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면 가위 바위 보조차도 삼세판을 해야 승부를 인정한다. 무엇이든 세 번은 해보고, 참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많이들 그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세 번은 참아야지" 그건 사실 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도망가고 싶어질 때마다 그 삼세판의 인내는 실제로도 나를 많이 도와줬다. 다만 항상 같은 것을 반복한다고 같은 확률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았어야 했다.
그가 물건을 딱 세 번 던지면 도망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어차피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가 처음으로 물건을 던지고 나서부터는 집이라는 공간이 무서워졌다. 세 번을 참을 때까지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자고 마음먹었었지만, 두 번째로 그가 나에게 컴퓨터 마우스를 던졌을 때는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지옥 같았다. 물론 물건을 던진 이유는 비슷했다. 내가 그에게 돈 이야기를 꺼내서였다. 그에게는 매일 갚아나가야 하는 빚이 있었고, 나는 미래를 위해서 저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월급날 나에게 매달 각각 다른 금액의 월급을 이체했다. 40만 원, 경조사가 많으면 심지어 30만 원, 딱 한 번은 100만 원.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던 것이다. 그가 빚을 갚고 나에게 그 돈을 이체하는 동안 나는 구멍 난 재정을 메꿔야 했다. 그래서 그저 그에게 물었을 뿐이다. 언제쯤 경제 상황이 나아질 것 같냐고. 그는 빚만 갚고 이직만 하면 단숨에 좋아질 거라고 좀 기다릴 수 없냐고 짜증을 냈다. 그리고 결혼 전에 왜 돈이 없는 걸 오픈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데이트하면서 나한테 선물을 사주고 나에게 다 써서 없다고 했다. 그가 원하는 대로 나는 은혜 갚는 고양이처럼 살아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앞으로 잘 살아가려면 나도 계획을 세워야 하니 그의 단숨에 좋아질 거라고 기다리라는 말에 디테일하게 한 번 더 질문을 덧붙였을 뿐이었다. "그럼 그게 언제쯤 될 것 같아?"
그의 발작 버튼은 항상 내 돈에 대한 질문에 눌렸다. 부부면 당연히 나눌 수 있는 주제고 나누어야 하는 부분인데 거기에 버튼을 눌리면 나는 앞으로 계속 물건에 맞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처참했다. 물론 그는 물건을 던지고 나서 사과했다. 악어의 눈물이 아니라 진짜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까지 써왔다.
내 마음은 늘 그에게 약했다. 그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던 것이다. 나는 삼세판 마니아였는데 왠지 세 번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들게 자랐다고 했다. 대학도 취업도 다 자기 힘으로 하느라 고단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나는 부유하진 않지만 나쁘지 않게 자랐다. 유학도 다녀왔고 굶어 본 적은 없이 살았다. 사람이 굶을 수 있구나라는 걸 그의 가정사를 통해 처음 듣고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결혼을 해보니 미안하지만, 왜 힘들게 자랐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도박과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하다가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남겨지신 어머니는 보험 하나 없이 노후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누나들은 월급으로 자기 가방을 사거나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에만 집착했고 물론 그도 다를 바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야 그의 본가에 처음 가보았을 때, 나는 그가 왜 그렇게 재정 개념이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가족이나 그는 미래에 대한 계획 같은 걸 세워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월급이 들어오면 그냥 그 달에 다 쓴다고,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감사하면서 산다고, 오늘 먹을 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냐고. 존중한다만, 문제는 그가 새롭게 자신의 가정을 꾸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르다. 나는 미래가 중요하다. 나는 오늘만 사는 남자와 결혼하려고 아등바등 살아온 게 아니다.
그의 어머니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여자가 너무 일을 많이 하면 가정이 깨진다고 말했다. 분노가 치밀었다. 자기 아들의 빚이나 우리의 사정은 알고 저렇게 말하는 건가. 그러고 나서는 몇 달을 혼인 신고를 종용했다. 결혼식만 무도회처럼 하고 진정한 부부가 될 생각은 없는 것 같다고 혼인신고를 해야 진짜 부부가 된다고 몇 달을 엄마와 아들 둘이서 나를 들들 볶았다. 애초에 나는 1년은 혼인신고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 약속으로 친정 엄마에게 결혼 허락도 받았었고, 1년 안에 빚을 다 갚을 길이 없어 보이는데 법률혼으로 나에게까지 그 빚을 갚아야 하는 책임감이 넘어오는 게 싫었고 애라도 생기면 답이 없었다. 같이 빚을 다 갚고, 아이를 낳든 안 낳든 선택을 해도 괜찮을 때 그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점점 폭력성이 드러나는 남편과 선뜻 혼인신고를 하기도 무서웠다.
