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읽으면 여한이 없을 한비자
독자들의 서평은 무섭습니다. 올라오는 대로 공유겠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한비자를 한 번만 보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한비자의 나라였던 한나라를 침략하여 한비자와 조우하게 된다. 하지만 진시황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한비자를 본 후 그를 그대로 방치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비자는 말을 더듬었다고하니 진시황의 눈에 미덥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얼마 후 한비자는 이사의 모함을 받아 독약을 먹고 자결한다. 한비자의 최후를 보면서 만약 한비자가 진시황에 의해 쓰임을 받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그랬다면 한비자는 중국역사에 제갈량과 같은 반열에 올라섰을까? 아니면 한비자의 책략은 단지 책 속에 들어있는 문자로서 가치가 있었을 뿐 현실 정치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은 후대에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을 얻은 한비자가, 더군다나 제왕학을 통해 왕과 신하와의 관계에 대해서 논했던 한비자가 어떻게 힘 한 번 써 보지 못하고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했을까 하는 점에서였다. 또 만약을 가정하면 한비자가 진시황에게 발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공을 세우지 못했다면 그래도 한비자가 오늘날 법가의 전통을 잇는 고전이 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을 뒤로 한 채 결코 쉽지 않다는 한비자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한비자가 생애와 당시의 시대 배경이나 사상을 알아본 후 2부에서는 한비자가 이야기한 제왕학의 구체적인 지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3부는 조금 더 들어가 우화를 통해 한비자가 말하고자 했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본다. 책의 구성에서 좋았던 점은 중요한 부분은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핵심을 이해하기가 편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러 우화나 고사를 통해 옛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이 있고 한비자로부터 파생된 고사성어가 정말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가령 우리가 자주 쓰고 있는 역린, 모순, 경거망동, 부국강병, 논공행상, 신상필벌등은 모두 한비자의 저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한비자는 정말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비자 사상의 핵심은 “법,술,세”라고 한다. 여기서 법은 통치를 위한 기본적인 도구이며 술은 지배를 위한 정치공학적인 기술이다. 그런데 이러한 법과 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세(세력)다. 권력자가 힘(세력)이 없으며 법과 정치공학적인 기술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와 대입시켜도 정말 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은 인사권이라고 하는 가장 큰 세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어수선한 시국과 맞물려 인상적이었던 부분도 많았다. 한비자는 “천 길이나 되는 둑도 개미 구멍 때문에 무너진다”면서 방공이 위나라 왕에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 누군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못 믿지.”
“또 한 사람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못 믿지.”
“또 한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믿을 것 같소”
방공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나는 일은 분명히 없겠지만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없던 호랑이가 생긴다고 말한다. 이 말을 통해 저자는 근거없이 헐뜯는 말이라도 반복되고 거듭되면 사람 마음이 흔들린다면서 유언비어의 위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가벼운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가 가라앉을 수 있는 것처럼 헛소문, 헐뜯기, 유언비어를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 편향된 정보가 유튜브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지고 온통 나라가 어지러운 시국에 한비자의 이 이야기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한비자가 말한 “두루 들으면 현명해지고, 한쪽만 믿으면 어리석어진다”는 말은 온갖 정보가 범람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말 필요한 조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밖에도 마자하의 ‘먹다 남은 복숭아’이야기를 통해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행위안에 숨겨진 동기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도 인간관계에서 정말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많이 느끼고 생각하고 통찰을 얻을 수 있어서 의미가 깊은 책이었다. 한비자는 제왕학의 교과서라는 칭송뒤에 천하제일금서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정도가 아닌 사도를 이야기한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한 번쯤 읽어보면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