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거실 한 켠에 얌전히 들어와 앉으면, 반가운 손님인듯 소파에서 내려와 그 온기를 받아들인다.
햇볕이 드리운 마룻장은 따듯한데, 거실 안쪽에는 아직 겨울의 한기가 맴돈다.
문득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배웠던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사미인곡] 한 구절이 떠오른다. ”춘한 고열(春寒 高熱)을 님은 어찌 지내시는지“
전부를 외우지는 못해도 이 한 줄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잊히지 않는다.
”봄“ 이란 말에는 으레 따뜻함이 따라올 것 같건만, ”춘한“ 에서는 ”봄“ 뒤에 차가운 ”추위“가 따라붙는다.
어제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밖에 나갔다.
3월 하순에 접어들었으니 봄기운을 한껏 누려보고 싶어, 외투 대신 숄 하나만 걸치고 나섰다.
내 옷차림을 한 번 내려다보고, 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을 힐끗 힐끗 눈여겨 보았다.
젊은 사람들조차 두꺼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이도 많은 내가 너무 계절을 앞질러 나간듯하여 조금은 민망해졌다.
돌이켜보면, 젊었을 적에도 그랬다. 해마다 입학식 날이면 예쁜 옷을 골라 입으려 애썼다. 보기에는 좋았지만 스며드는 꽃샘바람을 막아주지는 못하는 옷이었다. 그렇게 한바탕 감기를 앓고 나면, 다음 해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다시 같은 선택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내게 삼월은 으레 기침을 달고 사는 달이었다.
오늘은 전기난로를 내 곁으로 가까이 끌어당기면서 춘한을 끝내 이겨 내지 못하는 내 나이 앞에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