시어머니와 식사를 한 뒤 내내 표정이 좋지 않자 함께 기분을 풀자고 해서 근교에 드라이브를 갔다. 도착하자마자 혼인신고는 약속대로 하자, 일단 빚부터 갚자고 말하자 그는 또 발작했다. 키 줄 테니 알아서 운전해서 꺼지라고, 넌 나를 개무시한다고, 너랑은 못 살겠다고 헤어지자며 차 안에서 내게 차키를 던졌다. 이번엔 심지어 얼굴에 맞았다. 다행히도 차키에 긁힌 상처는 크지 않았다. 다만 차키가 날 향해 던져진 순간부터 심장이 쪼그라들고 머리는 이상하게도 차가워졌다. 그칠 줄 모르는 눈물만이 뜨거웠다. 나의 삼세판은 그렇게 끝났다. 그 길로 나는 곧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이 사람이랑 이제 그만 살고 싶어"
엄마는 반대하던 결혼을 한 내가 힘들어지니 더욱더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래도 나에겐 도움 청할 길이 엄마 밖에 없었다.
엄마는 차분히 본가에 돌아와도 괜찮으니 이삿날을 정하라고 하셨다. 나에게 화를 낼 때마다 그가 나에게 나가라고 했었고, 나도 더 이상 나를 내쫓고 싶어 하고 물건을 던지고 돈의 개념이 없고 공감능력조차도 없는 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참을 이유가 없었다. 밑이 빠진 독에 계속 나의 정성과 시간과 돈과 애정을 쏟아부을 정도로 나는 머저리는 아니었고, 다음번엔 차키가 아니라 뭐가 날아올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의 작은 누나에게도 화가 날 때마다 욕을 하며 물건을 던졌다고 한다. 그의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냥 그게 그의 본모습이었던 것이다. )
본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의논하고 이삿날을 정했다. 가기 싫어도 나에게 그만 살고 싶다는 사람과도 의논을 해야 하니 신혼집에 돌아가야 했다. 나는 그 길이 싫었다. 퇴근을 하고 신혼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나에게는 언젠가부터 고문받으러 가는 황천길처럼 느껴졌다. 기댈 사람이 하나 없는 새로운 도시에서 하는 장거리 출퇴근은 육체적으로도 고됬지만 내가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고 싶었던 그 신혼집은 더 이상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슬프고 괴로웠다. 이대로 가다가 도로에서 내가 증발해 버려도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도 꽤 많이 했다. 그만큼 나도 내 한계를 느꼈던 것이다.
집에 돌아가서 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자 그는 날 붙잡고 펑펑 울었다.
내가 본가에 가 있는 동안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와 생과일주스를 사다 놓고 기다렸다며 나와 정말 헤어지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고 이번에도 차키를 나에게 던지고 싶어서 던진 게 아니라고 했다.
너무 지쳤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걸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내가 이 삼세판을 참고 다음으로 넘어가면 과연 이 게임은 승부가 날까?
항상 삼세판을 참으면 승부가 나고 새로운 지점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참아주는 나의 삼세판은 그저 세 개의 선으로 만들아진 삼각형 같았다. 그냥 선을 한 번, 두 번을 그리고, 세 번째에는 다시 세모의 첫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것. 한 번 더 참게 되면 그냥 그런 세모를 또 한 번 그리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나는 왜 울면서 이 삼세판을 참고 있던 걸까. 결단을 내야 했다. 그는 나에게 이미 폭력적이었고, 파탄난 재정상태에 대해 더 이상 나 혼자 고민할 수 없었고, 그의 강박증이나 앞으로의 살아갈 길을 누군가의 도움이라도 받아서 결론을 내고 싶었다.
그렇게 그와 나는 별거를 하며 지인의 소개로 부부 상담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세 번이 아니라 삼백 번은 참고 노력해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가 내 선택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의미 없는 노력에 횟수는 더더욱 의미가 없었다. 그가 부부상담을 받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상담을 거부하고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