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마천학회 추천 올해의 고사성어 4
한국사마천학회 회원들이 매년 추천하는 2023년 올해의 고사성어들을 항목별로 나누어 몇 회에 걸쳐 올려본다. 교수신문처럼 사자성어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명언명구들도 추천할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 사자성어였다. 사자성어의 특징과 장점에 대해서는 '고사성어의 특징과 매력' 부분에서 언급한 바 있다. 전 회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추천을 받은 성어들이 뜻하는 바가 대부분이 부정적이고 암울했다. 현 시국과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우기다 ‘지록위마(指鹿爲馬)’
2천 년 넘게 말과 글을 통해 숱하게 인용된 ‘지록위마’는 힘으로 남을 짓눌러 바보로 만들거나 그릇된 일을 가지고 속여서 남을 죄에 빠뜨리는 것을 비유하는 너무나 유명한 사자성어이다. 진시황(秦始皇)의 측근으로 진시황이 갑자기 죽자 이를 틈타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조고(趙高)라는 간신이 사슴을 끌고 와 말이라고 우기면서 연출한 촌극이다.
조고는 누가 자신을 따르고 누가 반대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 그리고는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무고한 죄를 씌워 죽였다. 이 일이 있는 뒤로 신하들은 조고가 무서워 그가 하는 일에 다른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지록위마’는 권력을 가진 자가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주위 사람들을 떠보거나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려는 짓을 비유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이비 지식인, 즉 ‘학간’이나 ‘언간’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성어로도 많이 사용한다. 2014년 교수신문이 매년 연말에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정권에서 ‘지록위마’는 하도 많이 등장해서 그 사례들을 꼽자면 손가락이 모자랄 판이다. ‘바이든’ ‘날리면’부터 시작해서 해외 명품 쇼핑을 문화 활동으로 우긴 일 등등. 그리고 ‘언간’들은 이 ‘지록위마’의 사기극의 충실한 들러리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록위마’를 기점으로 조고와 진나라가 몰락했다는 사실이다.
또 한 번 추천을 받은 ‘혼용무도(昏庸無道)’
‘혼용무도’는 2015년 박근혜 정권 때에 이어 또 추천을 받았다. ‘혼용(昏庸)’과 ‘무도(無道)’를 합친 합성어였다. ‘혼용’은 말 그대로 ‘어리석다’는 뜻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두뇌가 모자라고, 어떤 재능도 없는’ 상태나 사람을 가리킨다. ‘무도’는 글자대로라면 ‘도가 없다’는 뜻인데, 대개는 ‘대역무도(大逆無道)’나 ‘황음무도(荒淫無道)’라는 네 글자를 많이 쓴다.(‘대역무도’는 순리나 상식을 멋대로 거스르는 짓이나 그런 자를 가리키며, ‘황음무도’는 음탕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무도’는 덕을 베풀지 않는 포악한 정치, 그로 인해 조성된 암울하고 혼란한 정치 상황, 그런 정치를 일삼는 통치자를 나타내는 단어로 수천 년 동안 수없이 사용되어 왔다.
이렇듯 대단히 부정적인 두 단어가 합쳐졌으니 그 의미는 말할 것도 없이 대단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혹자는 2015년을 기준으로 이전 15년 동안 발표된 <교수신문> 올해의 사자성어들 중 가장 강력하다는 촌평까지 내놓았다.
‘혼용’은 비교적 후대에 등장한 단어다. 송나라 때의 문학가인 소동파(蘇東坡)가 <사자대부(思子台赋)>라는 작품에서 어리석고 멍청하다는 뜻으로 사용한 사례가 확인되고, 그 후 몇몇 문인들이 비슷한 뜻으로 사용했다. 그런가 하면 소동파와 같은 송나라 때 사람인 왕명청(王明清)은 <옥조신지(玉照新志)>(권1)에서 사회의 정치가 암울하다는 뜻으로 ‘혼용’을 사용한 바 있다.
한편, ‘무도’의 출전은 《논어(論語)》의 ‘계씨(季氏)’편을 비롯하여 《한비자(韓非子)》, 《사기(史記)》 등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뜻하는 바는 약간씩 차이가 난다. 즉, 사회와 정치의 분란을 가리키는 경우, 바른 길을 걷지 않는 경우, 보편적 상식과 정리를 벗어나는 것을 두루 가리키는 경우, 정도를 걷지 않고 나쁜 짓을 일삼는 사람과 폭군을 가리키는 경우, 할 말이 없다는 뜻, 방법이 없다는 뜻 등 다양한 편이다. 특히 《사기》 <진섭세가(陳涉世家)>에는 ‘벌무도(伐無道)’라 하여 포악한 군주를 토벌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합성어가 또 추천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상황이 엉망이라는 지적일 게다. 특히, 통치자에게 붙일 수 있는 최악의 수식어가, 그것도 합성이라는 부자연스러운 방식을 통해 선정될 정도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를 알 수 있다.
문제는 ‘혼용무도’한 통치자와 그것을 바로잡기는커녕 부추긴 측근들의 행태에 대한 철저한 비판과 추상같은 책임 추궁이 따르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들이다.
* 참고 유튜브 영상: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
《사기》의 다양한 고사성어와 명언명구들(1시간 23분)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