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기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채우기 위해 첫 번째로 달려간 도시는 영국 런던. 크리스마스를 열흘 앞둔 런던 시내는 반짝이는 조명과 활기로 가득했다.
하이드파크에서 캐럴 무대를 감상하고, 코벤트 가든에서 반짝이는 장식들을 구경하느라 이틀이 훌쩍 지나가버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밤, 내셔널 갤러리 앞 광장에 갔을 때 산타 클로스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동상 아래 와글와글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런던 사람들은 정말 귀엽구나!" 생각하며 그들의 낭만 속을 걷다 보니 어느새 3만 보를 훌쩍 넘게 걸어버렸다. 슬슬 고장 날 것 같은 다리를 부여잡고 이제 스탠스테드 공항으로 이동해야 할 때.
런던과 헤어진다는 아쉬움이 올라오던 그때부터 진짜 여정은 시작되리란 것은 알지 못했다.
공항버스를 예약해 둔 패딩턴 역 앞, 나와 친구는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어두운 고속도로에 서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시계는 자정을 향해 가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발끝은 차가운 빗물에 잠겨가고, 젖은 코트 속으로 스며든 한기는 뼛속까지 스멀스멀 파고들었다.
‘설마, 돈을 주고 예약한 버스인데, 오지 않을 리가 있겠어?’ 서로를 달래며 버텼지만,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도 받는 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불안은 점점 확신으로 굳어졌다.
결국 더 이상 패딩턴 역으로 향하는 공항버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을 때, 차가운 빗방울이 아닌 좌절감이 온몸을 적셔오는 듯했다.
우리가 시간 안에 공항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은 리버풀 역을 경유하는 우회 노선뿐이었다. 폭우와 추위에 지쳐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올랐지만, 그곳에는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취한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인종차별적인 말들을 쏟아낸 것이다. 이미 피곤과 불안으로 바닥까지 내려앉은 무기력함이 나를 짓눌러, 단 한 마디조차 뱉지 못한 채 얼어붙고 말았다.
반짝이던 크리스마스 마켓의 불빛과 들뜬 음악 속에서 시작된 여행이, 마지막에는 이렇게 불쾌함과 분노만 남기고 끝나는 건가.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마치 이 여정 전체가 실패한 것처럼 느껴져 슬픔이 차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힘겨움에 사로잡힌 채 마침내 리버풀에서 다른 공항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러나 버스 안에는 술에 취한 듯 떠들어대는 무리가 있어, 이동하는 내내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가 없었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드디어 도착한 스탠스테드 공항은 깜깜하게 잠든 듯 고요했다. 불 꺼진 공항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따라가자, 놀랍게도 그곳에선 많은 여행자들이 맨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스러움이 먼저 올라왔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우리는 주저할 틈도 없이 그들 곁에 자리를 잡았다. 차갑고 단단한 시멘트 바닥은 얇은 코트를 무시하듯 서늘한 기운을 척추 끝까지 전해왔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고, 3만 보를 훌쩍 넘긴 다리는 묵직한 통증을 쏟아냈다.
내일 아침에 과연 내가 눈을 뜰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시간은 흘러 아침이 찾아왔다. 공항 직원들이 출근을 한 듯, 부산스러움 속에 게이트가 열리자 긴 밤을 버틴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소란함에 눈을 뜬 나 역시 굳어 있던 몸을 겨우 일으키다가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피곤과 허무 대신, 우리의 얼굴엔 설명하기 어려운 미소가 동시에 번졌다. 어젯밤의 절망이 동이 트자마자 ‘추억’으로 변모한 것이다.
참 우여곡절이 많았던 모든 고단함과 불편함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되면서, 결국 삶과 여행은 모두 굴곡으로 엮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힘든 순간이 있다고 해서 여행이 망하는 것이 아니듯, 실패가 있다고 해서 인생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굴곡을 품어 안았을 때, 여행이 비로소 완성되고, 인생은 한층 더 깊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한겨울의 노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