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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수 Sep 22. 2024

고사성어 365

9월 22일: 궁수저서(窮愁著書)

9월 22일의 고사성어(266) - 울분을 저술에 쏟는 문화복수(文化復讐)


궁수저서(窮愁著書)


* 곤궁하고 시름에 겨워 책을 쓰다.

* 《사기》 <평원군우경열전>


눈으로 읽으며 낭독하기

힘들고 고난에 처했을 때 분발하여 책을 쓴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주 문왕(文王)은 유리(羑里)에 7년 동안 갇혀 있으면서 8괘를 64괘로 풀이하여 《주역(周易)》을 남겼고, 좌구명(左丘明)은 실명하고도 《좌전(左傳)》이란 역사책을 썼다.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기원전 약90)은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고 성기를 자르는 궁형(宮刑)을 자청하면서까지 살아남아 위대한 역사서 《사기(史記)》를 완성해 냈다.

이들은 모두 곤경에서 남을 원망하거나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분발하여 위대한 저서를 남겼던 것이다. 이를 ‘발분저술(發憤著述)’이라고 한다. 울분을 저술에 쏟는다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성어가 ‘궁지에 몰리고 시름겨울 때 책을 짓다’는 뜻의 ‘궁수저서’이다.

전국시대 조나라와 조나라의 유력자 평원군(平原君, ?~기원전 251)에게 유세하여 벼슬을 얻었던 우경(虞卿)은 자신과 친했던 위제(魏齊) 때문에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 수도 대량(大梁)으로 도망쳐서 궁하게 살았다.

그 뒤 위제가 자살했지만 우경은 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고 나라의 득실을 풍자한 8편으로 이루어진 《우씨춘추(虞氏春秋)》를 저술했다. 사마천은 우경에게 그런 ‘고통과 근심이 없었더라면 저술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안타깝게도 이 책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

‘궁수저서’는 다양한 형식으로 전해져 ‘궁수유작(窮愁有作)’, ‘궁수한간(窮愁汗簡)’ 등으로도 쓰였다. 우경이 책을 쓴 사실에 입각해 ‘우경서(虞卿書)’라는 표현도 나왔다. 이 표현을 빌려 당나라 때의 문장가 한유(韓愈)는 “은근한 말로 사양하지 못했다고 나무라지 말라. 우경이 바로 책을 남기지 않았던가?”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손으로 써보며 생각하기

* 궁수저서(窮愁著書)

* 발분저술(發憤著述)

* 궁수유작(窮愁有作)/궁수한간(窮愁汗簡)

* 우경서(虞卿書)

도면. 우경은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지만 곤궁한 처지에도 책을 남기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 평원군과 대화하는 우경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 유튜브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 하루 명언공부 9월 22일

- 진경매마(秦瓊賣馬)

- 진경이 말을 팔다.

https://youtu.be/ikjF4imXf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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