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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쥴리 Feb 28. 2024

이상한 작용과 반작용

상담은 주 1회 1:1로 각자 진행되고 한 달에 한 번은 부부 동반으로 함께 참여하는 코스였다.

나는 원래도 우울증 약을 먹고 있었고 상담에 큰 부담이 없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도 나도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고 나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만 해보았다. 우린 별거를 시작해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나도 그와 당장 끝내기는 너무 아쉽고 힘들었다. 할 때까지는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상담에 말도 없이 오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도 꺼져있었고, 내가 연락할 수 있는 방도는 없었다. 그저 내가 신혼집에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집에 갔다. 그는 위스키와 비싼 양주를 잔뜩 마시고는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또 그렇게 버튼이 눌렸다. 짠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버튼. 그가 너무 짠해서 집을 치우고 그를 재우고 돌아왔다. 내가 그에게 다녀온 걸 알고 난 다음 날 그는 나에게 네가 집에 왔다 갔으니까 상담은 안 해도 되는 건 아니냐?라는 어이없는 말을 꺼냈다. 자기는 한 달 정도 상담에 구색을 맞춰주면 네가 돌아올 줄 알았는데 점점 길어지니 이게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기가 막혔다. 안 그래도 나는 상담 선생님을 통해 이상한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내가 사치가 심하고 돈에 민감하고 정신이 불안하고 (이 이야기는 그의 완벽한 오해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어서 내가 한 말을 내가 기억을 못 한다고 했다고 했다.

사실 나는 생각보다 치밀해서 매일 일기를 쓰거나 그가 이상한 이야기를 전화로 할 때마다 자동 녹음을 켜놓고 있었다. 물론 그는 함께 간 상담에서 물건을 던지거나 나에게 폭언을 한 것들을 인정했다.

폭언은 실로 여러 가지였다. 어느 날은 나에게 너는 새아버지랑 자라서 사랑을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나를 사랑해 주고 싶다고 하더니 다음 날은 네가 그래서 사랑을 모르는 거다 라며 공격했다. 상처받은 이야기는 끝이 없지만 제일 충격받은 건 내 우울증 약으로 인해 내가 결혼에 불화를 가져온다고 그는 상담 선생님과 주변에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별거 이후엔 그와 함께 다니던 교회도 나가지 않고 있었고, 그저 본가에서 일과 상담만 병행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상담에 대해 옥신각신 하면서 그는 완전히 상담 선생님께 잠수를 탔다.

나에게는 일방적인 연락이 계속 됐다. 이사를 나가라고 했다가 돌아오라고 했다가 오늘은 영화를 보니까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가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가. 어느 날은 함께 상담을 가는 날에 자기가 수면과 식이장애가 와서 병원에 가야 한다고 자기를 돌보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그렇게 별거 시기는 길어지고 도무지 대화는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가 아프다고 하니 나도 마음이 아파서 한 동안 그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집에 몇 번 들르기도 했다. 그는 아마 그렇게 하면 내가 자연스레 다시 집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가 나에게 물건을 한 번 더 던지긴 했는데 그건 우리의 결혼 액자였다. 다행히 내가 피했다. 맞은 이유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왜 맞았지? 그냥 피한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만 했다. 물론 그는 또 미안하다고 빌었다. 나는 침묵했고 그 이후로 그가 내 짠한 마음 버튼을 눌러대도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 상담도 나 혼자서 받았다. 그는 도무지 나아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냥 그 말 대로 구색을 갖추고 나와 상담을 해놓고 나를 꾀어낼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상담을 어떻게 할 거냐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나는 그에게 폭력에 대해 상처받았고 더 이상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했으면 좋겠고 우리 관계가 상담을 통해 회복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분명 그렇게 말했다. " 네가 나를 화나게만 안 만들면 물건 던지는 일도 없어. 그건 마치 작용 반작용 같은 거야. 알았지?" 그러니까 내가 그를 화나게 해서 그가 물건을 던진 거니 내가 그를 화나게 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건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고 먹먹해서 그 통화 녹음을 상담선생님과 몇몇 친구들에게 보냈다.

모두가 비슷한 반응이었다. "두 분이 너무 다른 길을 가시는 것 같아요. 힘드시겠지만 00 씨가 조금 더 리드하셔야 할 것 같아요. 남편 분이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 보이세요." "그 사람.. 너 가스라이팅 하는 것 같아.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이해되지 않는 그 행동들은 얼마 뒤에 이유가 밝혀졌다. 그는 작용 반작용의 의미를 전혀 모른 채 나에게 그를 혼자 두어서 외로웠으니 그가 한 행동들은 또 반작용 같은 거라고 하며 당당하다고 했다.

결혼식을 치르고 1년도 안되고 상담을 위한 별거를 시작하고 3개월도 안 되었던 때였다. 나는 그가 우리가 함께 갔던 신혼여행지의 숙소를 여름휴가 시즌에 예약해 놓은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참 좋아하던 곳이었다. 처음에는 나랑 함께 가려는 건가 일방적으로 예약했네라고 생각했는데 내내 뭔가 이상했다. 그에게 슬쩍 물어보 그는 신은 너무 힘들어서 여름휴가를 갈 에너지가 없다고 했다. 상담을 잠수 탄 날에는 알고 보니 일본 여행을 혼자 다녀왔다고 했다. 사실 그것도 내가 함께 쓰는 네*버 아이디 예약 기록으로 알게 된 것이다. (정말 멍청한 것 같다) 어쩐지 자꾸 상담은 딜레이 되고 나에게 숨기는 게 더 많아진 게 이상했다. 퍼즐이 맞춰지는가? 그에게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여자가 있었다. 그 사실을 내가 우연히 지인들의 이야기로 알게 되어 손을 벌벌 떨며 조심스레 묻자, 그는 에게 다시 한번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내가 별거를 시작하고 그를 혼자 두게 한 작용으로 벌어진 반작용 같은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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