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을 열고 나서는데, 난간에 앉아 있던 나비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팔랑대며 날아간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혹은 나의 길을 안내하겠다는 듯 앞장서서 날아가는 뒷모습을 본다.
‘꽃도 없는 이 복도에 웬 나비일까?’
의아한 생각도 잠시, 그 나비는 이내 내 앞에 다시 나타나 주변을 팔랑거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꽃밭도, 따스한 양지도 아닌 곳에서 대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왜 자꾸 내 앞을 알짱거리며 시선을 끄는 것일까.
이런 일은 한 번이 아니었다. 마트에 가는 길에도, 산책하는 데크 길에서도 그 나비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지난해 깊은 산중을 걷다 나무 등걸에 앉아 쉴 때도 그랬다. 때아닌 철에, 때아닌 장소에서 자주 마주치는 나비 한 마리를 보며 문득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죽은 영감이 나비로 환생했나? 그래서 이렇게 내 앞에 자꾸 나타나는 것일까?’
환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오래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일가친척들의 주선으로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진오귀굿’을 했었다. 박수무당이 주문을 외우다 병풍 앞 쌀 함지를 열더니, 어머니가 까치로 환생하셨다고 했다. 함지 속 쌀 위에 찍힌 발자국이 그 증거라 했다.
누구보다 이지적인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았건만, 그 환생설은 내 내면에 깊이 각인되었나 보다. 지금도 산중에서 까치를 보거나 창밖에서 까치 소리가 들리면 ‘어머니가 오셨나’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곤 하니 말이다.
오늘도 희뿌연 이른 아침 산책길, 숲도 산중도 아닌 큰길가에서 갑자기 나비 한 마리가 내 앞을 스쳤다. 얼른 휴대전화를 들어 그 모습을 담으려 했으나 나비는 이미 신기루처럼 사라진 뒤였다. 서운한 마음으로 길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그 녀석이 다시 팔랑대며 나타났다. 와락 반가운 마음에 안아보려 두 팔을 벌려 보지만 역시나 허사다.
멀어져 가는 나비의 뒷모습 위로 병상에 누워있던 영감의 생전 모습이 겹쳐진다. 죽은 듯 누워 있다가도 내가 곁을 스칠 때마다 그 앙상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쥐어주던 사람.
그 애틋했던 손길이 날갯짓이 되어 돌아온 것일까. 나비가 된 당신, 이것은 그의 환생인가, 아니면 사무친 그리움이 만든 환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