌하고 공감 가는 한 줄로 정리할 수 있는지 감탄을 자주 하곤 했는데, 그 감탄이 모여 어느 날 존경심이 되어 있었다.
그중 영화 <인사이드 아웃>이 한창 개봉 후 인기를 얻고 있던 2015년.
주인공 '라일라'의 머릿속에 사는 5개의 감정 캐릭터로 등장한 '버럭이', '기쁨이', '까칠이', '소심이', '슬픔이' 중에서도 단연 히로인은 '슬픔이'였다. 이 영화의 주제가 슬픔이라는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였을 때,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말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미 어른이 되어 있던 나 역시 라일리처럼 ‘슬픔이’를, 더 나아가 ‘버럭이’까지 애써 외면하며 마음 깊숙이 눌러 두곤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내 삶을 잠식할 것만 같다는 두려움, 그런 내면을 드러내었다간 모두가 나를 멀리할 것만 같다는 불안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는 묵직한 위로를 받았다. 모든 감정은 저마다 고유한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다는 것. 오히려 그것들을 정직하게 표현하고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회복과 성장이 시작된다는 속삭임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 후 설레는 마음으로 이동진 평론가님의 한줄평을 찾아보았을 때, 뜻밖의 한 편의 시와 마주했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 속 구절을 인용한 그 문장은 좋은 영화와 좋은 시, 그리고 그 둘을 이어낸 평론가의 시선까지 담겨 있어 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이 문장을 읽은 순간 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실히 다르게 가져갈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하지만 그 깨달음을 실감 나게 체화하게 해 준 것은 다름 아닌 여행이었다.
낯선 땅에서 불쑥 찾아온 변수들 앞에서 화가 치밀기도 하고, 두려움에 흔들리며 한없이 움츠러들기도 한다. 여행 경험이 적었던 때에는 ‘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작은 불안이나 불편을 느끼자마자 모든 여정을 망쳐버린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예기치 못한 그 감정들까지 껴안는 순간 비로소 그 여행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그 기억이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 스위스 인터라켄, 그리고 영국 런던의 이야기로 이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