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한 참 떨고 있는데. 내 폰에서 요란한 전화벨이 울린다.
" 얘, 4시!" 하면서 친구들이 웃는다. 나는 4시까지 꼭 집에 도착해야 하는것이다.
평생을 직장에 매여 누리지 못했던 자유. 친구들과의 수다.
이미 홀로 된 친구들: 매일 것 없는 자유인들 속에서, 나만 퇴직은 했지만 아직 자유인이 아니다.
여행중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어디냐고 묻기에 곤지암을 지나는 버스 안이라고 대답했다. 빨리 오라고 볼멘 소리를 한다.
차 안이라고 했는데도 빨리 오라고 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날아갈까? 비행기라도 갈아 탈까?!
친구들 앞에 부끄럽기도 하고, 그 재촉이 속박 같기도 하여 심기가 좋지는 않다.
아쉽지만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온다. 그러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 60여년이나 이렇게 남편이라는 끈에 매여 살았으니, 이제 그 끈에서 풀려나 내 마음대로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런 나의 내심의 바램이 독이 되었던지 남편이 얼마 전에 저세상으로 갔다.
직장생활 하면서 자식들 셋 기르면서, 남편의 힘든 생활 뒷바라지 까지 하면서 숨가쁘게 살아온 지난 나날들!
시간이 늘 모자라, 한 손에 가방 쥐고 또한 손에 반찬거리 사들고 가면서, 걷지 않고 뛰면서 살아왔다.
내게 늘 끈을 잡고 있는 그가 없으면 홀가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얽매임 없는 자유보다 허전함이 훨씬 더 크고 견기디 어려웠다.
뱃짐이 있어야 배가 흔들리지 않고 잘 전진할 수 있는 것처럼, 내게도 짊어질 짐이 있었기에 흔들림 없이 지금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떠나고 없는 내 자유로운 삶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빈 쪽배 같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평생 살아가면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후회' 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 후회를 하고 있다.
허공을 바라보고 세찬 돌이질을 하면서 철없이 했던 못된 바램을 떨쳐 버리려 한다.
그가 없으면 내 노후의 삶이 좀 더 편안하겠다는 생각을 왜 했을까?
그가 내게 잡고 있던 끈은, 올가미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게 하는 탱탱한 당김줄이었다.
자식들, 남편 , 직장 이 내 삶의 무대였다.
남편도 떠나고 자식들도 성가하여 모두 내 곁을 떠났다. 이제는 무대위에 있지 않고, 객석에 끼어 있는 하나의 관객일 뿐이다.
이대로 흔들리는 빈 배로 남은 생을 살 수는 없다.
다시 무대 위로 오르자, 독백의 무대!
무엇을 할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이렇게 많이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내 몸 잘 섬겨서 자식들에게 짐되는 일 없게 하기!'
' 국가, 사회, 지인, 자식들을 위해서 기도 하기!'
'바닷가 모래알만한 일이라도 이웃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찾아 하기!'
오늘도 묵주를 손에 들고 산으로 간다. 산이 나의 기도 장소이다.
예쁜 색실 사다가 뜨개질 하며 코끼리, 기린, 오리,거북이.곰돌이.. 갖가지 동물들을 만들어 낸다.
증손주들에게 선물로 줄 것이고 동네 아가들에게도 나누어 줄 것이다.
장미, 개나리, 튜립. 수선화, 능소화, 목련화... 가지 가지 꽃을 뜬다. 친지들 집 방문할 때 선물로 줄 것이다.
예쁜 꽃 수세미를 많이 떠서 나누어 줄 것이다. 집집마다 날아가 더러움을 씻어 주는 예쁜 손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꽃 달린 스립퍼를 뜨고 또 뜬다. 딸에게 줄 것이다. 내 친구들에게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