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구경을 하러 나섰다.
전철을 타고 몇 정거장쯤 갔을까. 창밖을 내다보니 정류장 이름이 낯설지는 않은데, 어딘가 이상했다. 가만히 더듬어 보니 4호선을 타야 하는데 7호선을 타고 있었다.
‘바쁜 길도 아닌데 환승역에서 갈아타면 되지’
그렇게 생각 하다가 문득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께 들은 ”읍참마수(泣斬馬首)“ 의 일화가 떠올랐다.
김유신 장군이 말에 오르기만 하면 말이 저절로 기녀(妓女)의 집으로 가고 있어, 자신의 그릇됨을 끊으려고 눈물을 머금고 애마의 목을 쳤다는 이야기다.
7호선은 평소에 내가 자주 타는 노선이다.
7호선이 나의 애마가 된 것 같아 혼자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문득 ”차선 변경“이란 말이 떠올랐다.
내가 타고 있는 차선에 ”어린이 대공원역“이 있다.
정류장 이름은 늘 스치듯 지나쳤지만, 그곳에 들어가 본 것은 몇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창경원으로 가려다가 어린이대공원에 갔다.
목적지를 바꾸고 나니, 발걸음에 생기가 났다.
벚꽃은 터널을 이루고 있었고, 벚꽃 말고도 색색의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식물원에서는 열대 식물의 굵은 둥치와 넓은 잎을 보며 새삼 감탄했다.
동물원도 둘러보았다. 어떤 녀석들은 나른한 오후를 즐기듯 네발을 쭉 뻗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코끼리 한 마리는 집 문턱에서 긴 코를 흔들거리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것 같았다, 또 한 녀석은 앞으로 몇 걸음 갔다가 뒷걸음질로 몇 걸음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제 덩치에 비해 턱없이 좁은 공간이 답답하다고 투정 부리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거실에서 왔다 갔다 하는 내 모습 같기도 했다.
동물원이나 식물원이나 내가 주체가 되어서 구경한 것은 처음이다.
젊었을 때는, 내가 데리고 간 아이들은 동물을 보았고 나는 아이들만 보았다.
팔각당 높은 곳에 올라 보는 하늘은 더 높았다.
융단 같이 깔린 잔디 위에 누워 책을 보는 사람,
길 가에 길게 놓인 벤치에 앉아 해바리기 하는 노인들,
벚꽃 아래에 삼삼오로 앉아 한담하는 여인들,
엄마는 동물을 보여주려고 애쓰는데, 아장 아장 다른 곳으로 가는 아기. 노인을 태운 휠체어를 밀고 가는 젊은이,
보이는 모든 것이 정겹고 평화로웠다.
뜻 밖에 이루어진 차선 변경이 가져온 푸짐한 봄잔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