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영화와 함께 하는 삶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늘 영화를 찾았다.
책을 읽기에는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음악을 듣기에는 마음이 복잡할 때, 영화는 가장 완벽한 도피처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단 몇 시간 동안 펼쳐지는 한 편의 이야기에 몰입하다 보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영화를 보다 보니 어느새 나의 '인생 영화'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도 더러 생겼다.
인생 영화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작품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장면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나를 위로했고, 어떤 대사는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곁에 남은 영화들을 꼽자면, 고민 끝에 이 세 편을 선택할 것이다. <굿 윌 헌팅>, <소울>, <빅 피쉬>.
각각의 영화는 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굿 윌 헌팅>은 과거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준 작품이자, 심리학에 대한 꿈을 품게 한 영화다. <소울>은 현재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에 시달릴 때,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메시지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빅 피쉬>는 다정한 이야기꾼으로서 사랑받고 싶은 내 미래의 낭만을 그려 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렇게나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영화 속 장면을 직접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굿 윌 헌팅>을 보며 해외 대학 캠퍼스에 대한 로망이 생겼고, <소울>을 보며 뉴욕 재즈 클럽에서 공연을 보고 싶어졌다. <빅 피쉬>를 본 후로는 끝없이 펼쳐진 노란 수선화 밭에 가고 싶었다.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영화의 배경지를 찾아간 적도 많다. 영국 런던의 지하철을 탈 때나 거리를 걸을 때 <해리 포터>, <셜록 홈즈>, <어바웃 타임>을 떠올렸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장면이 겹쳐 보였다. 프랑스 파리 개선문 위에서 분홍빛 노을과 에펠탑을 바라볼 때는 <라따뚜이>의 음악이 저절로 머릿속을 채웠다.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의 흔적을 따라 여행한 적이 많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마치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 속에 내가 먼저 들어와 있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노팅힐과 일본 도쿄의 다이칸야마에서 있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