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수과읍불입문(數過邑不入門)
11월 3일의 고사성어(308) - 공사구분에 엄격했던 상인
수과읍불입문(數過邑不入門)
* 여러 차례 집을 지나면서도 문에 들어가지 않다.
* 《사기》 <화식열전>
눈으로 읽으며 낭독하기
중원 한복판에 위치한 낙양(洛陽)은 육로와 수로가 사통팔달이어서 전국시대에 이미 중국 최대의 상공업 도시였고 서한 시기에 와서는 더욱더 발전했다. 사사(師史, 생졸미상)는 바로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낙양의 상인이었다. 그는 각종 상품을 싣고 천하 각지를 마음대로 오가며 상품을 유통하는 수레를 무려 100대 이상을 소유하고 있었고, 이를 활용한 대규모 유통업이 그를 성공으로 이끈 원천이었다. 현대 경영의 관점에서 사사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원인을 분석해 보면 2천 수백 년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경영에도 충분히 본받을 만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사사는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일찍부터 심각하게 인식했다. 그래서는 근검절약을 철저하게 지켰는데 심지어 ‘여러 차례 자기 집 앞을 지나면서도 문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둘째, 사사는 자기 사업을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는 종업원들을 아주 잘 대해주었다. 늘 어려움이 없는지 물었고, 적시에 수시로 그들의 경제적 심리적 요구를 만족시켰다. 이런 경영법을 통해 그는 종업원과의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틈이나 갈등을 해소했다. 이와 함께 오랫동안 외지에서 사업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기도록 격려했다. 이 모든 것들은 고용주에 대한 종업원의 향심력과 내구력을 강화시켜 고용주가 베푸는 은혜와 혜택에 충분히 반응하는 심리적 효과를 냈다.
셋째, 사사의 남다른 경영방식이다. 다른 기록에 보면 그가 천하 각지에 조성한 ‘낙양가(洛陽街)’의 점포들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고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점포 주위와 상품을 깨끗하게 정돈하는 외에 고객들이 도저히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할 묘수를 구사했다. 각 점포는 매일 상품과 관련된 수수께끼를 내걸고 손님을 유인했는데 누구든 이 수수께끼를 맞히면 원하는 물건을 선물로 주거나 하루 숙박비를 면제해 주었다. 이 때문에 숙박업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사사의 점포는 늘 손님들로 가득 찼다.
손으로 써보며 생각하기
* 수과읍불입문(數過邑不入門)
도면. 사사는 일과 개인생활을 확실하게 구분했다. 일 때문에 여러 차례 집 앞을 지나면서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사진은 낙양 고마차 박물관의 입구이다.
* 유튜브 ‘김영수의 좀 알자 중국’: 하루 명언공부 11월 3일
- 대명지하(大名之下, 난이구거(難以久居)
- 큰 명성 아래서는 오래 머물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