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스위스 인터라켄: 고소공포증과 패러글라이딩

by 수경

상상력이 풍부한 탓인지, 나는 별것 아닌 것에도 쉽게 두려움을 느낀다.


폐쇄된 공간에서는 숨이 막히고, 뾰족한 물체를 보면 가슴이 찌릿한다. 경사진 내리막길조차 나에겐 균형을 잃고 넘어질까 봐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하지만 그 모든 두려움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힘을 가진 것은 단연 '높은 곳'이다.


전망대 난간에 서면 다리가 제멋대로 후들거리고, 놀이기구 안전바를 잡을 때는 손바닥에 진득하게 땀이 배어난다. 절벽 끝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면, 내 몸이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에 붙잡혀 순식간에 끌려가 떨어질 것만 같다.


그런 내가 "왜 패러글라이딩을 하겠다고 했을까!" 라며 울부짖던 건 2018년 7월, 13일의 금요일을 하루 앞둔 목요일이었다.





땅에 발을 붙여놓고도 무서워하는 내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게 된 건 아무래도, 인생 처음으로 마주한 스위스가 주는 압도적인 평화로움 때문이었다.


이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될까 봐, 하는 그 가능성이 주는 두려움이 더 커져 버린 탓이다. 스위스의 평화 속에서조차 고소공포증을 이유로 뒤로 물러서 버린다면, 나는 결국 어디서도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굳은 다짐을 한 나를 태운 픽업 차량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귀가 찢어질 듯 더 높은 곳으로 계속 올라갔다.


흘끗 본 차창 밖으로 낭떠러지가 들어오는 순간부터는 ‘괜찮아, 괜찮아’라는 주문을 되뇌며 진정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 후 출발선에 선 순간, '지금이라도 도망쳐!'라고 외치듯 나를 뒤로 밀어내는 거센 바람에 몸이 휘청였고


결국 도약을 위해 달리던 중, 다리에 힘이 풀려 중심을 잃고 파일럿과 함께 언덕을 굴러버렸다. 무사히 일어나긴 했지만 정신이 나가버린 내게 Fabi는 따뜻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발을 절대 멈추면 안 돼요.
계속 걸어야 합니다.
이것만 이겨내면 날아오를 수 있어요.



언덕을 거슬러 올라와, 시작된 두 번째 시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이를 악물고 질주했다. 힘이 풀려버린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네 걸음. 어느 순간부터 땅에 강하게 부딪히던 발바닥이 허공에 휘적여지고 있었고 나를 거세게 밀어내던 알프스의 바람은 이내 온몸을 감싸 안았다.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숨이 막힐 만큼 선명했다. 호수는 푸른 유리처럼 반짝였고, 초원 위의 집들은 작은 점들로 이어진 모자이크처럼 보였다.


이 절경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 공포를 완전히 극복해낸 것도 아니고, 온전히 끌어안은 채로, 내가 하늘을 가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착지를 하는 순간에도 다시금 겁이 몰려와, 비명을 지르며 초원 위를 데굴데굴 굴러버렸다.


추락한 관광객이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됐는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몰려와 일으켜주었는데, 이때 부끄러움보다 묘한 뿌듯함이 앞섰다.



이날 이후 고소공포증이 사라졌냐 하면, 그건 아니다. 사실 이제 난 그 공포증을 이겨냈다고 자신하며 한국에 돌아와 대관람차를 탔다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여전히 높은 곳에 서면 다리가 떨리고, 손바닥에 땀이 차오른다. 평온한 남을 보며 부러워 하고 나는 왜 이럴까 아쉬울 때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그 공포를 외면하지 않고 껴안을 수 있다는 것, 두려움과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인터라켄의 하늘은 그렇게 겁쟁이였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그리고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그날 내 곁에서 날아준 Fabi가 지금도 저 푸른 하늘 어딘가에서 건강히 바람을 가르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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